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운동 유적

민족 대표들은 왜 경찰에 스스로 잡혀간 것일까? 태화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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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일은 천도교 지도자 손병희에게 받은 거금 5,000원을 주면서 사정했어요. 그 돈을 받는 친일 경찰이 눈감아 준 덕분에 무사히 일을 마칠 수 있었답니다.

막상 3월 1일이 되자 그들 중 29명이 탑골 공원이 아닌 음식점인 태화관에 모였어요. 그리고 그곳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만세 삼창을 했어요. 종로경찰서에는 독립선언서를 전달했지요. 얼마 후 일본인 경찰들이 들이닥쳤고, 이들은 끌려갔어요. 그런데 왜 이들은 원래 계획된 탑골 공원이 아닌 태화관에 모이게 된 것일까요?


그것은 탑골 공원에 모인 사람들이 흥분해 폭동이 일어날 것을 걱정했기 때문이라고 해요. 그렇지만 탑골공원에 모여 있는 군중들 앞에서 당당하게 독립선언서를 읽고 그들과 함께 만세운동을 펼쳐 나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해요. 더욱 안타까운 것은 독립선언서에 이름을 올린 민족 대표 33인 중 최린, 정춘수, 박희도와 독립선언서를 쓴 최남선이 친일파로 돌아섰다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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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화관 모습과 현재 태화빌딩(태화관 터)에 걸려있는 민족 대표들의 독립선언식 민족기록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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