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기군의 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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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에서는 많은 수의 관군을 모아 평안도로 보냈어요. 여러 고을을 차지한 홍경래의 봉기군은 관군을 기다리며 송림 평야에서 머물고 있었어요. 이곳에서 관군과 피할 수 없는 전투가 벌어졌지요. 전투 초반에는 봉기군이 이기는 듯했어요. 그러나 관군이 봉기군의 후방을 공격하면서 상황이 역전되었어요. 수백의 봉기군이 목숨을 잃었어요. 관군에게 첫 패배를 당한 것이에요.
어쩔 수 없이 홍경래는 봉기군을 이끌고 미리 차지하고 있던 정주성으로 들어갔어요. 정주성을 포위한 관군은 봉기군에게 빼앗겼던 고을들을 하나씩 되찾아갔어요. 이 와중에 죄 없는 많은 백성이 봉기군으로 몰려 또 죽임을 당했어요.
관군에게 포위당한 정주성의 봉기군은 목숨을 바쳐 성을 지켜냈어요. 관군은 ‘윤제’라는 높은 사다리차를 이용하여 성을 공격하였어요. 조총수들은 사다리차 높은 곳에 자리를 잡고 성 안을 보면서 총을 쏘았어요. 봉기군들은 이에 맞서 마른 풀과 화약을 던져 윤제를 불태우면서 방어를 했어요. 성을 방어하기 위해 활과 조총을 이용하기도 했어요. 때에 따라서는 몰래 성 밖으로 나와 관군을 기습 공격하고 다시 성안으로 되돌아가기도 했어요.
홍경래와
봉기군의 최후
정주성은 관군에 의해 포위된 지 100여 일이 지나도록 봉기군의 활약으로 함락되지 않았어요. 성 밖의 백성들도 봉기군에게 관군의 정보와 군량을 날라다 주며 도움을 주었지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식량이 부족해지고, 겨울 추위 속에서 전염병마저 퍼지면서 상황은 점차 봉기군에게 불리해졌어요.
성 함락에 계속 실패한 관군은 마지막 방법을 생각해냈어요. 그것은 땅굴이었어요. 관군은 성 밑으로 봉기군이 모르게 땅굴을 팠어요. 그리고 그 속에 많은 양의 화약을 넣고 터트려 성벽을 무너트렸어요. 무너진 성벽 사이를 넘어 관군이 일제히 공격을 했어요.
성벽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홍경래는 다급하게 남문으로 빠져나갔지만, 결국 관군에 의해 목숨을 잃었어요. 그리고 성안에 있던 봉기군은 대부분 관군의 포로가 되었지요. 포로가 된 3,000여 명의 봉기군은 안타깝게도 모두 처형되었어요. 이로써 홍경래와 평안도 백성들이 일으킨 4개월간의 봉기는 끝이 나고 말았어요.
홍경래와 평안도 백성들의 봉기는 결국 관군에 의해 끝이 났지만 그 후에도 백성들에게 오랫동안 기억되었어요. 백성들 사이에는 ‘홍경래가 죽지 않았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어요. 이것은 세도 정치 밑에서 고통 받던 백성들의 마음에 홍경래가 살아있다면, 홍경래와 같은 인물이 또 나온다면 좋겠다는 바람이 반영된 것으로 보여요.
탐관오리의 횡포에 맞서 조선을 바로 세우려던 홍경래의 뜻은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국에서 일어난 농민 봉기로 다시 불꽃을 피웠어요. 더 많은 농민이 잘못되어 가는 조선을 바로 잡고자 목숨을 걸고 일어났어요. 그리고 많은 백성들이 희생되었지요. 이들의 희생 속에 조선은 어떻게 변해갔을까요? 백성들이 원하던 조선은 만들어졌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