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두품의 한계를 느끼고, 여기 저기 떠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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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좋은 뜻을 품어도 신라에서 6두품 출신으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구나!”
최치원은 진골 귀족들의 반대로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없게 되자 벼슬을 내려놓았어요. 음모와 질투의 틈바구니에서 벗어나 이곳저곳을 떠돌았어요. 자연의 경치를 즐기며 시를 읊고, 글을 지었지요. 부산 해운대도 그가 들렀던 곳 중 하나에요. 나중에는 가족을 데리고 가야산 해인사로 들어가 지냈다고 해요.
그러던 어느 날 최치원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어요. 산속 깊은 곳에 숨었는지, 아니면 저 세상으로 갔는지 알 수 없어요. 다만 어느 계곡에 ‘최치원이 이곳에서 지내다 갓과 신발만 남겨둔 채 홀연히 신선이 됐다.’는 이야기가 전해와요.한 시대의 천재로 무너져가는 신라를 살리려고 큰 뜻을 품었던 최치원, 하지만 그는 골품제라는 현실의 벽에 부딪혀 꿈을 접어야만 했지요.
신라에 골품제가 없었다면 어땠을까요? 최치원 같은 인재들이 자신의 뜻을 펼치며 살 수 있었을 거예요. 신라는 멸망하지 않고 더 오랫동안 역사 속에 남아 있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고요.
한편 중국 양저우에는 최치원 기념관이 세워져 있어요. 중국 당송 시대의 100대 시인으로까지 꼽히는 최치원의 명성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게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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