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묘·병자호란

정묘호란, 후금의 형제 나라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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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조선의 여론은 정반대였어요. 신하들은 광해군이 명에 대한 의리를 저버렸다며 거세게 비난했어요. 그리고 광해군은 다른 사건으로도 신하들의 비난을 받았어요. 계모인 인목대비를 폐위시키고 이복동생 영창대군을 죽였거든요. 광해군은 영창대군의 존재가 자신의 위치를 위협할 것으로 여겼어요. 결국 광해군을 반대하는 신하들은 군사를 일으켰어요. 광해군을 왕위에서 끌어 내리고 인조를 새 국왕으로 받들었어요.

인조는 신하들의 의견을 따라야 했어요. 광해군과는 다른 외교 정책을 취했지요. 북방 오랑캐라 멸시하던 여진족이 세운 후금을 멀리하고, 명을 큰 나라로 받들며 가깝게 지냈어요.


만주 대부분을 차지한 후금은 명을 물리치고 중국 대륙까지 차지하고 싶었어요. 후금은 명의 편에 선 조선이 자신의 뒤를 공격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후금은 명과의 전쟁을 준비하면서 먼저 눈엣가시와 같은 조선을 굴복시키고자 했어요.


겨울이 오고 압록강이 얼자 후금은 3만의 병력으로 조선으로 쳐들어왔어요. 이때가 1627년으로 인조가 왕위에 오른 지 5년째 되던 해에요. 임진왜란 후 30여 년 만에 조선은 다시 전쟁에 휘말리게 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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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묘호란 당시 후금의 침입로와 의병의 활약




후금의 군대가 압록강을 건너왔어요. 조선군의 기본 방어 전략은 성에 들어가서 성문을 닫고 굳게 지키는 것이었지요. 그러나 후금군은 성을 공격하는 것도 잘했어요. 하루 만에 의주성이 함락되었고, 열흘 만에 국경 주변의 성과 평양성을 빼앗겼어요. 북쪽을 점령한 후금군은 빠르게 남쪽으로 내려왔어요.

인조는 신하들과 강화도로 피신하였어요. 여러 곳에서 의병이 일어나 후금군의 보급로를 공격하였지요. 빠른 진격으로 보급로가 막힌 후금군은 협상을 제안했어요. 후금의 원래 목적도 조선의 영토를 점령하려는 것이 아니었어요. 명과 전쟁을 벌이던 상황에서 조선이 명에 협력할 것을 막고자 했던 것이지요.


“조선 국왕은 후금과 더불어 굳은 약속을 한다. 만약 조선이 후금을 적대시하여 약속을 어기고 군사를 일으켜 침범한다면 하늘이 재앙을 내릴 것이며, 만약 후금이 불량한 마음을 품고 화친을 위배하고 군사를 일으켜 침범한다면 역시 하늘이 재앙을 내릴 것이다.”


한양 코앞까지 진격한 후금군의 위세에 눌린 인조는 후금의 형제 나라가 될 것을 맹세했어요. 목적을 이룬 후금군은 수많은 조선인 포로와 재물을 가지고 만주로 돌아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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