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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초, 부처의 가르침을 찾아 당으로 가다
2026-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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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산을 넘어 중앙아시아를 돌아보다
2026-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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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을 넘어 다시 당으로
2026-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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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예, 발해를 배신하다
2026-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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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경용천부로 수도를 옮기다
2026-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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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신라가 만든 부처님의 나라, 불국사…
2026-07-21
10
부처님의 나라 불국사와 석굴암을 짓다
2026-07-21
1
불교의 성지, 천축국을 가다
2026-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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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의 성장 - 발해, 해동성국으로 우뚝…
2026-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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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적으로 만든 석굴 사찰, 석굴암
2026-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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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초, 부처의 가르침을 찾아 당으…
2026-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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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산을 넘어 중앙아시아를 돌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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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예, 발해를 배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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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신라가 만든 부처님의 나라,…
2026-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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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나라 불국사와 석굴암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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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성지, 천축국을 가다
2026-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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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의 성장 - 발해, 해동성국으…
2026-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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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적으로 만든 석굴 사찰, 석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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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초, 부처의 가르침을 찾아 당으…
2026-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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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산을 넘어 중앙아시아를 돌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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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신라가 만든 부처님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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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나라 불국사와 석굴암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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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성지, 천축국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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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적으로 만든 석굴 사찰, 석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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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왕, 발해의 영토를 넓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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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왕, 나라의 기틀을 다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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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초, 부처를 찾아 천축국에 가다
