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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돌은 어떻게 만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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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영, 신라의 첫 번째 왕비가 되다.
2026-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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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조, 한강 유역에 백제를 열다
2026-07-20
7
충청 지역의 구석기 유적
2026-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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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작은 이야기: 절을 찾다가 발견…
2026-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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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무늬 거울의 미스터리
2026-07-20
10
역사 속 작은 이야기: 청동기 시대는 청…
2026-07-20
1
뗀석기를 사용했던 구석기인들
2026-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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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기인들은 어디서 살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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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구를 이용하여 사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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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작은 이야기: 구석기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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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속에서 먹을거리를 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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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소중한 집터, 동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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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기 사람들, 집을 짓기 시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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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기인의 생활 모습을 알려주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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뗀석기를 사용했던 구석기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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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기 시대 사람들은 돌을 어떻게…
2026-07-20
B.C.(기원전)
구석기인의 생활 모습을 알려주는 연천 전곡리 유적
뗀석기를 사용했던 구석기인들
구석기 시대 사람들은 돌을 어떻게 다듬어 사용했을까?
구석기인들은 어디서 살았을까?
역사 속 작은 이야기: 구석기인의 예술 활동
충청 지역의 구석기 유적
자연 속에서 먹을거리를 구하다
도구를 이용하여 사냥하다
사람들의 소중한 집터, 동굴
구석기 사람들, 집을 짓기 시작하다
역사 속 작은 이야기: 뗀석기 어떻게 만들었을까?
신석기 시대 마을을 찾아서, 서울 암사동 유적
집 짓기를 고민하다
움집을 짓다
여러 가지 생활 도구를 사용하다
빗살무늬토기를 발명하다
역사 속 작은 이야기: 신석기 시대 사람들의 터전이 발견되다
단군왕검, 아사달에 나라를 세우다
환웅, 하늘에서 내려오다
곰과 범이 찾아오다
단군이 태어나다
단군, 나라를 세우고 조선이라 하다
단군 신화, 어떻게 볼까요?
우리 역사 속 최초의 국가, 고조선
고조선이 세워지다
중국 연나라와 어깨를 나란히 하다
위만이 고조선의 왕이 되다
8조법으로 사회 질서를 유지하다
한나라의 공격을 받아 멸망하다
역사 속 작은 이야기 : 아주 먼 옛날에 지은 시가 전한다고요?
선사 시대 사람들의 생활이 담긴 울산 반구대 암각화
울산 반구대 암각화를 찾아 나서다
다양한 동물들을 그리다
고래잡이를 하다
반구대 암각화를 통해 삶을 배우다
역사 속 작은 이야기: 절을 찾다가 발견한 바위 그림
청동기 시대의 비밀을 간직한 고인돌
‘괴바위’, 고인돌로 밝혀지다
고인돌은 어떻게 만들었을까?
덮개돌을 옮길 때 얼마나 많은 사람이 필요했을까?
고인돌은 지배자의 무덤?
고인돌 왕국 한반도
역사 속 작은 이야기: 고인돌은 우리나라에만 있을까?
돌과 철 사이 인류가 처음 사용한 금속, 청동기
구리의 발견과 문명의 발전
최초의 청동기는 어떤 모습일까?
청동기를 만드는 최고의 기술, 거푸집
독특한 모양의 청동검, 비파형 동검
잔무늬 거울의 미스터리
역사 속 작은 이야기: 청동기 시대는 청동으로 만든 도구만 사용했을까?
청동기 시대 생활 터전, 부여 송국리 유적
부여 송국리 유적, 청동기 시대 마을을 담다
집의 크기가 커지고 울타리도 만들다
송국리형 토기라 불리는 민무늬 토기
돌로 무덤을 만들다
역사 속 작은 이야기: 청동기 시대 유적지에 왜 간석기가 발견될까?
주몽, 고구려를 세우다
주몽, 알에서 태어나다
왕자들의 괴롭힘과 위협으로 동부여를 떠날 결심을 하다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 고구려를 세우다
영산강 유역의 마한 유적
마한, 삼한을 이끌다
마한의 역사를 알려면 이곳을 찾아가요.
마한의 역사가 시작되다
마한 삼국과 다른 특징을 가진 무덤을 만들다
마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역사 속 작은 이야기: 마한이 백제에 멸망 당한 시기는 언제일까?
박혁거세, 신라의 첫 임금이 되다
박혁거세의 탄생
알영, 신라의 첫 번째 왕비가 되다.
박혁거세와 알영, 오릉에 묻히다
온조, 한강 유역에 백제를 열다
유리, 아버지 주몽을 찾아오다
비류와 온조, 고구려를 떠나다
온조, 백제를 세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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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기인의 생활 모습을 알려주는 연천 전곡리 유적
연천 전곡리 선사유적지(경기 연천군)“여기 좀 와서 보세요. 특이하게 생긴 돌이 있어요.”“이 돌은 구석기인들이 사용하던 것 같군요. 대학교수님께 자료를 보내 알아보아야겠어요.”1978년 동두천에 주둔하고 있던 한 미국 군인이 연천 전곡리에서 데이트를 하다 뗀석기를 발견했어요. 미국 군인이 발견한 이 도구는 무엇일까요? 이외에도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구석기 시대의 도구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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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07-20
74
뗀석기를 사용했던 구석기인들
미국 군인이 발견한 도구는 주먹도끼였어요. 주먹도끼는 흔히 한쪽 끝이 뾰족하고 반대쪽은 손으로 쥐고 사용할 수 있도록 뭉툭하게 만들어졌어요. 나무를 베거나 짐승의 가죽을 벗기는 등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도구였지요.주먹도끼를 사용하는 모습전곡선사박물관연천 전곡리 유적에서 주먹도끼가 발견된 것은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어요. 이 유물이 발견되기 전까지 미국의 한 고고학자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의 구석기 문화 수준이 유럽이나 아프리카에 비해 발달하지 못했다고 주장했어요. 이 지역은 주먹도끼처럼 발달된 도구가 발견되지 않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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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07-20
73
구석기 시대 사람들은 돌을 어떻게 다듬어 사용했을까?
구석기 시대의 뗀석기는 한 가지 종류만 있는 것이 아니에요. 용도에 따라 다음과 같이 다양한 종류의 뗀석기가 만들어졌어요. 여러분은 사진에 있는 다양한 종류의 뗀석기가 어떤 용도로 사용되었는지 짐작할 수 있나요? 고고학자들은 뗀석기의 용도를 추정하여 긁개, 찌르개, 홈날 등의 이름을 붙였답니다. 전곡리 유적지에서도 주먹도끼 외에 이런 다양한 종류의 뗀석기가 발견되었어요.다양한 종류의 뗀석기전곡선사박물관찍개국립중앙박물관사진 속의 뗀석기는 무엇일까요? 얼핏 보면 우리가 앞에서 본 주먹도끼와도 비슷한 것 같은데요. 이 뗀석기는 찍개라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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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07-20
72
구석기인들은 어디서 살았을까?
