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건국

명, 고려에 땅을 내놓으라 하다

컨텐츠 정보

본문

공민왕 시기 중국에서는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어요. 한족 출신의 주원장이 남경에서 새로운 나라 명을 세웠던 거예요. 그렇다면 몽골이 세운 원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북쪽으로 쫓겨 가 명과 대립하고 있었어요.


고려는 명이 세워지자 사신을 보내 외교 관계를 맺었어요. 그런데 명은 고려가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를 했어요. 원의 땅은 모두 자기 것이라는 이유로, 공민왕 때 고려가 원으로부터 되찾은 철령 이북의 땅을 자신들이 관리하겠다는 것이었죠.



4c0ab2095b22a8b9744cabf724df5dd4_1746325342_168.JPG
 



당시 고려는 우왕이 나라를 다스리던 때였어요. 그때 신하 중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은 최영이었어요. 명이 철령 이북 땅을 관리한다는 소식을 들은 최영은 다른 신하들과 회의를 열어 이 문제를 어떻게 할지 의논했어요.


“철령 이북 땅은 원래 고려 땅이었습니다.”

“맞습니다. 원에 빼앗긴 걸 다시 찾아왔는데 명에게 넘겨줄 수 없습니다.”


회의에서 신하들이 이 땅을 명에게 줄 수 없다고 하자 우왕과 최영은 명에 사신을 보내 그들의 요구를 철회해달라고 요청했어요. 그리고 이 기회에 요동 지방을 공격해서 우리의 국경 방어를 강화하고자 했지요. 하지만 반대한 사람도 있었어요. 바로 이성계였어요. 이성계는 다음의 4가지 이유를 들어 요동 정벌에 반대했어요.


“첫째,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거슬러 공격하는 것은 불가합니다. 둘째, 농사가 바쁜 여름철에 군사를 동원하는 것은 불가합니다. 셋째, 온 나라의 군사들이 원정에 나서면 왜적이 허점을 노려 바로 쳐들어올 것입니다. 넷째, 장마철이라 활을 붙여 놓은 아교가 녹고 군인이 전염병에 걸릴 우려가 있습니다.”


이성계가 강력히 반대했지만 우왕과 최영은 요동 공격을 단행했어요. 우왕은 최영을 요동 정벌의 총사령관으로 임명하고 이성계와 조민수를 그다음 지휘관으로 임명했어요. 왕의 명령에 따라 1388년(고려 우왕 14) 4월 이성계와 조민수는 군대를 이끌고 요동 정벌에 나설 수밖에 없었어요. 한편, 총사령관 최영은 요동으로 가지 않고 우왕의 곁에 남게 되었어요.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6 / 1 페이지
RSS
알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