2026-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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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초, 부처의 가르침을 찾아 당으…
2026-07-21
3
불교의 성지, 천축국을 가다
2026-07-21
고대사 700년대
혜초, 부처를 찾아 천축국에 가다
혜초, 부처의 가르침을 찾아 당으로 가다
불교의 성지, 천축국을 가다
설산을 넘어 중앙아시아를 돌아보다
사막을 넘어 다시 당으로
발해의 성장 - 발해, 해동성국으로 우뚝서다
무왕, 발해의 영토를 넓히다
대문예, 발해를 배신하다
무왕, 당의 등주를 공격하다
문왕, 나라의 기틀을 다지다
상경용천부로 수도를 옮기다
발해의 자신감을 드러내다
선왕, 발해의 전성기를 이루다
통일 신라가 만든 부처님의 나라, 불국사와 석굴암
부처님의 나라 불국사와 석굴암을 짓다
부처님 나라로 건너가는 청운교·백운교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신 대웅전
진리의 세계를 나타낸 비로전
인공적으로 만든 석굴 사찰, 석굴암
돌로 굴을 만들어 부처님을 모시다
역사 속 작은 이야기: 부모를 위해 불국사와 석굴암을 지은 김대성
부처님의 소리를 내는 성덕 대왕 신종
절에 가면 종이 왜 있을까요?
신라, 성덕 대왕 신종을 만들다
성덕 대왕 신종은 어떤 종일까요
세계적으로도 인정받고 있는 신라 종
역사 속 작은 이야기: 에밀레종이라고 불리게 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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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초, 부처를 찾아 천축국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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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황 막고굴(중국 간쑤성)“석굴 속에 많은 두루마리 문서들이 쌓여 있더군요.”“아주 오래된 것들이지요. 주로 불경이랍니다. 약간의 비용만 지불하시면 원하는 만큼 가져가셔도 됩니다.”“정말입니까?”1908년 프랑스 학자 펠리오는 둔황의 막고굴에서 천여 년동안 사람의 손을 타지 않고 먼지만 수북이 쌓여 있던 두루마리들을 조사하고 분류하였어요. 그리고 7,000여 점을 프랑스로 가져갔지요.펠리오가 가져간 두루마리 속에는 지금으로부터 1,300여 년 전 신라의 승려 혜초가 쓴 『왕오천축국전』도 있었어요. 그 먼 옛날 혜초는 어떻게 중국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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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07-21
26
혜초, 부처의 가르침을 찾아 당으로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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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불교는 법흥왕 때 이차돈의 순교와 함께 공인되었고, 점차 백성들 속으로 널리 퍼져 나가기 시작하였어요. 삼국을 통일한 이후 신라에서는 불교가 더욱 화려하게 꽃을 피웠지요. 전국 각지에 많은 절과 탑이 만들어졌어요. 그리고 많은 승려들이 불교를 공부하고 수행을 하였지요.이차돈 순교비(국립경주박물관)이차돈의 목을 베자 하얀 피가 솟고 하늘에서 꽃비가 내렸다고 전해짐국내에서 불교에 대한 공부가 부족하다고 느낀 승려들은 부처의 나라 천축국(인도)에서 새로 들여온 경전과 최신의 불교 이론을 접할 수 있는 당으로 유학을 갔어요. 유학길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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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07-21
25
불교의 성지, 천축국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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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에 목말랐던 혜초는 드디어 인도로의 여행을 결심했어요. 혜초는 중국 광저우를 출발해 바닷길을 이용해 인도로 향했어요. 인도를 향했던 많은 승려들이 이용하던 길이었어요. 혜초 보다 200년 앞서 우리나라 승려 중 가장 먼저 인도를 찾은 백제의 겸익 스님도 이 길을 따라 여행을 하였지요.달 밝은 밤에 고향길을 바라보니뜬구름은 너울너울 돌아가네.그 편에 감히 편지 한 장 부쳐 보지만바람이 거세어 화답이 안 들리는구나내 나라는 하늘가 북쪽에 있고남의 나라는 땅 끝 서쪽에 있네.일남에는 기러기마저 없으니누가 소식 전하러 계림으로 날아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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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07-21
24
설산을 넘어 중앙아시아를 돌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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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초는 북천축을 지나 카슈미르 지역의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불교 미술이 크게 발달했던 간다라에 이르렀어요. 간다라를 지나 아프가니스탄, 이란(페르시아), 이라크(아랍),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카자흐스탄 등 지금의 서아시아와 중앙아시아 지역까지 여행을 했어요.혜초는 중앙아시아의 토하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에 대해 기록을 남겼어요.가죽 외투와 면직물 옷 등을 입는데, 위로는 국왕으로부터 아래로는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모두 가죽 외투를 겉옷으로 입는다. 낙타, 노새, 양, 말, 면직물, 포도가 풍부하다. 음식은 오직 빵을 좋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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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07-21