뗀석기를 사용한 구석기 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요? 구석기인들은 우리처럼 농사지어 식량을 마련하지 못했어요. 주로 나무 열매를 따서 먹거나 땅에서 캐거나 사냥을 해서 먹을 것을 마련했어요. 그러다 보니 주변에서 먹을 것을 구할 수 없게 되면 새로운 곳으로 옮겨가 사는 이동 생활을 해야 했어요.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니며 살다 보니 이동한 곳에 자연 동굴이 있다면 그곳에서 지냈어요.충북 제천 점말 동굴과 충북 단양 금굴문화재청만약 동굴을 발견하지 못하면 어떻게 했을까요? 고깔 모양으로 생긴 막집에서 살았어요. 막집은 신석기 시대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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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07-20
71
역사 속 작은 이야기: 구석기인의 예술 활동
물고기 모양 조각수양개선사유물전시관이 유물은 뭘까요? 왼쪽의 둥근 부분은 머리고 오른쪽은 꼬리로 물고기를 표현한 것 같아요. 이 유물은 충북 단양 수양개 유적에서 발견된 것으로 젖소의 다리뼈에 새겨진 것이라고 해요. 구석기인들이 남긴 예술 작품이라 할 수 있죠.하루하루 먹을 것을 구하는 것이 큰 고민이었을 구석기인들도 예술 활동을 했다는 것이 신기하지요.구석기인들의 예술 작품은 다른 나라에서도 발견되었어요. 대표적인 것이 프랑스의 라스코에서 발견된 동굴 벽화에요. 이 동굴에는 사슴과 말, 황소 등이 그려져 있어요. 역사학자들은 사냥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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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07-20
70
충청 지역의 구석기 유적
단양 금굴(충북 단양군)국가유산청“여기 돌조각들이 있어요. 이곳에서 옛날 사람들이 살았나 봐요.”“이곳은 구석기 시대 사람들이 뗀석기를 만들었던 곳이에요.”“구석기 사람들은 뗀석기를 어떻게 사용하였을까?”구석기 시대에 살았던 사람의 흔적이 우리나라 곳곳에 있는 동굴에서 발견되었어요. 당시 사람들이 쓰던 석기들도 함께 발견되었어요. 구석기 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생활하였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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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07-20
69
자연 속에서 먹을거리를 구하다
구석기 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먹고 살았을까요? 구석기 시대 사람들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갔어요. 먹을거리 또한 자연 속에서 얻어야 했지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자연이 준 그대로 식물의 열매, 뿌리, 잎 따위를 따서 먹는 채집이었어요.그렇다고 채집이 마냥 쉽지만은 않았어요. 어느 곳에 가야 먹을 수 있는 식물이 많은지, 어떤 식물은 먹으면 위험한지, 어느 계절에 무슨 나무 열매가 나는지 등등을 알아야 했어요. 그들은 온종일 먹을 것을 찾아다녀야 했어요. 게다가 독충과 맹수를 만나 목숨이 위태롭기도 하였어요. 또 큰 나무에 달린 열매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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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07-20
68
도구를 이용하여 사냥하다
구석기 시대 사람들에게 채집 활동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어요. 하지만 고기를 먹지 못하면 단백질을 얻지 못해서 건강할 수가 없어요. 따라서 짐승을 잡아 고기를 섭취하는 것 역시 중요했어요. 게다가 그 가죽으로 옷도 해 입을 수도 있었지요. 그러나 사냥은 매우 힘들고 위험한 일이었어요. 사냥을 나갔다가 오히려 사나운 짐승에게 당하는 경우가 많았어요.사람들은 사냥을 할 때 협동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어요. 혼자서는 거의 불가능했거든요. 치밀한 작전을 짜고 역할도 나누었어요. 운이 좋아 사냥에 성공하면, 서로 기뻐하였지요. 사냥은 그저 용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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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07-20
67
사람들의 소중한 집터, 동굴
석기 시대 사람들은 어디에서 살았을까요? 구석기 사람들은 주로 동굴에서 살았어요. 보통 동굴은 축축하고 물이 흥건히 괴어 있는 경우가 많지요. 그래도 추위와 비바람을 피하기에는 동굴만한 것이 없었어요. 더구나 동굴 밖으로 앞에 강이 흐르고 작은 들판까지 있다면 그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보금자리가 되었지요.동굴 안에 땅을 파거나 돌을 쌓아 불을 피울 자리를 만들었어요. 그리고 그 주위에 둘러앉아 몸을 녹이거나 잡아 온 동물을 익혀 먹었어요. 잠자리에 들 때에는 낮에 구해온 나뭇잎 등을 깔고, 사냥한 동물의 가죽을 이불 삼아 추운 날씨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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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66
구석기 사람들, 집을 짓기 시작하다
구석기 시대 사람들은 동굴에서만 살았을까요? 살만한 동굴을 찾지 못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동굴 대신 머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어요. 공주 석장리 유적의 집터 자리에서 구석기 사람들이 지었던 집의 흔적을 확인해 볼 수 있어요.석장리에 살던 당시 사람들은 평지에 풀이나 나뭇가지로 거칠게 ‘막집’을 지어 살았어요. 자세히 살펴볼까요? 집 자리는 담을 쳐서 집을 바깥과 구별하고, 출입하는 문을 만들었어요. 기둥을 세우고 겉에 막을 쳐서 비바람을 막았어요. 내부에는 돌을 둥그렇게 둘러 불을 피우는 자리가 있었어요. 석장리 사람들은 불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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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65
역사 속 작은 이야기: 뗀석기 어떻게 만들었을까?
인류는 도구를 사용하면서 발달했어요. 자연을 극복할 수 있었고, 동물을 지배할 수 있었어요. 도구가 늘어날수록 인간의 지식은 늘어나고 문명화되었어요.그런데 인류는 나무를 도구로 사용하지는 않았을까요? 물론 나무를 도구로 사용했을 가능성은 충분하지만, 아쉽게도 나무로 만든 도구는 모두 썩었기 때문에 유물로 남아 있지 않아 확인할 수 없어요. 대신 돌로 만든 도구가 남아 있어 인류가 도구를 어떻게 사용했는지 확인할 수 있지요.단양 수양개 유적에서 특별한 유물이 발굴되었어요. 바로 뗀석기를 만든 흔적이 남아 있는 석기 제작소에요. 모루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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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64
신석기 시대 마을을 찾아서, 서울 암사동 유적
서울 암사동 유적지(서울 강동구)“여긴 정말 살기 좋은 것 같아. 햇빛도 잘 들고. 무엇보다 근처에 강이 있어 먹을거리 걱정을 덜 수 있을 것 같아.”“그래 맞아. 난 다시는 동굴로 가기 싫어. 그런데 이제 날이 추워질 것 같은데 잠자리는 어떻게 하지?”구석기 시대 사람들은 먹을 것을 찾아 여기저기 옮기며 살았어요. 신석기 시대에는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먹을거리가 늘어났어요. 그래서 먹을거리를 구하기 쉬운 강가에 머물러 살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추운 겨울 날 잠자리는 어떻게 해결하였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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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07-20
63
집 짓기를 고민하다
