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같이 살 집 한 칸도 없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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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은 여섯 살까지 부산에서 살았어요. 이 시기 아버지 전상수는 미군 부대에 근무하며 미군 양복을 수선하고, 헌 군복과 모자를 옷으로 만들어 피난민에게 판매하였어요. 살림이 좀 나아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힘들어졌어요. 그런데다 염색 공장에 맡겼던 옷감이 장마로 엉망이 되면서 다시 일어설 수 없는 지경이 되었지요.
먹고 살길이 막막해진 전태일의 가족은 무작정 서울로 올라갔어요. 하지만 서울에서도 일자리를 구하는 일은 쉽지 않았어요. 잠잘 집도 구하지 못해 서울역 근처 염천교 다리 밑에서 노숙을 해야만 했어요.
아버지는 술로 보내는 날이 많았어요. 어머니는 어린 자식들을 굶기지 않기 위해 먹을 것을 구걸하기도 하고, 광주리를 이고 다니며 팥죽과 찹쌀떡 등을 팔았어요. 다행히 모은 돈으로 천막집 한 채와 재봉틀 한 대를 살 수 있게 되었어요. 전태일도 남대문초등공민학교(나중에 남대문초등학교로 이름이 바뀌었음)에 다닐 수 있게 되었어요. 초등공민학교는 초등학교를 다니지 못한 아이들이 공부하는 학교였어요.
하지만 이런 안정적인 생활도 오래 못 갔어요. 아버지가 또 사기를 당하는 바람에 거리로 나앉아야 했거든요. 어머니는 넋이 나가 지내는 날들이 많아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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