23
사막을 넘어 다시 당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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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하라를 거쳐 세계의 지붕 파미르에 이른 혜초는 이제 중국 땅으로 다시 들어가 타클라마칸 사막과 천산산맥 사이로 난 험난한 서역북도를 따라갔어요.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새 한 마리 찾아 볼 수 없는 끝없는 사막, 뜨거운 태양의 열기, 소용돌이치는 모래 바람 속에서 알 수 없는 죽은 자의 해골을 보며 혜초는 한걸음 한걸음 두 발을 내딛었어요. 그리고 둔황을 눈앞에 두고 왕오천국전의 기록은 끝이 납니다.타클라마칸 사막과 천산산맥을 넘는 혜초당으로 돌아온 혜초는 다시 고향인 신라 계림으로 돌아오지 않았어요. 당에서 불교를 연구하고 사람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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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07-21
22
발해의 성장 - 발해, 해동성국으로 우뚝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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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 석등국사편찬위원회“상경 용천부를 중심으로 전국 곳곳을 잇는 교통로를 만들고, 그 길들을 주변 나라까지 이어 활발하게 교역하도록 하라!”상경 용천부는 발해의 도읍이에요. 상경 용천부는 주변 여러 나라와 도로로 연결될 정도의 중심 도시로 성장하였어요. 그만큼 발해가 강대국으로 발전했다는 뜻이지요. 건국 이후 발해는 어떤 과정을 거쳐 성장하였을까요? 이 과정에서 크게 활약한 인물은 누구일까요? [이 게시물은 지금님에 의해 2026-07-21 18:38:27 고대사 600년대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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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07-21
21
무왕, 발해의 영토를 넓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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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9년, 발해를 건국한 대조영이 죽자 맏아들 대무예가 왕위를 이어받아 무왕이 되었어요. 무왕은 나라의 기틀을 튼튼하게 갖추어 나가겠다고 다짐했어요. 그리고 발해만의 독자적인 연호 ‘인안’을 사용하였지요. 무왕은 우선 주변 여러 부족을 정복해 나갔어요. 무왕의 정복 활동으로 고구려와 부여 땅 대부분을 차지할 수 있었죠.“대무예가 왕이 되어 영토를 개척하고 넓혔으니, 동북 지방의 여러 민족이 두려워하며 국왕에게 신하로서 복종하였다.”이때 문젯거리가 하나 생겼어요. 말갈족의 한 갈래인 흑수말갈이 발해와 당 사이에서 홀로 힘을 키우고 있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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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1
20
대문예, 발해를 배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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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왕은 동생 대문예에게 직접 군대를 이끌고 흑수말갈을 공격하라고 명령했어요. 그러나 대문예의 생각은 달랐어요.“흑수말갈을 공격하면 분명히 당의 군대가 쳐들어올 것입니다. 지금 우리 발해의 힘으로는 당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습니다.”대문예는 당에 머문 적이 있어 그 나라 사정에 밝았어요. 게다가 당은 현종이 나라를 잘 다스리고 있어 나라의 힘이 더 강해져 있었어요. 때문에 대문예는 무왕의 흑수말갈 공격을 반대했지요.하지만 무왕은 흑수말갈에 대한 공격을 거듭 명했어요. 그럼에도 대문예가 명을 듣지 않자 무왕은 무척 화가 났어요. 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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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07-21
19
무왕, 당의 등주를 공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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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2년 무왕은 당나라 공격을 명하였어요. 발해 대장군 장문휴는 수군을 이끌고 압록강 입구에서 출발해 바닷길로 당의 등주(중국 산동성)를 기습 공격했어요. 거침없는 기세로 몰아붙인 끝에 발해군은 등주 성을 함락하고 성주까지 죽이는 성과를 거두었어요.당황한 당은 우선 대문예에게 군사를 이끌고 와 발해군에 맞서도록 했어요. 그런데 중국 동북 지방의 날씨가 너무 추워서 행군 도중에 수많은 군사들이 동상에 걸려 죽기까지 했어요. 대문예는 하는 수 없이 남은 군사를 이끌고 되돌아갈 수밖에 없었어요.한편 당은 신라에도 도움을 요청하였어요. 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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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07-21
18
문왕, 나라의 기틀을 다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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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왕이 죽고 아들 대흠무가 왕위에 올라 문왕이 되었어요. 문왕은 당과의 싸움을 멈추고 나라 안의 체제를 정비하는 데 온 힘을 기울였어요.“발해는 이제 주변 나라들이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힘센 나라가 되었다. 지금부터는 당과 친하게 지내면서 나라를 더욱 부강하게 만들어야 한다.”문왕은 한때 당과 싸웠다 할지라도 그들의 앞선 문물을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자 했어요. 우선 당의 중앙 통치 제도를 받아들여 3성 6부를 기본으로 중앙 통치 기구를 정비하였어요. 중앙 행정 기구로 정당성·중대성·선조성의 3성을 갖추고, 정당성 아래 충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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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07-21
