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펼친 의거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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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혁 의사의 의거가 있은 지 3개월쯤 지난 1920년 12월 27일 밀양경찰서에서 또다시 폭파 사건이 일어났어요. 이 사건은 최수봉 의사가 일으킨 거예요. 최수봉은 의거 하루 전날 폭탄 2개를 전해 받은 후, 다음날 밀양경찰서장이 전체 직원을 대상으로 훈시할 때 폭탄 2개를 모두 던졌어요.
그런데 폭탄의 위력이 약해서 죽거나 다친 사람은 없었다고 해요. 사건 직후 최수봉은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받았고, 1921년 7월 8일 대구형무소에서 사형이 집행되어 돌아가셨어요.
1921년 9월 21일에는 김익상 의사가 조선 총독부 건물 안에 폭탄을 던졌어요. 김익상은 전기공 차림으로 변장하고 조선 총독부 건물 안에 들어가는 데 성공했어요. 그는 2층에 있는 사무실 두 곳에 폭탄을 던졌어요.
폭탄이 터지고 총독부 직원들이 어찌할 바를 몰라 허둥대고 있을 때 김익상은 총독부 직원인 전기수리공인 것처럼 위장해서 “위험하다.”라고 소리치며 그 자리를 빠져나왔어요. 그리고 용산역에서 기차를 타고 평양과 신의주를 거쳐 의열단 본부가 있는 중국 베이징으로 탈출하였지요.
이후 1922년 3월 28일 중국 상하이 황포탄에서 일본 육군대장을 처단하려다 실패하여 체포되면서 조선 총독부 폭탄 사건을 일으킨 인물이란 것이 밝혀졌지요.
1923년 1월 12일 밤 종로 경찰서에 폭탄이 터졌어요. 이 사건으로 경찰서 유리창이 깨지고 건물 일부가 부서졌고, 그 앞을 지나던 사람 7명이 다쳤어요. 일제는 이 사건을 일으킨 사람을 찾으려 했지만, 도무지 누가 했는지 알 수 없었어요.
며칠을 조사한 후 일제는 이 일을 한 사람이 김상옥 의사라 생각했어요. 김상옥은 일본에서 열리는 제국 의회에 참석하려 경성을 떠나는 조선 총독에게 폭탄을 던지려고 숨어 있다가 1월 17일 일본 경찰에게 발각되었어요. 그는 일본 경찰을 따돌리고 남산을 거쳐 금호동의 한 절에 숨었어요.
절에서 승려로 변장하고 무내미(현재 서울 수유리)의 친척 집에 가서 하룻밤을 보냈어요. 그리고 19일 자신이 어린 시절을 보낸 효제동으로 몸을 숨겼어요. 1월 22일까지 잘 피신해 있던 김상옥은 효제동 일대에서 일본 경찰과 총격전을 벌였어요. 그는 3시간에 걸친 총격전 끝에 총탄이 떨어지자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지요.
김상옥 의사 의거터 표시(서울 종로구)와 의거 현장이 실린 동아일보 기사(1923년 1월 14일자)
국사편찬위원회
1926년 12월 28일에는 지금의 서울에서 나석주 의사의 의거가 있었어요. 나석주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활동하였고, 중국 군관학교에서 훈련받은 장교이기도 했어요.
1926년 의열단에 가입한 뒤 중국인으로 변장하고 경성(서울)에 들어와 남대문 근처에 있던 조선 식산 은행과 동양 척식 주식회사에 폭탄을 던졌지요. 하지만 두 개의 폭탄은 모두 터지지 않았고, 이 모습을 보고 뛰쳐나온 일본 경찰 7명을 사살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어요.
나석주 의사 의거터 표지와 동상(서울 중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