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와 흥망성쇠를 함께한 도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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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귀족들의 수탈과 왜구의 약탈로 백성들의 삶이 피폐해져 가고 있을 무렵 나라를 바로 세우려는 새로운 무인 세력과 유학자들이 나타났어요. 대표적으로 이성계, 정몽주, 정도전 등이 있지요.
이들은 왜구를 물리치며 백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제도를 바꿔가며 고려를 개혁하고자 했어요. 불교 대신 유학을 나라의 중심으로 삼고자 했던 이들은 화려한 그릇보다는 일상생활에서 손쉽게 쓰일 수 있는 검소하고 실용적인 그릇을 원했어요. 이때 많이 만들어진 것이 분청사기에요.
청자 상감어룡문 매병(조선 전기), 분청사기 상감연화문 매병(조선 전기), 분청사기 인화문 대접(조선 전기)
국립중앙박물관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한 후 나라가 점점 안정을 찾아가면서 전국에 더 많은 가마들이 만들어졌어요. 자연스럽게 도자기 제작도 활기를 띠게 되었지요. 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분청사기가 대량으로 만들어졌어요. 분청사기는 고려청자의 제작 방식을 바탕으로 조선의 새로운 문양과 기법이 적용되었지요.
분청사기를 만들면서 도자기 기술도 계속 발전해 갔어요. 기술 발전과 함께 백자가 본격적으로 생산되기 시작했어요. 특히 왕실에서 사용하던 은그릇을 백자로 대신하게 되었는데요. 일부 관청에서는 직접 가마를 운영했어요. 이 가마를 관요라고 부르는데, 경기도 광주에만 있었어요. 관요에서는 궁궐에서 사용할 백자를 생산했어요.
이 무렵 나라에서는 백자가 왕실의 권위를 상징한다고 여겨 궁에서만 사용하게 하였어요. 일반 백성들은 사용하지 못하게 하였죠. 하지만 부유한 양반들은 궁에서 사용하는 백자를 갖고 싶어 했어요. 백자에 대한 백성들의 요구가 커지면서 점차 백자 생산량도 크게 늘어났어요.
백자가 백성들의 관심을 받으면서 조선 초기를 주름잡던 분청사기는 인기가 떨어졌어요. 나라에 받치던 공물로도 사용되지 않았고, 부유한 양반들의 관심에도 멀어져 갔어요. 분청사기는 점점 백자에게 자리를 넘겨주고 사라져 갔어요.
그런데 백자도 여러 종류가 있답니다. 조선 전기에는 아무런 문양이 없는 순백자가 많이 제작되었어요. 반면 푸른색의 청화 안료를 사용해 문양을 그린 청화백자는 드물고 귀했어요. 청화 안료는 금속 물질인 코발트(회회청)로, 주로 중국에서 수입하였어요. 귀하고 비싼 안료라 궁에서는 도화서 화원을 가마에 보내 직접 그림을 그리게 하였어요. 전문 화가가 비싼 안료를 써서 그린 그림은 매우 고급스런 느낌을 주었어요.
화원이나 도공들은 도자기에 유학자들이 좋아하는 문양을 담고자 했어요. 그래서 선비 정신을 나타내는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 소나무가 그려져 있는 백자를 많이 만들었어요. 멋진 시 구절이나 산수화도 문양으로 많이 사용하였어요.
조선의 발전과 함께 자리를 잡아가던 도자기 생산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큰 피해를 입었어요. 많은 도공들이 일본군에게 잡혀 끌려갔고, 전국의 많은 가마들이 파괴되었어요. 게다가 중국에서 비싸게 수입해 와야 하는 청화 안료는 전쟁으로 인해 공급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어요. 여진족이 세운 청이 중국을 다스리게 되자 명을 따르던 조선은 더욱 청화 안료의 수입을 꺼려했어요.
백자 청화매죽문 항아리(조선 전기), 백자 철화포도원숭이 무늬 항아리(조선 후기), 백자 달항아리(조선 후기)
문화재청,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구하기 어려워진 청화 안료 대신 조선의 도공들은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산화철 안료를 사용하였어요. 전쟁 직후 한동안 산화철 안료를 사용해 만든 짙은 갈색의 그림을 담은 철화백자가 유행하였어요. 물론 그후 청화 안료가 다시 수입되면서 철화백자 대신 청화백자의 인기가 높아졌어요.
이후 영조와 정조가 나라를 다스리던 시기는 조선의 부흥기였어요. 정치가 안정되자 경제도 덩달아 좋아졌죠. 백성들의 생활도 이전보다 나아지면서 다양한 종류의 백자가 만들어졌어요. 이때 만들어진 백자 가운데 백자 달항아리가 있어요.
백자 달항아리는 청렴과 결백을 상징하는 흰색 바탕에 아무 문양도 그려 넣지 않았어요. 단지 흰색으로만 가득한 백자 달항아리는 같은 시기 중국이나 일본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양식의 도자기였어요. 이 점 때문에 요즘에는 백자 달항아리가 높은 평가를 받고 있어요. 조선 사회가 변화할수록 백자도 다양한 모습으로 만들어졌어요. 도자기에는 나라의 흥망성쇠가 그대로 담겼던 것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