17
상경용천부로 수도를 옮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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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점점 커지다 보니 대조영이 세운 도읍은 너무 비좁아졌어요. 더 넓고 살기 좋은 땅이 필요했지요. 문왕은 두만강 하류의 중경으로 도읍을 옮겼어요. 그런데 나라가 성장하자 그곳도 좁았어요. 이번엔 목단강 유역의 상경으로 옮겼어요. 그러다 동경(지금의 훈춘 지역)으로 거듭 도읍을 옮기게 되었어요. 문왕이 다스리는 동안 나라가 계속 성장했던 거예요.발해가 가장 오랫동안 수도로 삼았던 곳은 상경 용천부였어요. 문왕은 상경 용천부를 당의 수도 장안의 모습을 본떠서 만들게 했어요. 상경성은 평지에 네모반듯하게 바깥성을 쌓고 그 안에 왕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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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1
16
발해의 자신감을 드러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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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는 당의 문물을 받아들였지만, 그렇다고 당의 속국이 된 건 아니에요. 발해는 고구려를 이어받은 나라인 만큼 고구려 문화가 바탕을 이루었어요. 여기에 당의 문물을 받아들여 더욱 발전시킴으로써 부강한 나라가 되었지요.발해가 성장하자 발해를 대하는 당의 태도도 바뀌었어요. 이전까지는 당은 발해를 중국의 행정 구역인 ‘군(郡)’으로 불렀어요. 그러나 발해가 강대국의 반열에 올라서자 당은 독립된 한 나라로 인정해 ‘발해국’으로 부르기 시작했어요. 나라가 날로 부강해지면서 문왕은 자신감이 높아졌어요. 그래서 왕의 호칭을 황제로 바꾸었지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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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1
15
선왕, 발해의 전성기를 이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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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는 문왕이 죽고 짧은 기간에 왕위가 여러 번 바뀌면서 잠시 혼란을 겪었어요. 하지만 818년 선왕이 오르면서 안정을 찾고 다시 발전하게 되었지요. 선왕은 나라의 영토를 더욱 넓혀 나갔어요. 동쪽으로 연해주까지, 서쪽으로 요동의 깊숙한 지역까지, 북쪽으로는 흑룡강 지역까지 발해의 영토가 되었어요. 그 결과 선왕 대의 발해는 옛 고구려 영토보다 더 넓었어요.선왕은 넓어진 영토를 효과적으로 다스리기 위해 지방 행정 조직을 정비하였어요. 전국에 5경 15부 62주를 설치하고, 지방관을 파견했어요. 5경은 전국에서 중심지 역할을 한 다섯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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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1
14
통일 신라가 만든 부처님의 나라, 불국사와 석굴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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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국사 청운교·백운교(경북 경주시)문화재청“드디어 불국사가 완성되었다네. 자네도 가 보았는가?”“그런가? 불국사를 본 소감이 어떤가? 나도 얼른 가고 싶네만.”아름답고 웅장한 불국사를 보니 신라가 무척 자랑스럽다네.신라는 왜 불국사를 지었을까요? 불국사는 신라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였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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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1
13
부처님의 나라 불국사와 석굴암을 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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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수학여행이나 현장체험학습으로 자주 가는 경주에서 꼭 빠뜨리지 않고 들르는 곳은 아마도 불국사와 석굴암일 거예요. 불국사는 경주 동쪽의 토함산 자락에 있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아름다운 절이에요.불국사는 이름 그대도 부처님이 사는 나라를 현실 세계에 옮겨 놓은 절이란 뜻이에요. 통일신라 사람들은 괴로움이 없고 즐거움만 있는 극락정토가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 살고 있는 신라 땅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신라가 ‘불국’ 즉 부처님의 나라라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불국사를 지었어요.석굴암은 경주 토함산 산기슭에 돌로 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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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07-21
12
부처님 나라로 건너가는 청운교·백운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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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나라로 가기 위해서는 청운교·백운교라는 계단을 올라야 해요. 계단이지만 원래 그 밑으로 물이 흘렀기 때문에 다리라는 뜻의 ‘교’자를 붙였지요.청운교와 백운교는 대웅전을 향하는 자하문과 연결된 다리를 말하는데, 다리 아래의 일반인의 세계와 다리 위로의 부처의 세계를 이어주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어요.청운교와 백운교는 현세를 지나 불국으로 들어가는 다리인 것이지요. 계단을 올라 자하문을 지나면 부처님 나라에 들어서게 되는 거예요. ‘자하’란 붉은 안개라는 뜻으로, 부처님 몸에서 나오는 붉은 금색의 빛이 안개처럼 서려 있다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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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1