신석기 시대 초기에는 사람들은 여전히 동굴에서 살기도 했어요. 그런데 매번 사냥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겨울엔 나무 열매 구하기도 어렵고요. 강가에는 물고기 등의 먹을거리가 많지만, 동굴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불편했어요. 또 동굴은 불을 피워도 바닥이 너무 차가웠어요.“벌써 며칠째 아무것도 잡지 못했으니 걱정이야. 내일은 멀지만 물고기를 잡으러 강가에 가보아야 하겠어.”“물고기를 잡기 쉬운 강가에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신석기 사람들은 고민하기 시작하였어요. 강가에 동굴은 없었어요. 그리고 바닥이 차갑고 어두운 동굴이 이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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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62
움집을 짓다
신석기 사람들은 이제 자신들만의 안락한 집을 짓기 시작했어요. 땅을 파고, 주로 생활할 자리인 바닥은 평평하게 다졌어요. 그런 다음 주변에 나무 기둥을 세우고, 도리를 얹고, 서까래를 올린 뒤, 나뭇잎이나 짚을 엮어 지붕을 덮었어요. 이렇게 신석기 시대 사람들의 집이 완성되었어요. 이렇게 만든 집을 ‘움집’이라고 해요. 움(움푹 파인 구덩이)을 파고 지은 집이란 뜻이에요.움집(복원)문화재청움집은 햇볕이 잘 들도록 남향으로 지었어요. 나무와 풀만으로 지은 집이지만 땅을 파서 지었기 때문에 바람과 추위를 피할 수 있었어요. 집 한가운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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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07-20
61
여러 가지 생활 도구를 사용하다
서울 암사동 유적에서는 자갈로 만든 도끼, 화살촉, 그물추, 괭이, 돌낫, 보습, 갈돌과 갈판 따위 같은 석기 유물들이 나왔어요. 이런 유물을 통해 당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알 수 있지요.갈돌과 갈판의 사용특히 땅을 파는 데 쓰는 괭이와 보습, 낟알의 껍질을 벗기거나 도토리 등을 가는 데 쓰는 갈돌과 갈판은 신석기 시대에 농경이 시작되었음을 알려 주는 중요한 유물이지요. 화살촉과 그물추 등을 보면 사냥과 고기잡이를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신석기 시대 여러 가지 생활 도구(암사동선사유적박물관)①돌괭이와 보습 ②돌도끼 ③돌화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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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07-20
60
빗살무늬토기를 발명하다
서울 암사동 유적에서는 또 하나의 중요한 유물이 나왔어요. 끝이 뾰족한 진흙으로 만든 그릇이었어요. 빗의 가느다란 살 같은 무늬가 새겨 있어 이 토기를 ‘빗살무늬 토기’라 부르게 되었어요. 빗살무늬 토기국립중앙박물관토기는 흙으로 빚은 다음 불에 구워 만든 그릇을 말해요. 토기는 신석기 사람들이 음식을 저장하거나 음식을 조리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해줘요.신석기 시대에는 먹을거리가 늘어나면서 이것을 보관할 그릇이 필요해졌어요. 토기를 발명함으로써 식량을 저장할 수 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음식을 끓여 먹을 수도 있게 되었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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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59
역사 속 작은 이야기: 신석기 시대 사람들의 터전이 발견되다
서울 암사동 유적지에는 신석기 시대부터 사람들이 살았어요. 그러나 신석기 시대 사람들이 집을 짓고 먹고 살았던 흔적들은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모래와 흙으로 덮여 버리고 말았지요.어느덧 사람들은 이곳에 사람들이 살았다는 기억조차 잊은 채 아무 생각 없이 지나다녔지요.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흘렀어요.1925년에 서울 주변 지역에 엄청나게 많은 양의 비가 내렸어요. 한강에는 큰 홍수가 일어났지요. 강물은 넘치고 거센 물줄기는 주변 지역을 휩쓸었어요. 이때 한강변에 위치에 해 있던 암사동 지역의 흙들도 쓸려 나가기 시작했어요. 그러자 수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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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58
단군왕검, 아사달에 나라를 세우다
마니산 참성단(인천 강화도)“개천절은 무엇을 기념하는 날인가요?”“우리나라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의 건국을 축하하는 날이에요.”“고조선은 세운 사람은 누구일까?”고조선은 우리 민족 최초의 국가에요. 단군이라는 분이 세웠지요. 단군이 고조선을 세우는 모습은 고려 시대에 일연 스님이 쓴 『삼국유사』에 잘 나와 있어요. 지금부터 일연이 전해준 건국 신화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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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57
환웅, 하늘에서 내려오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환웅아득한 옛날 하늘의 왕 환인에게는 아들 환웅이 있었어요. 그런데 환웅은 아래 세상을 내려다보며 사람들을 널리 이롭게 할 뜻을 품고 있었지요. 아들의 뜻을 알게 된 환인은 환웅을 아래 세상으로 내려 보내기로 결심을 하고, 하늘의 왕권을 상징하는 세 가지 보물을 환웅에게 주었어요. 환웅은 바람, 구름, 비를 관장하는 신하와 무리 삼천 명을 거느리고 태백산 신단수 아래에 내려와 인간 사회를 다스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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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56
곰과 범이 찾아오다
환웅을 만나는 곰과 범환웅이 세상을 다스리던 때였어요. 곰 한 마리와 범 한 마리가 같은 동굴에 살고 있었어요. 곰과 범은 늘 신령스러운 환웅에게 사람으로 변하게 해 달라고 빌었어요.어느 날 환웅은 곰과 범에게 신비한 쑥 한 줌과 마늘 스무 개를 주면서 이것을 먹고 백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는다면 사람이 될 것이라고 말하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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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55
단군이 태어나다
곰과 범은 이것을 받아 함께 먹었어요. 그러나 범은 견디지 못하고 동굴을 뛰쳐나가 사람이 되지 못하였고, 곰은 21일 만에 여자로 다시 태어났어요. 그리고 그 이름을 웅녀라고 하였지요.웅녀는 혼인할 사람이 없었어요. 웅녀는 많은 날을 신단수 아래로 찾아와 아이를 갖게 해 달라고 빌었어요. 웅녀의 간절한 기도를 들은 환웅은 잠시 사람으로 변하여 그녀와 혼인을 하였어요. 그리고 환웅과 웅녀 사이에서 아들이 태어났어요. 그가 바로 ‘단군왕검’이랍니다.단군왕검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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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54
단군, 나라를 세우고 조선이라 하다
기원전 2333년에 단군왕검은 평양성에 나라를 세우고 나라 이름을 ‘조선’이라고 하였어요. 단군왕검은 얼마 후에 다시 도읍을 백악산 아사달로 옮겼지요. 단군왕검은 그곳에서 1,500년 동안 나라를 평화롭게 다스렸지요. 이후 아사달에 들어가 산신이 되었는데 나이가 1,908세였다고 해요. 아사달로 이주하는 단군왕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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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53
단군 신화, 어떻게 볼까요?
