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항 이후 일본에 파견된 수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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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사는 1811년(순조 11)에 파견된 이후 더 이상 보내지지 않았어요. 그러다 다시 사절단을 보내게 된 것은 1876년 강화도 조약을 맺은 이후에요. 그 사절단이 바로 수신사예요. 개화정책이 추진되면서 일본뿐만 아니라 청나라와 미국에도 외교 사절단이 파견되었어요. 이들은 근대 기관 및 시설들을 살피고 돌아왔지요.
수신사는 1876년부터 1882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파견되었어요. 최초로 파견된 수신사의 정사는 김기수였어요. 그는 일본의 발달한 문물을 보고 들은 것을 적은 『일동기유』를 남겼어요. 이 책에는 기차를 처음 본 김기수의 놀라움이 잘 표현되어 있어요. 기차를 보기 위해 복도를 따라 수십 칸 이동해도 기차가 보이지 않았대요.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자신이 이동해 왔던 긴 건물 같은 것이 바로 기차였음을 알고 놀랐다는 내용이지요. 일본의 발달한 문물을 접하고 온 수신사는 조선이 외국의 선진 문물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평화 사절단으로 불리는 통신사의 행적을 살펴보니 어떤 마음이 드나요? 한국과 일본 두 나라는 아주 오래전부터 교류하며 서로의 문화를 발전시켜 나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요?
이러한 과거의 경험은 미래에도 꾸준히 이어져야 할 중요한 유산이에요. 앞으로 이웃나라 일본이 우리나라와 평화적으로 손 맞잡고 함께 도와가며 미래를 열어나갈 수 있기를 기대해 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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