11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신 대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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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하문을 들어서면 석가탑과 다보탑이 나란히 보이고, 그 뒤로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신 대웅전이 있어요. 불상을 모신 법당과 탑은 불국사의 중심이 되는 곳으로 석축을 쌓고 그 위로 지었어요.대웅전 안 수미단 위에는 석가모니 부처님과 양 옆에 미륵보살과 갈라보살을 모셨어요. 부처님은 법당에 단독으로 모시기도 하고, 이렇게 보살상들을 양쪽에 함께 모시기도 해요.대웅전문화재청대웅전 앞 서쪽에 있는 석가탑(불국사 삼층석탑)이 소박하고 단정한 멋을 지녔다면, 동쪽에 있는 다보탑은 화려하고 세련된 멋을 지녔지요. 그런데 대개 절에는 탑이 하나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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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1
10
진리의 세계를 나타낸 비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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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과 무설전 뒤에 위치한 비로전은 비로자나불을 모신 곳이에요. 비로자나불은 모든 부처님의 본체예요. 진리를 우리 눈에 보이는 부처님의 모습으로 형상화한 거지요. 비로자나불은 이 빛으로 사람들에게 희망과 즐거움을 주는 역할을 해요.비로전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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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1
9
인공적으로 만든 석굴 사찰, 석굴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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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암은 건축 방식 자체만으로도 아주 특별한 건축물이에요. 당시 절은 대개 나무로 지었어요. 그런데 석굴암만은 돌을 쌓아서 지었지요. 인도에서 불교가 전파되면서 중국과 우리나라에도 석굴 문화가 함께 전해졌어요. 인도와 중국에선 자연 그대로의 바위산을 파고 들어가 방을 만들고 돌을 깎아 불상을 만들었어요.하지만 석굴암은 다른 곳에서 수많은 돌을 가져다 차곡차곡 쌓아 돌집을 만들고 그 안쪽 면에 조각을 했지요.석굴암은 신라 사람들의 뛰어난 과학 지식을 보여 주는 건축물이에요. 석굴암을 인공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과학적인 계산이 필요했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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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1
8
돌로 굴을 만들어 부처님을 모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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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암 안에는 석가모니 불상이 있어요. 예배의 중심이 되는 부처를 본존불이라고 해요. 석굴암 입구인 네모난 모양의 전실을 지나면 절의 가운데에 본존불이 자리한 둥근 모양의 주실을 만나요. 전실과 주실은 통로로 연결되어 있고, 전실은 주실에 있는 본존불에게 예배를 보는 공간이에요.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순간을 표현한 석가모니 불상은 풍만한 몸체에 엄숙한 표정으로 중생을 내려다보고 있어요. 석굴암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손꼽히고 있지요. 석굴암에는 석굴 입구의 전실과 좁은 통로 양쪽 벽, 그리고 본존불을 중심으로 주실의 원형 벽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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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1
7
역사 속 작은 이야기: 부모를 위해 불국사와 석굴암을 지은 김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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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국사와 석굴암의 창건에 대한 이야기는 『삼국유사』에 전해지고 있어요. 모량리라는 곳에 대성이란 소년이 홀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어요. 남의 집에 품팔이를 해서 얻은 밭으로 근근이 살아가던 대성은 어느 날 법회에 시주를 하면 복을 만 배로 받는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어요. 대성은 내세에라도 복을 받아 잘 살자며 어머니를 설득해 가지고 있던 밭을 절에 바쳤어요. 그리고 얼마 후 갑자기 죽고 말았지요.대성이 죽던 날 밤, 재상 김문량의 집에 하늘로부터 우렁찬 소리가 들려왔어요.“모량리의 대성이를 너에게 주노라.”김문량의 부인은 그로부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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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1
6
부처님의 소리를 내는 성덕 대왕 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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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덕 대왕 신종(경북 경주시)경주시 관광자원 영상이미지“여보게, 오늘 아침에 자네도 종소리를 들었는가?”“들었네. 드디어 어렵게 봉덕사 종이 완성되었다니, 믿기지 않네. 마치 부처님의 소리를 듣는 것 같아 마음이 평화로웠다네.”고구려‧백제‧신라는 모두 불교를 믿었어요. 절을 짓고, 종을 만들고, 탑을 세우며 사람들의 마음을 모으려고 했지요. 신라에는 유명한 종이 있었어요. 바로 봉덕사에 있는 종이지요. 봉덕사의 종은 어떤 종일까요? 봉덕사의 종이 왜 유명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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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1