단군 신화 속 환웅은 다른 곳에서 이주해 온 하늘을 숭배하던 부족을 나타내고, 곰과 범은 각각 한반도와 만주에 살고 있던 곰과 범을 숭배하던 부족을 나타내요. 단군 신화는 이주해 온 환웅 부족이 원주민이였던 곰부족과 결합하여 고조선을 세웠다는 걸 상징적으로 알려주고 있지요.그런데 단군 신화에서는 단군이 무려 1,500년 동안 나라를 다스렸다고 해요. 한 임금이 그렇게 오래 동안 나라를 다스릴 수는 없겠지요. 단군과 그 후손인 2세 단군, 3세 단군 등 고조선의 왕을 모두 단군이라고 부른 것으로 보여요. 고조선의 모든 왕이 다스린 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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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52
우리 역사 속 최초의 국가, 고조선
삼국유사국가유산청“남의 물건을 도둑질한 저 자를 어찌한다?”“8조법에 따라 엄히 다스려야 합니다.”죄를 지었을 때 8조법에 따라 죄인을 벌하고 사회 질서를 유지했던 이 나라는 우리 역사 속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이에요. 고조선에 관한 이야기는 『삼국유사』와 중국의 『사기』, 『한서』와 같은 역사책에 기록되어 있어요. 고조선은 어떻게 세워지고 발전했을까요? 사회 모습은 어떠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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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51
고조선이 세워지다
청동기 시대에는 농업 생산력이 늘어나면서 먹고 남은 생산물을 개인이 가질 수 있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가난한 자와 부자로 계급이 나뉘어졌지요. 마을도 점점 커졌고, 족장이 자기 부족을 다스렸어요.강력한 군사력을 가진 부족은 다른 부족을 정복하거나 통합해 세력을 키우고 땅을 넓혔어요. 넓어진 땅과 늘어난 부족민을 다스리기 위해 통치자와 조직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국가가 세워졌어요. 로암리 고인돌국립문화유산연구원우리 역사상 최초의 국가는 고조선이에요. 원래는 조선이었는데 후대 이성계가 세운 조선과 구분하기 위해 옛 ‘고(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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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50
중국 연나라와 어깨를 나란히 하다
고조선은 정치적, 경제적으로 발전하며 요동 지역과 한반도 중부 지역으로 세력을 넓혀나갔어요. 바닷길을 통해서는 특산물인 짐승의 가죽이나 털옷 등을 이웃 지역에 팔며 교역을 했어요.고조선의 독자적인 청동기 문화를 대표하는 비파형 동검과 탁자식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는 곳을 살펴보면 고조선이 어느 지역까지 영향을 끼쳤는지 짐작할 수 있어요.기원전 4세기경 고조선은 중국에서 철기 문화를 받아들였어요. 당시 중국은 여러 나라가 등장해 싸우는 혼란한 시기였어요. 전쟁을 피해 많은 사람들이 고조선으로 피난 왔는데, 이들에 의해 철기 문화가 전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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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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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만이 고조선의 왕이 되다
중국을 처음으로 통일한 진나라가 멸망하고 한나라가 들어섰어요. 기원전 2세기경 위만이라는 사람이 무리를 거느리고 고조선으로 넘어왔어요. 고조선의 준왕은 그를 믿고 국경 지역을 방어하는 역할을 맡겼지요. 하지만 위만은 세력을 모으고 군사력을 키워 준왕을 몰아내고 왕의 자리까지 차지했어요(기원전 194).왕위에 오른 위만은 한나라와 친하게 지냈어요. 한나라로부터 발달한 철기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활발하게 교역하면서 더욱 성장했어요. 또 한나라와 한반도 중남부 지역의 여러 나라들을 연결하는 중계 무역으로 큰 이익을 얻어 부강해졌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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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48
8조법으로 사회 질서를 유지하다
고조선에서 나라의 일을 결정할 때에는 왕과 족장들이 모여 의논했던 것으로 추측돼요. 사회 질서를 유지하려고 법률도 만들었어요. 8개 조항의 법이라 ‘8조법’이라고 하지요. 우리 역사상 최초의 법이라고 볼 수 있는데, 무척 엄격했어요.지금은 8개 조항 중 3개 조항만 전해요. 그 조항을 살펴볼까요? 첫 번째 조항은 ‘사람을 죽인 자는 사형에 처한다.’는 내용이에요. 살인을 한 자에게 엄격한 형벌을 내렸음을 알 수 있어요. 두 번째 조항은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하면 곡물로 갚는다.’는 내용이지요. 사람의 신체를 귀하게 여겼음을 알 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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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47
한나라의 공격을 받아 멸망하다
중계 무역을 통해 부강해진 고조선은 주변 나라들이 한나라와 직접 교류하는 것을 가로막고 이익을 독점하였어요. 게다가 지금의 몽골 초원 지역에 자리한 흉노와 손을 잡으려고 했어요.위협을 느낀 한나라는 이를 두고 볼 수 없었지요. 고조선을 구슬려 흉노와의 관계를 끊어놓으려고 했어요. 한나라는 고조선에 사신을 보내 이런 뜻을 전했어요. 하지만 고조선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두 나라 사이에 냉랭한 기운이 감돌았어요.기원전 109년, 결국 한나라는 고조선에 쳐들어왔어요. 생각과 달리 쉽게 고조선을 무너뜨릴 수 없자 고조선의 지배층을 자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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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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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작은 이야기 : 아주 먼 옛날에 지은 시가 전한다고요?
님아, 물을 건너지 마오.님은 끝내 물을 건너시네.물에 빠져 돌아가시니가신 님을 어찌하면 좋을꼬.이 시의 배경은 고조선으로, ‘공무도하가’ 또는 ‘공후인’이라고 불리고 있어요. 이 시와 관련한 이야기가 함께 전해지지요.어느 날 곽리자고라는 뱃사공이 아침 일찍 일어나 배를 손질하고 있었어요. 그때 흰 머리를 풀어헤친 한 남자가 술병을 들고 비틀거리며 물을 건너고 있었대요. 그의 아내가 말리려고 뒤쫓아 왔으나, 결국 그 사람은 물에 빠져 죽었지요. 이 광경을 본 아내는 구슬피 울다, 공후라는 악기를 타며 이 노래를 불렀어요. 그러고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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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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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시대 사람들의 생활이 담긴 울산 반구대 암각화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전경(울산 울주군)문화재청“할아버지, 어떤 짐승들이 있어요? 또 사냥은 어떻게 하나요?”“얘야, 이 바위를 잘 보렴. 여기 많은 짐승들이 보이지? 사냥하는 우리 마을 사람도 보이는구나.”옛날 일들은 어떻게 알 수 있지요? 제일 먼저 기록과 유물이 떠오르겠지만 바위 그림도 빼놓을 수 없어요. 거대한 바위 그림이 있는 울산으로 가 볼까요? 과연 어떤 그림이 그려져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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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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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반구대 암각화를 찾아 나서다
울산 태화강의 지류인 대곡천을 따라 내려가면, 높은 절벽이 병풍처럼 강을 막고 서 있는 아름다운 풍경을 만나게 되지요. 산과 계곡,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절경이 마치 거북이 한 마리가 넙죽 엎드린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하여 여기를 ‘반구대’라고 불러요.“이처럼 다양하고 규모가 큰 바위 그림은 누가 그렸을까요?”반구대의 거대한 바위에는 높이 약 5미터, 너비 약 8미터에 걸쳐 여러 가지 동물들과 사냥 도구 및 사냥하는 모습 등이 빼곡히 그려져 있어요. 저런 높이의 바위에 그림 그리기가 매우 힘들었을 것 같아요. 지금 같으면 사다리차라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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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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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동물들을 그리다
바위 그림은 물감 같은 것으로 칠한 그림이 아니에요. 날카로운 도구로 바위 면을 긁어서 새겼지요. 돌칼과 같은 도구로 선을 그어 형체를 표현한 그림도 있지만, 안쪽 면을 끌 같은 것으로 우묵하게 파내어 형체를 표현한 그림이 많이 보여요.반구대 암각화문화재청반구대에는 다양한 그림들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어요. 배, 그물, 작살, 방패 등 사냥과 물고기 잡이에 필요한 도구를 비롯해 개, 호랑이, 표범, 사슴, 멧돼지, 여우, 늑대 등의 뭍짐승과 물개, 상어, 거북, 고래 등의 바다짐승이 새겨져 있어요. 또한 짐승을 사냥하는 사냥꾼, 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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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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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잡이를 하다
