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궤

의궤가 만들어지는 과정

컨텐츠 정보

본문

국왕의 혼례나 장례, 주요한 궁궐 밖 행차, 궁궐의 건설과 보수 등 중요한 행사가 가까워지면 그 관련 업무를 담당할 임시 기관이 설치되었어요. 이를 도감이라고 해요. 결혼식이 있으면 가례도감, 장례식이 있으면 국장도감처럼 행사의 종류에 따라 이름이 붙여졌어요.


그리고 의궤 이름 중 ‘∼도감 의궤’라고 하는 것은 그 도감에서 의궤를 만들었다는 뜻이에요. 예를 들어 『영조 정순왕후 가례도감 의궤』는 1759년에 거행된 영조와 정순왕후의 혼례를 담당한 가례도감에서 만든 의궤라는 의미랍니다.



47c9d295d07e47f6362028b31bc47db0_1746593047_7715.JPG
영조 정순왕후 가례도감 의궤

국립중앙박물관




왕실의 행사는 대개 규모가 컸기 때문에 도감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도 많았어요. 도감의 총책임자를 도제조라고 하는데, 주로 3정승(영의정, 좌의정, 우의정) 중에서 뽑았어요. 도감의 부책임자는 정승 아래의 관직으로 지금의 장관에 해당하는 판서들 중에서 뽑았어요. 이들은 제조라고 불렸어요. 도제조와 제조를 도와 실제 일을 하는 관리들이 6∼10여 명이 되었고, 그 밑에 일을 나누어서 도와주는 하급 관리들도 있었어요.

도감에서는 행사를 준비하고 진행하는 동안 관련 업무를 빼놓지 않고 매일 기록했어요. 이런 기록들이 나중에 의궤를 작성하는 기초 자료가 되었지요. 대규모 국가 행사에 각자 정해진 위치를 그린 반차도와 같이 예행연습이 꼭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개 의궤는 모든 행사가 마무리된 이후에 도감에서 만들었어요. 이처럼 의궤가 작성되고 나면 비로소 행사가 완전히 끝나게 됩니다.


의궤에는 그림도 많이 수록되어 있는데요. 간혹 매우 화려하고 세련된 그림도 있어요. 이러한 그림들은 누가 그린 것일까요? 조선 시대에는 국가의 큰 행사나 왕실에 필요한 그림을 그리는 관청이 있었어요. 이를 도화서라고 하지요. 도화서에 소속된 사람들은 관리이자 화가들이었어요.


이들을 화원이라고 불렀어요. 도화서 화원들은 각종 의궤 그림을 그렸는데, 임금의 초상화, 반차도, 궁궐 건물, 병풍 등 종류가 매우 다양했어요. 화원 중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은 김홍도예요. 그는 조선 후기 풍속화가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도화서 화원으로 국가와 왕실에서 필요한 각종 그림을 그렸답니다.

사진기가 없던 시대에 화원의 그림은 사진의 역할을 했어요. 사진은 과거의 사실을 그대로 보여주지요. 조선시대의 그림도 마찬가지예요. 그림은 매우 정교하고 상세히 그려졌어요. 화원은 그들의 그림을 통해 중요한 역사 기록물을 남긴 거예요. 화원들의 활약 덕분에 우리는 조선시대 사람들의 삶을 그림으로 확인할 수가 있어요.


화원들이 의궤에 그린 그림을 보면, 당시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이 몇 명인지, 어떤 옷을 입고 있었는지, 국왕이 탄 가마는 어떤 형태인지, 사람들은 어떻게 행렬을 따르고 있었는지 알 수 있어요. 의궤의 그림은 마치 우리가 그 현장에 있는 것처럼 생생한 광경을 전해주고 있지요.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6 / 1 페이지
RSS
알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