5
절에 가면 종이 왜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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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은 승려나 불교 신자들이 머물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닦고 전하는 곳이에요. 절에 가면 여러 가지 불교 유물과 불교용품을 볼 수 있어요. 부처님의 모습을 담은 다양한 불상이 있고, 마당에서는 석탑이나 석등도 볼 수 있어요. 이 밖에 불교 의식에서 사용하는 법고, 운판, 목어, 범종 같은 소리를 내는 불교 도구들이 있어요.법고는 법을 전하는 북이란 뜻으로 쇠가죽으로 만든 북이에요. 운판은 청동이나 철로 만든 구름 모양의 넓은 판이에요. 목어는 나무를 물고기 모양으로 깎아 배 부분을 파낸 것으로 두 개의 나무 막대기로 두드려서 소리를 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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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1
4
신라, 성덕 대왕 신종을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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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를 깊게 믿었던 신라 사람들도 아름답고 순수한 종소리를 들으면 온갖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었어요. 신라의 제35대 경덕왕(재위 742~765)도 돌아가신 아버지 성덕왕(재위 702~737)의 극락왕생을 빌기 위해 커다란 범종을 만들고자 하였어요.754년 경덕왕은 많은 양의 구리를 준비하고 범종을 만들기 시작하였어요.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종을 만드는 족족 금이 가거나 깨져 실패하고 말았어요. 안타깝게도 경덕왕은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범종을 완성하지 못한 채 눈을 감고 말았어요. 경덕왕의 뒤를 이어 어린 나이에 혜공왕(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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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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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덕 대왕 신종은 어떤 종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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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29호인 성덕 대왕 신종은 높이가 3.66m, 두께 11∼25㎝, 종 입의 지름이 2.27m에 달하는 큰 종이에요. 무게는 어느 정도일까요?기록에는 황동 12만 근으로 종을 만들었다고 해요. 실제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정밀 측정해 보니 종의 무게는 18.9톤으로 확인되었지요. 어마어마하지요? 이 무게로 맑은소리를 내다니 신기하지요.그런데 종을 만들 때 구리를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종은 경우에 따라 돌로 만들기도 하지만 구리를 사용하여 만드는 동종이 대부분이에요. 구리로 종을 만드는 이유는 소리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예요. 오래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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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1
2
세계적으로도 인정받고 있는 신라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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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종은 ‘한국 종’이라는 학명을 가질 만큼 세계적이며 독보적이에요. 대개 중국이나 일본 종이 수평이나 수직으로 선을 처리하여 띠를 둘렀다면, 우리 종은 몸통에 천인상이나 보살상을 수놓았어요.특히 우리 종은 중국이나 일본의 종과 달리 맨 위 걸이 옆에 소리통(음통 또는 융통이라고도 합니다.)이 하나 더 있어요. 그래서 중국과 일본의 종이 흉내 낼 수 없는 아름답고 신비로운 소리가 계속해서 울려 퍼질 수 있다고 해요.언젠가 일본의 한 방송국에서 세계 각국의 이름난 종소리를 녹음해 경연 대회를 열었어요. 여기서 성덕 대왕 신종이 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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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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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작은 이야기: 에밀레종이라고 불리게 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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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덕 대왕 신종은 에밀레종이라고도 불러요. 그렇게 불리게 된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어요. 신라 제36대 혜공왕 때의 일이었어요. 혜공왕은 긴 한숨을 내쉬며 크게 걱정하고 있었어요.“정말 큰 일이로다. 벌써 7년이 지나도록 종을 완성하지 못하고 있구나. 저승에 계신 아버지를 뵐 면목이 없도다.”그러던 어느 날 혜공왕은 당시 최고의 세력가였던 김옹과 김양상을 불러 말했어요.“번번이 종을 만드는 데 실패하는 이유는 정성이 부족해서인 듯하다. 앞으로 백성들에게 시주를 받아 종을 만들도록 하라.”김옹과 김양상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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