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결사운동을 펼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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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8년(명종 18)의 어느 날이었어요. 지눌은 벗으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았어요. 같은 뜻을 품은 승려들을 모으고 있으니 와 달라는 내용이었지요. 그는 반가운 마음으로 벗이 있는 영천 팔공산 거조사로 갔어요.
“지금 고려 불교는 교종과 선종으로 나뉘어 싸우고 있지. 하지만 그건 의미 없는 싸움이라네. 그걸 다른 승려들도 깨닫는다면 불교는 다시 한마음으로 뭉칠 수 있을 거네!”
지눌은 불교 본연의 모습을 되찾길 간절히 바라며 벗과 함께 참선과 경전 공부를 했어요. 이들의 노력은 소리소문없이 널리 펴져 나갔어요. 그리고 많은 승려가 종파를 가리지 않고 뜻을 함께하고자 모여들었어요.
“우리의 간절한 마음이 통했는지 도반(함께 불도를 수행하는 벗)이 많이 모였습니다. 이제 우리 뜻이 담긴 글을 지어 세상에 더 널리 알리도록 합시다.”
1190년(명종 20) 지눌은「정혜결사문(定慧結社文)」을 저술하고 이를 공포하였어요. 당시 불교가 보여주던 여러 폐단을 없애고 불교의 진정한 모습으로 돌아가자는 내용이었어요. 지눌은 뜻있는 동료 승려와 함께 단체를 만들어 ‘정혜결사운동’을 시작하였어요. 이는 ‘정혜쌍수’를 통해 불교를 개혁하자는 운동이에요.
* 결사(結社) : 여러 사람이 공동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단체를 조직함
결사문을 읽고 있는 지눌
이를 위해 지눌은 승려들이 욕심을 부리거나 나쁜 짓을 하지 말고 몸소 실천하고 수행하자고 강조했지요. 그러자 지눌의 이름은 세상에 널리 알려졌어요. 사람들이 팔공산 거조사로 몰려들기 시작했지요.
한편 이 무렵 최충헌이 무신 정권의 새로운 권력자로 떠올랐어요. 최충헌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백성들의 불만을 잠재워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를 위해 기존 귀족 세력과 밀접한 교종을 멀리하고 지눌을 중심으로 새롭게 떠오르고 있던 선종을 자신의 세력 아래에 가까이 두려고 했지요.
“정권이 바뀌어도 달라진 게 없구나. 불교를 여전히 통치의 수단으로만 여기고 있다니.”
지눌은 권력의 손길이 선종에까지 뻗치는 걸 보았어요.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지요. 정혜결사의 뜻을 굳건히 펼쳐 나가기 위해서는 불교를 더 깊게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1198년(신종 1) 지눌은 지리산의 상무주암으로 갔어요. 그는 진정한 깨달음을 얻기 위해 열심히 수행을 거듭해 나갔지요. 그러던 어느 날 문득 깨달음이 찾아왔어요.
“참선은 조용한 곳에만 있는 것도 아니고, 시끄러운 곳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이제는 백성들 속에서 언제나 그들과 함께 수행하리라.”
지눌은 지리산에서의 은둔 생활을 끝내고 송광산 길상사(지금의 조계산 송광사)로 갔어요. 그리고 이곳에서 정혜결사운동을 본격적으로 벌여 나갔어요. 이 소식을 들은 많은 승려와 학자, 백성이 뜻을 같이 하겠다며 앞다퉈 찾아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