반구대 암각화에는 놀랍게도 고래잡이 나가는 배의 그림을 포함해 다양한 고래 그림도 잔뜩 그려져 있어요. 이곳에 고래가 살았고 당시 사람들은 고래잡이를 하였음이 분명하지요.“우리나라에도 저렇게 고래가 많이 있었나요?”“선사 시대 사람들이 어떻게 큰 고래를 사냥할 수 있었죠?”더욱 신기한 것은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에 등장하는 고래들도 다양하고, 고래 종류마다 독특한 특성을 잘 표현해 놓았다는 것이에요. 등에서 두 갈래로 물을 뿜어 내는 긴수염고래, 작살이 꽂힌 고래, 새끼를 가진 고래, 새끼를 등에 업고 다니는 쇠고래, 새끼에 젖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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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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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구대 암각화를 통해 삶을 배우다
암각화는 대부분 강가 절벽이나 바위에 새겨졌어요. 바위 그림 밑에는 대개 넓은 공간이 있어 제사를 지내거나 의식을 올렸어요.“선사 시대 사람들은 왜 그렇게 힘든 바위 그림을 그렸을까요?”반구대 바위 그림에는 물고기와 바다짐승, 뭍짐승이 가장 많이 그려져 있어요. 그리고 이들 짐승을 잡는 도구와 무기도 함께 그렸지요.아이들은 어른들을 따라다니며 사냥과 고기잡이를 배웠어요. 창을 던지는 법, 그물 치는 법, 짐승의 종류와 물고기의 생김새 등등을 하나씩 배워 나갔지요. 뭍에 사는 사람이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아야 할 때 경험 많은 어른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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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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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작은 이야기: 절을 찾다가 발견한 바위 그림
1970년 동국대학교 박물관 조사단은 울산 지역 불교 유적들을 조사하고 있었어요. 조사단은 원효가 머물렀다고 하는 반고사라는 절의 터를 찾고 있었지요. 삼국사기에 반고사 위치는 반구대 위에 있다고 했어요. 그러나 절터는 찾을 수 없었어요. 당시 반구대는 사연댐 때문에 물에 잠겨 있었기 때문이었지요. 실망스런 상황이었어요.“물길을 따라 올라가면 불탑 흔적이 남아 있는 탑거리가 있소.”그때 근처 마을에 사는 최경환 노인이 조사단에 희망을 주었지요. 조사단은 노인과 함께 탑거리에서 탑 흔적을 살피고 있었어요.“이 보시오. 저기 아래 바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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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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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기 시대의 비밀을 간직한 고인돌
핑매바위(전남 화순군)“아이고! 이를 어쩌나? 족장님께서 그만 돌아가셨다네”“슬퍼하고 있을 때가 아니네. 사람들을 모아 어서 장례를 치러야지.”“그러세. 작년에 만들어 놓은 돌을 이용하면 되겠어.”전라남도 화순에 있는 이 바위는 세계에서 가장 큰 고인돌 가운데 하나로 핑매 바위라 부릅니다. 고인돌은 청동기 시대 사람들의 무덤을 말해요. 청동기 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큰 돌을 옮겨 무덤을 만들었을까요? 고인돌을 통해 무엇을 알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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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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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바위’, 고인돌로 밝혀지다
1995년 겨울, 전라남도 화순의 보검재 계곡으로 목포대학교의 이영문 교수와 학생들이 찾아왔어요. 마을 사람들이 옛날부터 ‘괴바위’라 부르던, 길 가의 큰 바위를 찾아 답사를 온 거예요. 당시 마을 사람들은 깊은 숲 속 나무와 풀 속에 가려 있는 돌을 그냥 산 속의 흔한 바위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지요.‘괴바위’의 아래쪽은 흙으로 덮여 있어 큰 바위만 땅 위로 보였어요. 이영문 교수 일행이 바위 아래의 흙을 파내자 덮개돌을 받치고 있는 여러 개의 돌기둥이 드러났어요. 바위 아래에는 사람들이 일부러 돌을 떼어낸 자국도 보였지요. 산 속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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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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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돌은 어떻게 만들었을까?
고인돌을 만드는 첫 단계는 돌을 떼어 내는 일이었어요. 청동기 시대 사람들은 바위산에서 원하는 모양의 큰 돌을 얻기 위해 나무를 이용했어요. 바위에 40~50cm 정도의 간격으로 구멍을 뚫고, 그 구멍에 뾰족한 모양의 나무 쐐기를 박아 넣었어요. 그리고 나무에 물을 부었어요. 물에 젖은 나무는 팽창하게 되고, 그 힘으로 바위가 쪼개졌어요.쪼개진 바위는 여러 사람이 모여 통나무를 깔고 줄을 엮어서 원하는 곳으로 끌고 가 무덤을 만들었어요.쐐기를 이용한 채석 모습과 덮개돌을 옮겨가는 사람들(고창고인돌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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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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덮개돌을 옮길 때 얼마나 많은 사람이 필요했을까?
마고 할미가 버리고 갔다는 전설이 담긴 핑매 바위는 돌을 던진다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에요. 핑매 바위는 길이 7m, 높이 4m, 무게 220톤이 넘는 초대형 덮개돌로 만든 세계 최대 크기의 고인돌 가운데 하나로 알려져 있어요. 핑매 바위를 옮기려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필요했을까요?고인돌 덮개돌을 옮길 때 필요한 사람 수보통 1톤의 바위를 옛날 방식으로 옮기려면 성인 남성 10명의 힘이 필요해요. 220톤 무게의 핑매 바위를 옮기려면 약 2,200명의 사람이 필요하지요. 핑매 바위를 기준으로 남자 1명 당 3~5명 정도의 가족이 있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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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돌은 지배자의 무덤?
고인돌은 많은 사람을 동원해 만들었기에 보통 지배자의 무덤이라 추측하고 있어요. 고인돌에 함께 묻은 물건들을 통해서도 죽은 자의 신분을 알 수 있지요. 돌검이나 청동검은 마을의 우두머리가 사용하던 것이에요.고인돌의 내부모습 복원(고창고인돌박물관)그러나 고인돌이 꼭 지배자의 무덤인 것은 아니에요. 고인돌에서는 어린 아이, 여자, 노인들로 보이는 사람의 뼈도 발견되었어요. 그리고 일상 생활에서 사용하던 토기나 돌로 만든 도구들도 나왔지요. 크기가 작은 고인돌은 아마도 평범한 일반 사람들이 묻혔을 것으로 보여요. 핑매 바위를 중심으로 모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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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34
고인돌 왕국 한반도
기원전 2,500년~기원전 수백 년 전후로 만들어졌던 고인돌은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볼 수 있을 정도로 많아요. 지금까지 한반도에서는 약 2만 여기 이상의 고인돌이 발견되었어요. 거대한 고인돌을 만들 수 있을 만큼 청동기 시대 한반도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고인돌은 주로 해안이나 강변의 바위산 절벽 근처에서 많이 발견되고 있어요. 모두 고인돌의 재료를 구하기 쉬운 장소들이에요. 청동기 시대 사람들은 강과 바다 주변의 살기 좋은 평지에 모여 살면서 근처 산의 바위를 이용해 고인돌을 만들었을 거예요.사람이 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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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33
역사 속 작은 이야기: 고인돌은 우리나라에만 있을까?
세계 고인돌의 분포고인돌은 유럽, 인도, 동남아시아 등 유라시아 대륙에서도 발견되었어요. 유럽에 있는 고인돌은 주로 탁자 모양을 하고 있어요. 그리고 여러 개의 돌을 이어 터널처럼 길게 연결시켜 놓은 모양도 있어요. 이것은 한 사람을 묻는 한반도의 고인돌과 달리 여러 사람을 함께 묻기 위해 만든 것이에요.청동기 시대 사람들은 자연의 모든 것이 살아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 중에서도 오랜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바위를 중요한 신앙의 대상으로 삼았죠. 큰 바위를 믿음의 대상으로 삼는 문화가 전 세계에 널리 퍼져있었음을 고인돌을 통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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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32
돌과 철 사이 인류가 처음 사용한 금속, 청동기
복원한 청동기 시대 마을(고창고인돌박물관)“이보시오! 이보시오! 여기 고물 좀 가져가시오.”“어디 이 정도면 엿 한 덩이면 되겠습니까? 그런데 이 녹슨 고물은 어디서 났소?”“비가 많이 와서 집 주변에 배수로를 파다 우연히 나왔지요.”“하하! 횡재하셨구려.”전남 화순의 한 시골 마을에서 고물 장수가 엿 한 덩이로 바꾼 고물은 다름 아닌 청동기였어요. 그것도 발굴 장소를 알 수 있고 우리나라에 뛰어난 청동기 문화가 있었음을 증명한 국보급 청동기였어요. 청동기는 무엇일까요? 청동기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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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31
구리의 발견과 문명의 발전
대략 50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첫 인류가 나타났어요. 오랜 시간이 흐르고 인류가 돌을 이용해 처음으로 도구를 만든 시기는 대략 250만 년 전으로 보고 있어요.인류는 우연히 돌과 돌끼리 부딪혀 떨어져 나간 돌조각에서 날카로운 날을 발견했어요. 그리고 날카로운 날을 이용해 찍거나 자르는 도구로 사용했어요. 돌을 다듬는 기술도 조금씩 발전하면서 주먹도끼나 찌르개 등 여러 도구를 만들 수 있었어요.오랫동안 인류는 돌을 다듬는 기술을 발전시켰어요. 신석기 시대에는 돌을 더욱 날카롭게 갈아서 다양한 용도의 도구를 만들어 사용했어요.뗀석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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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30
최초의 청동기는 어떤 모습일까?
