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량수전의 과거와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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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미술사를 연구한 학자들에게 한국 전통 건축의 특성을 가장 잘 나타낸 건물을 추천해 달라고 하면 대다수가 주저 없이 부석사 무량수전이라고 대답한다고 해요. 또 우리나라 건축가들에게 같은 질문을 해도 대개 부석사를 첫 손가락에 꼽지요.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뛰어난 목조 건물로 꼽는 무량수전은 언제 만들어졌을까요? 무량수전이 속해 있는 부석사라는 절은 통일 신라 시대에 지어졌어요. 『삼국사기』에 따르면 676년 의상 대사가 문무왕의 명을 받아 부석사를 건립했는데, 이때 부석사의 중심 건물인 무량수전도 지어졌지요.
‘무량수전(無量壽殿)’이라고 씌어 있는 현판
문화재청
무량수전은 ‘불교에서 말하는 극락세계, 즉 행복하고 안락한 이상적인 곳을 다스리는 아미타여래불상을 모신 불당’이라는 의미랍니다. 아미타여래는 끝없는 지혜와 무한한 생명을 지니고 있어 ‘무량수불’이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수명이 무한한(끝이 없는) 부처님이라는 뜻이에요.
그런데, 신라 말 또는 고려 초에 부석사가 불에 타는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어요. 무량수전도 이때 불타고 말았지요. 그래서 고려 전기에 원융 국사라는 스님이 부석사를 다시 지었어요. 고려 말 공민왕 때 이르러 왜구의 침입으로 무량수전이 또 한 번 불타는 바람에 우왕 때 다시 건물을 지었답니다. 지금 전하는 무량수전도 이때 지어진 건물이지요.
이후 조선 시대 광해군 때는 비바람으로 인해 건물이 일부 파손이 되어 수리하였어요. 이처럼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몇 차례 다시 짓기도 했지만 무량수전의 모습은 고려 전기의 양식을 지니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는데,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부석사의 무량수전은 맵시 있는 지붕의 추녀 곡선, 그 추녀와 기둥의 조화, 처마의 머리를 받쳐 주는 간결한 나무 장식(주심포 양식)으로 유명하답니다. 그래서 2018년에는 무량수전이 속해 있는 부석사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어요. 이제부터 우리 함께 무량수전을 통해 뛰어난 고려 목조 건축 기술을 살펴볼까요?
부석사 무량수전
부석사 무량수전은 장식이 적어 단정하면서도 균형 잡힌 아름다움을 보여 주고 있어요. 이 건물이 아름답게 보이는 이유는 인간의 눈으로 생기는 착시 현상을 없애는 과학적 기법을 사용했기 때문이랍니다. 즉, 착시 현상으로 인해 사물이 본래 모습과 다르게 보이는 것을 줄이기 위해 세심한 배려를 했다는 점이에요.
무량수전은 모퉁이의 기둥을 안쪽으로 약간 기울여 세웠어요. 이는 건물의 양 끝이 벌어져 보이는 불안감을 없애주지요. 또 건물의 양 끝 기둥은 다른 기둥보다 약간 높게 세워 안정적으로 보이게 하였어요. 그리고 중간이 굵고 위아래로 가면서 줄어드는 배흘림기둥은 기둥의 중앙 부분이 좁아 보이는 착시 현상을 보완하였지요.
한편, 무량수전은 내부가 다른 불당과 달라요. 불당은 불상을 모신 건물을 말하는데, 다른 절의 불당은 대부분 불상이 정면을 바라보고 있어요. 그런데, 무량수전은 불상이 건물의 왼쪽 끝에서 오른쪽을 바라보고 있어요.
밖에서 본 무량수전 불상(왼쪽)과 무량수전 내부의 모습(오른쪽)
문화재청
왜 이렇게 특이하게 불상을 놓았을까요? 이것은 내부의 불상이 앞에 늘어선 기둥들과 겹쳐 보이지 않게 해서 크고 엄숙한 느낌이 들게 하기 위해서라고 해요. 또한 불교에 따르면 아미타불이 서쪽에 있기 때문에 왼쪽에 놓았다는 의견도 있어요. 뿐만 아니라 강의와 의식을 행하는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현실적인 목적일 수도 있다는 의견도 있어요. 한편, 내부 천장도 막혀 있지 않고 뚫려 있는데, 이렇게 하면 내부 공간이 훨씬 더 웅장한 느낌이 들지요.
무량수전의 배흘림기둥과 주심포 양식
‘배흘림 양식’ 또는 ‘배흘림기둥’이라고 하는 것은 어떻게 만든 기둥일까요? 배흘림기둥은 중간이 굵고 위와 아래로 가면서 점차 가늘게 되는 원형 기둥을 말해요. 정확하게는 아래에서 3분의 1 지점의 폭이 가장 넓고, 위와 아래는 폭을 좁게 제작한 기둥을 가리키지요. 그러면 왜 이렇게 가운데를 불룩하게 만들었을까요?
앞에서도 이야기한 것처럼 사람의 눈은 사물을 바라볼 때 착시 현상을 보여요. 만약 배흘림양식으로 기둥을 만들지 않고 일직선으로 평평하게 만든다면 멀리서 볼 때 가운데가 움푹 파인 것처럼 보이지요. 대신 가운데를 불룩하게 배흘림기둥으로 만들면 멀리서 봤을 때 평평한 기둥으로 보여요. 이와 같이 건물을 안정감 있게 보이게 하려고 배흘림기둥으로 만든 것이지요.
사실 배흘림기둥은 부석사 무량수전에만 사용된 양식은 아녜요. 고구려부터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사용해 온 건축 기술입니다. 이러한 건축 기술은 고대 그리스의 신전 건물에서도 볼 수 있다고 하니, 동서양에서 공유되는 건축 기술이 있다는 것이 참 신기한 것 같습니다. 그만큼 동서양의 교류가 우리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죠.
한편 고구려 때 만들어진 목조 건물은 현재 남아 있지 않지만 조선 시대에 지어진 전라남도 강진의 무위사 극락전과 전라남도 구례의 화엄사 대웅전에서는 배흘림기둥을 볼 수 있어요.
한편, 우리 조상들은 무거운 지붕의 무게를 건물이 어떻게 지탱하도록 만들었을까요? 그것의 비밀은 처마 밑에 숨어 있어요. 처마 밑에 나무 장식물을 두어 지붕의 무게를 기둥이나 벽으로 전달하도록 했어요. 이것을 건축 용어로 ‘공포’라고 해요.
이러한 공포가 기둥 위에만 놓인 것을 주심포 양식, 기둥 사이 사이 벽면 위에도 놓인 것을 다포 양식이라고 불러요. 주심포 양식은 단정한 느낌, 다포 양식은 화려한 느낌을 주지요. 주심포 양식은 주로 고려 전기에 유행하였고, 다포 양식은 고려 후기부터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유행하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