왕릉이 아닌 왕의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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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에는 태조부터 순종에 이르기까지 모두 27명의 왕이 있었어요. 그런데 27명 모두 왕릉에 묻히지는 않았습니다. 어찌된 일일까요?
조선의 제10대 임금 연산군과 제15대 임금 광해군은 나라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했다고 해서 신하들에 의해 쫓겨났습니다. 그래서 ‘∼조’나 ‘∼종’으로 불리지 않고 왕자였을 때의 호칭인 ‘∼군’으로 불립니다. 이 때문에 두 임금의 무덤은 왕이나 왕비의 무덤인 ‘릉’으로 불리지 않고 왕자의 지위에 맞는 ‘묘’라고 불리지요.
현재 연산군의 묘는 서울 도봉구 방학동에 있고, 광해군의 묘는 경기도 남양주에 있어요. 두 임금은 쫓겨난 왕이라는 이유로 죽어서도 조선 국왕의 대우를 받지 못하였어요. 그래서 무덤의 규모도 조촐해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조선 왕릉에도 포함되지 못하였지요.
한편, 조선 왕릉 중에서는 황제릉의 형식을 갖춘 것도 있어요. 1897년 조선은 나라 이름을 ‘대한 제국’으로 바꿨어요. 어엿한 황제국이 된 것이지요. 그래서 고종 황제와 그의 아들 순종 황제의 무덤도 황제의 지위에 걸맞게 만들어졌는데, 아무래도 일제 강점기였기 때문에 온전히 전통적인 황제의 지위에 맞게 만들어지지는 못했어요. 고종 황제의 무덤을 홍릉이라고 하고, 순종 황제의 무덤을 유릉이라고 해요. 두 무덤 모두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에 있답니다.
왕릉에서는 석물(동물 모양을 돌로 깎아 세워둔 석수, 혼유석 등)들이 무덤 주변에 있는데, 홍릉과 유릉의 석물은 정자각 앞에 세워져 있어요. 이는 중국의 황제릉처럼 홍릉과 유릉이 황제릉이기 때문이지요. 동물의 수도 다른 왕릉에 비해 더 많아요.
또 홍릉과 유릉의 석물에는 다른 왕릉에서 볼 수 없는 동물이 있어요. 낙타와 코끼리 석물이 바로 그것이지요. 이는 서양 문물을 적극 수용했던 당시 상황이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어요.
유릉의 석물(낙타와 코끼리 석물)
한국문화재재단
이뿐만 아니에요. 왕릉에 있는 제사지내는 건물을 ‘丁(정)’자 모양이라고 해서 정자각이라고 하는데, 황제릉인 홍릉과 유릉은 ‘一(일)’자 모양이어서 일자각이라고 불러요. 이 역시 황제릉의 형식에 맞춘 것이지요.
홍릉 일자각
한국문화재재단
조선 왕릉의 분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