이스라엘의 유적에서 한 여자의 뼈가 발견되었어요.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건조한 기후 때문에 유골은 묻혔을 때의 모습 그대로 발굴되었어요. 이 여자는 손에 작은 청동 송곳을 꼭 쥐고 있었어요. 학자들은 여자가 쥐고 있던 청동 송곳이 구리가 처음 사용되었을 때 만들어진 유물로 밝혀지자 깜짝 놀랐어요.인류가 구리를 이용하기 시작할 때는 광산을 개발하는 방법도 몰랐고, 금속을 다루는 법도 몰랐어요. 그래서 땅 위에서 구한 돌을 가열해 아주 적은 양의 구리를 빼내 도구를 만들었어요. 게다가 구리가 단단하지 않아 큰 도구를 만들 수도 없었어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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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29
청동기를 만드는 최고의 기술, 거푸집
돌로 도구를 만들 때는 주로 돌을 부딪쳐 깨뜨리거나 갈아서 만들었어요. 이런 방법으로는 사람이 원하는 모양으로 도구를 만들기가 어려웠었어요. 갈기에 쉬운 돌을 찾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지요. 하지만 인류가 구리를 발견하고 이를 이용하면서 도구 제작에 대한 생각이 크게 바뀌었어요.청동검 거푸집과 청동도끼 거푸집(국립중앙박물관,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처음에 사람들은 가열한 구리 덩어리를 망치로 두드려 작은 도구를 만들었어요. 시간이 지나고 구리의 생산량도 늘어나면서 녹은 구리 용액을 일정한 틀에 부어 굳히면 똑같은 모양을 만들 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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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28
독특한 모양의 청동검, 비파형 동검
둥글게 배가 부른 모양이 ‘비파’라는 악기를 닮았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청동검이 비파형 동검이에요. 학자들은 고조선이 요동 지역을 중심으로 만주와 한반도의 북쪽에 있었을 것으로 보아요. 그런데 비파형 동검이 고조선의 영역에서 청동거울과 함께 많이 출토되었어요.비파형 동검과 손잡이를 단 비파형 동검, 그리고 중국식 동검국립중앙박물관, 국사편찬위원회고조선 사람이 중심이 되어 만든 청동검은 모양이나 만드는 방법이 중국에 있던 나라의 것과 달랐어요. 특히 비파형 청동검은 검날과 손잡이를 따로 만들어 결합해 사용했어요.이와는 다르게 중국검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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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27
잔무늬 거울의 미스터리
청동거울은 한반도와 중국, 일본에서도 많이 출토되는 대표적인 청동기 유물이에요. 빛을 받으면 반짝거리는 청동거울은 하늘의 태양을 의미한 것으로 보여요. 제사장은 가슴에 청동거울(태양)을 매달아 자신이 하늘을 대신한 사람임을 과시했을 거예요.잔무늬 거울(다뉴세문경, 문화재청)과 청동거울을 매단 제사장의 상상도1960년경 충남 논산에서 특별한 청동거울 한 점이 출토되었어요. 이 청동거울을 조사한 학자들은 이전에 볼 수 없었던 모습에 깜짝 놀랐어요. 지름 21.2㎝의 청동거울 안에는 무려 1만3000개가 넘는 정교한 선과 동심원이 새겨져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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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26
역사 속 작은 이야기: 청동기 시대는 청동으로 만든 도구만 사용했을까?
한반도에 청동기와 제조법이 들어왔어요. 처음에는 지배층을 중심으로 청동기를 사용했어요. 그럼 청동기 시대 일반 백성들도 청동기를 사용했을까요?많은 수의 청동기가 한반도에 출토되면서 당시 사회 모습을 되살릴 수 있었어요. 출토된 청동기의 종류를 살펴보면, 비파형 청동검이나 청동거울, 청동방울 등 최고 제사장이 사용했을 도구가 많아요.청동기가 더 발전하면서 세형동검이나 투겁창 등 전쟁에서 사용했던 무기 종류도 늘어났어요. 하지만 일반 백성들이 생활 속에서 사용했을 도구들은 많이 발견되지 않았어요.청동기 시대 간석기(국립중앙박물관, 국립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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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25
청동기 시대 생활 터전, 부여 송국리 유적
부여 송국리 유적(충남 부여군)“자네, 빗살무늬 새겨 넣지 않나?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토기가 깨져 쓸모가 없다네.”“자네, 아직 모르는군. 이제 빗살무늬를 일부러 새겨 넣을 필요가 없다네. 그렇게 하지 않아도 훨씬 튼튼한 토기를 만들 수 있다네.”부여 송국리 유적지에 가면 청동기 시대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알 수 있는 유적과 유물이 있어요. 과연 청동기 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생활했을까요? 우리 함께 부여 송국리 유적으로 떠나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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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24
부여 송국리 유적, 청동기 시대 마을을 담다
충청남도 부여 송국리 유적에 가면 청동기 시대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알 수 있어요. 금강 유역에 있는 부여 송국리 유적은 낮은 구릉 지대로 주변에는 넓은 평야 지대가 펼쳐져 있지요.이 유적은 1975년 국립중앙박물관의 발굴조사로 알려졌어요. 1997년까지 여러 차례의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결과 다수의 집터와 무덤들이 발견되었어요. 이 유적에서 조사된 움집은 평평하고 네모난 모양의 얕은 움집과 평평하고 동그란 모양의 깊은 움집이었어요. 또 이곳은 나무 울타리나 도랑으로 둘러싸여 있었지요. 이것으로 보아 이곳은 청동기 시대 사람들이 집단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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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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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의 크기가 커지고 울타리도 만들다
신석기 시대 사람들은 강가에 움집을 짓고 살았어요. 이와는 달리 청동기 시대 사람들은 언덕에 집을 짓고 살기 시작했어요. 바닥의 흙은 불에 태워 단단하게 만들고, 짚으로 엮어 만든 자리나 나무껍질, 널빤지 등을 깔아 그 위에서 생활하였지요. 흙바닥이 아닌 ‘방바닥’이 생긴 셈이에요. 벽에는 널빤지를 둘러 세우거나 나무껍질을 대어 습기를 막았어요.주거지문화재청부여 송국리 청동기 마을 유적에는 둥근 모양의 집터와 네모난 모양의 집터가 있어요. 둥근 모양의 집터는 바닥을 깊이 파서 만들었어요. 특이하게 그 구덩이의 양쪽 끝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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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22
송국리형 토기라 불리는 민무늬 토기
부여 송국리 유적 집터에서 민무늬 토기가 출토되었어요. 청동기 시대 부여 송국리 사람들은 민무늬 토기를 만들어 사용하였어요. 민무늬 토기는 겉면에 빗살무늬를 새기는 대신 아무 무늬도 넣지 않고 밋밋하게 만들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에요. 빗살무늬를 새긴 빗살무늬 토기와 비교되지요.빗살무늬 토기는 토기를 굽는 도중에 표면이 갈라져 터지는 것을 막기 위해 빗살무늬를 새겨 만들었어요. 민무늬 토기는 이제 굳이 빗살무늬를 새기지 않아도 갈라져 터지지 않을 만큼 높은 온도에서 토기를 굽는 기술을 터득했다는 것을 의미하지요.또 민무늬 토기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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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21
돌로 무덤을 만들다
만약 고대 사람들의 무덤이 지금까지 전해지지 못했다면 어땠을까요? 아마도 삼국 시대 이전 우리 역사를 거의 알지 못했을지 몰라요. 삼국 시대 이전의 역사를 알려주는 기록은 매우 적기 때문이지요. 이 땅에 살았던 고대의 사람들도 지금 우리처럼 기뻐하고 사랑하며 또 갈등을 빚고 슬퍼하며 살았을 텐데 말이지요.옛날의 무덤은 묻히는 사람뿐만 아니라 그 사람이 쓰던 물건들과 무덤에 넣으려고 만든 특별한 물건들을 함께 묻었어요. 그래서 우리는 무덤 속 유물들을 통해 무덤의 주인공과 그 사람이 살았던 시대의 모습을 함께 상상해 볼 수 있어요.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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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20
역사 속 작은 이야기: 청동기 시대 유적지에 왜 간석기가 발견될까?
