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실

조선의 시간을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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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기생의 자식에게 그런 벼슬을 내리다니 안 될 일이오.”


“기생의 자식이니 그 정도 벼슬이 딱 적당하지 않겠소?”


세종은 신하들의 이야기를 듣고 난 후 명령을 내렸어요.


“장영실을 상의원 별좌로 임명하노라!”

중국 유학에서 돌아온 장영실은 이제 노비 신분에서 벗어나 관리가 되었어요. 벼슬까지 얻은 그는 더욱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었어요. 세종의 명을 받아 혼천의를 만들었어요. 당시 만들어진 혼천의는 하늘의 움직임을 읽는 기구인 동시에 천문시계였어요. 해와 달과 별의 움직임을 관찰할 수 있었고, 훗날 이를 기준으로 조선의 달력도 만들 수 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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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천의를 보고 있는 세종과 장영실




해시계인 앙부일구도 만들었어요. 하늘을 향해 있는 가마솥 모양의 해시계라 ‘앙부일구’라는 이름이 붙었지요. 앙부일구는 우리나라 최초의 공중 시계에요. 종묘 남쪽 거리와 혜정교에 설치해 일반 백성들이 시각을 알 수 있도록 했어요.

뾰족한 바늘 모양의 막대를 설치해 그림자가 생겨 시각을 알려주지요. 한자를 못 읽는 백성들을 위해 열두 띠 동물(12지신)을 새겨 놓았어요. 또 그림자의 길이에 따라 절기도 알 수 있도록 해 생활에 도움을 주었어요.


“밤이나 구름 끼고 비가 오는 날에도 시각을 알 수 있으면 좋을텐데...”


장영실은 중국에서 가져온 여러 가지 책들을 참고해 새로운 시계를 만들었어요. 바로 물시계인 자격루 말이에요.


“기특하다. 내 명을 잘 받들어 이렇게 훌륭한 기구를 만들어 내다니. 명의 것보다도 뛰어나니 후대에 전할 만 하구나.”

세종은 장영실이 만든 자격루를 보고 그 공을 높이 칭찬했어요. 항아리에서 일정한 양의 물을 원통으로 흘려보내면 원통 안의 막대가 올라가 구슬을 건드리고, 굴러간 구슬이 인형들을 건드려 종과 징, 북을 치게 해 시각을 알리는 물시계였지요. 해시계에 이어 물시계까지 만들어 조선의 시간을 찾으니 백성들에게 정확한 시간을 알려주어 농사에 도움을 줄 수 있었어요. 또 백성들이 시간에 맞추어 하루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지요.


이 뿐만이 아니었어요. 장영실은 세종의 아들인 문종의 생각을 받들어 측우기를 만들고, 청계천의 물 높이를 재는 수표도 만들었어요. 금속활자를 만드는 데도 참여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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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시기 과학 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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