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백자와 신윤복의 미인도를 지켜내다
컨텐츠 정보
- 5 조회
-
목록
본문
“1만 4천 5백 원”
“1만 4천 5백 10원”
1936년 11월 서울의 경성구락부에서 조선 백자(백자 청화철채동채초충문 병)를 놓고 경매가 벌어졌어요. 그 백자는 처음에는 천 원도 안 되는 가격에서 흥정이 오갔는데 순식간에 1만 4천 원이 넘는 가격이 되었지요.
경매에서 백자를 지킨 전형필
점점 높아지는 가격에도 계속 흥정을 벌이는 두 사람이 있었어요. 바로 전형필과 일본인 야마나까였지요. 수많은 상인과 골동품 수집가들은 손에 땀을 쥐고 지켜보았어요. 과연 누구에게 그 백자가 돌아갈지 궁금해 하면서요.
야마나까가 1만 4천 5백 10원(지금의 45억 원 정도)을 부르자 전형필은 곧바로 1만 4천 5백 80원을 불렀어요. 전형필은 얼마를 주더라도 백자를 꼭 사고 싶었어요. 결국 조선의 청화백자는 전형필의 품에 안겼지요. 전형필은 조선의 문화유산을 지켜냈다는 사실에 마음이 뿌듯했어요.
1936년에는 조선 시대 신윤복이 그린 미인도가 일본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갔지요. 조선 시대 미인의 모습을 담은 신윤복의 대표적인 그림은 당시 일본 사람들에게 인기가 높았어요. 그래서 가격이 점점 치솟아 3만 원에 이르렀지만, 전형필은 주저하지 않고 되찾아왔어요.
백자 청화철채동채초충문병(국보 제 294호)와 신윤복 필 미인도(보물 제1973호)
문화재청
1937년에는 일본에 있던 영국인 변호사 개스비로부터 고려청자 20점을 기와집 400여 채 가격인 40만 원에 사들였지요. 개스비는 청자를 팔며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당신은 젊고 의욕도 넘치니 당신 나라의 훌륭한 미술품들을 많이 모아서 세상에 널리 알리시오. 고려청자가 당신의 나라로 돌아가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