충청남도 부여 송국리 유적은 청동기 시대 사람들이 살았던 마을이에요. 그런데 이 유적지에서 출토되는 유물에는 청동기만 있는 게 아니고 다양한 종류의 간석기도 함께 발견되고 있어요. 왜 그럴까요?오랫동안 사람들은 돌과 나무, 짐승과 생선의 뼈로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였어요. 도구를 만드는 솜씨는 점점 발달하고, 지식은 점점 쌓여 갔지요. 그러다 마침내 사람들은 금속을 발견했어요. 어느 순간 우연히 금속이 불에 녹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러면 어떤 모양이 만들어지고, 다시 그것을 식혀 모양을 굳힐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지요.그러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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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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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몽, 고구려를 세우다
오녀산성(중국 랴오닝성)“우와, 또 과녁 한 가운데를 맞췄네.”“어찌된 일인가! 활을 쏘면 백발백중일세.”“최고의 명궁이라더니 정말 대단하네.”활쏘기 대회에 몰려든 사람들은 소년의 활쏘기 실력에 감탄했어요.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고 안정적으로 과녁 한 가운데를 연거푸 명중시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이에요. 과연 이 소년은 누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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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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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몽, 알에서 태어나다
이 소년은 주몽이에요. 주몽의 이야기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비롯한 여러 기록에서 아주 신기하고 특별한 이야기로 소개되어 있어요. 과연 어떤 이야기들일까요?주몽은 신비한 기운을 받고 태어났어요. 주몽의 어머니 유화 부인은 강의 신 하백의 딸이었어요. 유화 부인은 우연히 한 남자를 만나서 사랑하게 되었는데, 그는 자신이 하늘의 아들 해모수라고 하였어요. 하지만 하백은 딸이 마음대로 혼인하였다고 해서 집에서 내쫓았어요.그러던 어느 날, 동부여의 왕인 금와왕이 강가에서 우연히 유화 부인을 만나게 되었어요. 금와왕은 유화 부인이 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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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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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들의 괴롭힘과 위협으로 동부여를 떠날 결심을 하다
“주몽, 저 놈을 그냥 내버려두면 안 될 것 같아.”“네, 형님. 저 놈이 저렇게 활쏘기를 잘하며 우쭐하면서 아바마마의 인정받는 것을 더 이상 못 보겠습니다.”“그래, 저 놈에게 왕위를 빼앗길 순 없지.”금와왕에게는 첫째 아들 대소를 비롯한 많은 왕자들이 있었어요. 이들은 주몽이 많은 사람들의 인정을 받는 것이 못마땅했어요. 자신들과 달리 주몽이 어려서부터 용감하고 재주가 뛰어나서 아버지인 왕에게 사랑을 받는 모습이 싫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주몽은 왕자들과 잘 지내고 싶었어요. 그래서 왕자들의 심부름도 잘하면서 사이좋게 지내려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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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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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세상으로 나아가 고구려를 세우다
“아니, 주몽이 지금 탈출하고 있다고?”대소는 주몽이 출한다는 소식에 버럭 화를 내며 주몽을 잡아야 한다고 명령을 내렸어요.“모두 나서서 주몽을 추격해라! 꼭 그 놈을 잡아야 한다.”대소와 동부여의 군사들은 주몽 일행을 바짝 뒤쫓았어요. 이런 긴박한 상황에서 주몽에게 위기가 닥쳤어요. 주몽이 가는 길 앞을 커다란 강이 가로 막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배가 없으면 이 강을 건너지 못하고 대소와 동부여 군사들에게 꼼짝없이 붙잡힐 위기였어요. 어느덧 주몽을 뒤쫓는 대소와 동부여 군사들이 거의 다 따라 붙었어요.“주몽, 네 이놈, 어디를 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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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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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강 유역의 마한 유적
국립나주박물관(전남 나주시)“교수님! 어제 신문 기사를 보니 마한 역사문화권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질 것 같아요.”“저도 보았어요. 앞으로 마한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겠군요.”2020년 한 대학생이 교수님과 나눈 가상 대화예요. 대화 속에서 등장하는 마한은 어떤 역사를 간직한 나라일까요? 지금부터 마한 사람들이 살아온 모습을 살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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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한, 삼한을 이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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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국가가 어느 나라인지 아나요? 맞아요. 청동기 문화를 바탕으로 세워진 고조선이죠. 고조선의 역사는 기원전 108년 중국 한나라의 공격으로 멸망할 때까지 아주 오랜 기간 이어졌어요. 그 과정에서 철기도 받아들였지요.철기를 만드는 기술이 널리 퍼져가면서 만주와 한반도에는 여러 나라가 세워졌어요. 북쪽에는 부여와 고구려, 동해안 일대에는 옥저와 동예, 한반도의 중남부 지역에는 삼한이 자리 잡았어요.철기를 바탕으로 세워진 여러 나라삼한은 마한, 진한 변한으로 나눌 수 있어요. 마한은 지도에서 보듯이 경기도와 충청도, 전라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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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한의 역사를 알려면 이곳을 찾아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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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한박물관 사이트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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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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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한의 역사가 시작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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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한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중국 역사책에 남아 있어요. 진수라는 사람이 쓴 『삼국지』에는 한반도 남부에는 한(韓)이 있고, 이들은 마한, 진한, 변한의 삼한을 이루고 있다고 적혀있어요.『삼국지』보다 먼저 편찬된 또 다른 역사책이자 중국 삼국 시대 위나라의 역사를 정리한 『위략』에는 고조선 왕 준왕이 위만에게 쫓겨나 바다를 건너 한(韓)이 있는 지역으로 왔다는 기록이 있어요. 그래서 마한의 역사를 연구하는 역사가들은 고조선에서 온 사람들이 아산만 일대에 살기 시작하면서 마한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생각해요.이후 마한은 낙랑을 비롯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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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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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한 삼국과 다른 특징을 가진 무덤을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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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부터 오랫동안 무덤을 만들 때는 땅을 파고 그 속에 시신을 묻는 것이 일반적이었어요. 마한에서는 이런 땅을 파고 묻는 무덤도 있지만 땅 위에 흙을 쌓고 그 속에 시신을 두는 무덤도 많이 발견되어요. 마치 작은 언덕처럼 보이는 이런 무덤을 분구묘(墳丘墓)라고 불러요. 분구묘는 나중에라도 수직 또는 수평으로 무덤을 추가해서 만들기가 쉬웠어요.분구묘 중 대표적인 것이 전라남도 나주 복암리에서 발견되었어요. 나주 복암리 3호분은 하나의 분구에 다양한 종류의 무덤이 41기나 발견되었는데, 역사학자들이 연구해 보니 무덤들은 약 400여 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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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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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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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한이 54개 나라로 이루어졌다는 거 기억나지요? 중국 역사책에는 이런 마한의 나라 이름이 모두 적혀있어요. 나라 중 규모가 큰 나라는 1만여 가(家), 작은 나라는 수천 가(家)의 사람이 살았다고 해요. 큰 나라와 작은 나라를 지배하는 군장도 각각 ‘신지’와 ‘읍차’로 구별해서 불렀다고 해요.그런데 정치적 지배자인 신지와 읍차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 있었어요. 바로 천군이 다스리는 ‘소도’라는 곳이죠, ‘소도’에는 큰 나무에 북, 방울, 새 모양의 장식 등을 매달아 놓아 특별한 곳임을 표시했어요. 이곳으로 죄를 지은 사람이 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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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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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작은 이야기: 마한이 백제에 멸망 당한 시기는 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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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충정도, 전라도 일대에서 발전했던 마한은 언제 역사 속으로 사라졌을까요? 중학교 역사책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있어요.백제는 4세기 후반 근초고왕 때 크게 발전하였다. 이 시기에 해상 교역망을 둘러싸고 고구려와 대립하였고, 고구려의 평양성을 공격하여 대동강 이남의 땅을 차지하였다. 남쪽으로는 마한의 남은 세력을 정복하여 남해안까지 영역을 확장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해상 교역망을 장악하며 남조 및 가야, 왜 등과 교류하였다.- 2015 개정교육과정 중학교 역사② 지학사-일반적으로는 근초고왕 24년(369)에 마한이 백제에 멸망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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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8
박혁거세, 신라의 첫 임금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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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정(경북 경주시)신라의 첫 이름은 사로국(서라벌)이었어요. 사로국은 지금의 경주시 전체를 합친 정도 크기의 작은 나라였어요. 사로국 이전에는 고조선이 멸망한 이후 북쪽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이 산골짜기 이곳저곳에서 여섯 마을을 이루고 살고 있었어요. 여섯 마을은 각각 여섯 촌장이 다스렸지요. 그러다가 여섯 마을이 합쳐져 사로국이 만들어졌어요.어떻게 사로국이 만들어졌을까요? 다행히 이 때의 모습을 담은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답니다.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알아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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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7
박혁거세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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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여섯 촌장은 양산촌을 흐르는 냇가 언덕에 모여 회의를 열었어요. 임금이 따로 없었던 때라 여섯 촌장이 모여 중요한 일을 결정하곤 했어요. 양산촌의 촌장은 근심어린 표정으로 말문을 열었어요.“백성들이 잘못된 생각으로 제멋대로 행동하니 어찌 하면 좋을까요?”“마을마다 법도가 서로 달라 벌어진 일입니다.”“맞습니다. 덕이 있는 분을 찾아 임금으로 삼고 나라를 세워 법도를 세워야 합니다.”“좋은 생각입니다. 하지만 여섯 마을의 모든 백성들에게 존경받을 수 있는 분을 어떻게 모실 수 있을까요?”여섯 촌장은 이런 생각 저런 의견을 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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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6
알영, 신라의 첫 번째 왕비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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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과 알영『삼국유사』에는 박혁거세의 부인인 알영에 대한 이야기가 전하고 있어요.박혁거세가 태어나던 해에 알영정에 계룡이 나타났어요. 이 계룡은 머리는 닭을, 몸은 용을 닮았는데, 왼쪽 옆구리로 여자 아기를 낳았어요. 이때 우물로 물을 길러 온 한 할머니가 이 여자 아기를 받았지요.“계룡이 아기를 낳다니... 아기는 건강한데 흉측하게 입술이 닭의 부리를 닮았네!”아기의 모습에 놀란 할머니는 아기를 안고 월성 북쪽의 냇가로 가서 몸을 씻겼어요. 그러자 아기의 입에서 부리가 떨어지고 예쁜 입술이 나타났어요.사람들은 아기의 이름을 우물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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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5
박혁거세와 알영, 오릉에 묻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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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나라를 다스리며 백성들의 존경을 받던 박혁거세가 몸이 쇠약해져 숨을 거두고 말았어요. 그런데 신기한 일이 벌어졌어요. 박혁거세의 몸이 홀연히 하늘로 올라갔는데, 8일 후에 몸이 나뉘어져 땅에 떨어진 거예요. 그리고 지아비를 잃고 홀로 남아 눈물을 흘리던 알영 왕비 역시 왕을 따라 세상을 떠났어요.“아이고! 아이고! 어진 임금님께서 갑자기 떠나시다니...”“왕비께서도 어찌 그리 빨리 떠나신단 말입니까!”“나라를 지키던 두 성인을 모두 잃었으니 우리 백성들은 어찌 살란 말인가!”왕과 왕비를 모두 잃은 백성들은 슬퍼하며 둘을 함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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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4
온조, 한강 유역에 백제를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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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백제박물관(서울 송파구)“어마마마, 저는 바다와 가까운 곳에 터를 잡고 싶습니다.”“비류 형님, 큰 강 옆으로 넓은 평야가 있고 주변이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이곳이 나라를 세우기에 더욱 좋은 곳이 아닐까요?”“아니다. 너는 어머니를 모시고 뜻한 대로 하거라. 나는 나를 따르는 백성들과 함께 미추홀(인천)로 갈 것이다.”비류는 그를 따르는 백성들과 함께 미추홀로 떠났어요. 미추홀로 향하는 비류와 백성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온조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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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3
유리, 아버지 주몽을 찾아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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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에서 도망쳐 온 주몽은 졸본부여에 살고 있던 소서노의 도움을 받아 고구려를 세웠어요. 주몽이 고구려의 왕이 되자 소서노도 왕비가 되었고, 소서노의 두 아들 비류와 온조도 고구려의 왕자가 되었지요.주몽은 나라를 세우는데 많은 도움을 준 소서노를 귀하게 대했어요. 물론 비류와 온조도 자기 자식처럼 아꼈지요. 소서노는 주몽을 이을 왕은 첫째 아들인 비류가 될 것이라 생각했어요.나라의 기틀을 잡아가던 어느 날이었어요. 부여에서 한 젊은 청년이 주몽을 찾아왔어요.“폐하! 저를 알아보시겠는지요? 소자 유리옵니다.”“뭐시라! 네가 내 아들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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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2
비류와 온조, 고구려를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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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류와 온조는 주몽의 결정에 크게 실망했어요. 주몽이 부여에서 대소를 비롯한 여러 왕자들에게 목숨의 위협을 받은 것처럼 비류와 온조도 태자가 된 유리에게 위협을 받을 수도 있었어요. 고민 끝에 비류와 온조는 어머니에게 말했어요.“유리 형님이 왕이 된다면 저희는 하루하루 고통 속에 살게 될 것입니다. 고구려에 남아 구차하게 살 바에는 차라리 남쪽으로 내려가 나라를 세우는 것이 어떻겠습니까?”“나도 너희와 생각이 같다. 우리를 따르는 백성들과 함께 한다면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 것이 뭐가 어렵겠느냐!”주몽에게 허락을 받은 비류, 온조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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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1
온조, 백제를 세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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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류는 온조와 신하들의 말을 듣지 않고 백성을 나누어 바다와 가까운 미추홀로 떠나 버렸어요. 온조는 강 남쪽 위례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를 세웠어요. 나라 이름은 열 명의 신하의 도움을 받아 세웠다고 십제(十濟)라 하였지요.비류가 도착한 미추홀은 땅이 습하고 물이 짜서 곡식이 잘 자라지 않는 곳이었어요. 오래되지 않아 비류는 미추홀이 백성들이 편안히 살 수 없는 곳임을 깨닫게 되었어요. 비류는 온조가 세운 십제를 돌아보았어요. 도읍은 안정되었고 백성들도 평안하게 살고 있었지요. 비류는 자신의 선택을 몹시 후회하고 부끄러워하다 병에 걸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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