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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사 60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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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밤나무 밑에서 태어난 원효, 승려가 되다
2026-07-21
5
무덤에서 얻은 깨달음
2026-07-21
6
원효, 아시아의 큰 스님이 되다
2026-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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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첨성대는 무엇일까요?
2026-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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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당과 화해정책을 펼치다
2026-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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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만글라스, 신라 왕릉에 묻히다
2026-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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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작은 이야기: 최첨단 유리 세공…
2026-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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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작은 이야기 : 온달 장군은 어…
2026-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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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수 113만 대군의 침략을 받다
2026-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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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 불교를 백성들에게 널리 전하다
2026-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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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 불교를 백성들에게 널리 전…
2026-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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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와 당에 구원을 요청한 김춘…
2026-07-20
5
김유신이 대야성을 되찾다
2026-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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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의 한강유역 쟁탈 - 한반도의…
2026-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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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한강 유역을 차지하다
2026-07-21
8
백제, 신라와 연합하여 한강을 되…
2026-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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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나제동맹을 깨고 한강을 모…
2026-07-21
10
한강을 차지한 신라, 삼국을 통일…
2026-07-21
1
김춘추, 삼국통일의 초석을 쌓다
2026-07-20
2
흔들리는 신라, 강해지는 백제
2026-07-20
3
대야성을 백제가 빼앗다
2026-07-20
고대사 600년대
김춘추, 삼국통일의 초석을 쌓다
흔들리는 신라, 강해지는 백제
대야성을 백제가 빼앗다
고구려와 당에 구원을 요청한 김춘추
김유신이 대야성을 되찾다
삼국의 한강유역 쟁탈 - 한반도의 중심, 한강을 차지하라!
고구려, 한강 유역을 차지하다
백제, 신라와 연합하여 한강을 되찾다
신라, 나제동맹을 깨고 한강을 모두 차지하다
한강을 차지한 신라, 삼국을 통일하다
역사 속 작은 이야기 : 온달 장군은 어디서 전사했을까?
을지문덕, 살수에서 수를 물리치다
고구려, 수 113만 대군의 침략을 받다
고구려, 요동에서 수나라에 맞서다.
을지문덕, 수 별동대를 유인하다
을지문덕, 살수에서 수 별동대를 물리치다
원효, 불교를 백성들에게 널리 전하다
밤나무 밑에서 태어난 원효, 승려가 되다
무덤에서 얻은 깨달음
백성들, 원효와 함께 나무아미타불을 외치다
원효, 아시아의 큰 스님이 되다
신라 문화와 과학 기술의 결정체, 경주 첨성대
신라의 과학과 건축 기술을 보여주는 경주 첨성대
경주 첨성대는 무엇일까요?
천문 관측을 중요하게 여긴 이유는?
경주 첨성대에 담겨 있는 비밀
평지에 세워져 있는데 천문대라고?
지진에도 무너지지 않은 경주 첨성대
역사 속 작은 이야기: 고려의 개성 첨성대
연개소문, 당에 맞서 싸우다
고구려, 당과 화해정책을 펼치다
정변을 일으켜 권력을 잡다
나라의 운명을 걸고 당과 전쟁을 하다
연개소문이 죽고 고구려가 멸망하다
문무왕, 삼국 통일을 완성하다
아버지 태종무열왕과 함께 삼국 통일에 나서다
신라, 당과 맞서 싸우다
매소성과 기벌포에서 당에 크게 이기다
죽어서도 신라를 지키기를 바라다
신라 속 세계 찾기, 서역의 유물
신라, 서역과 교류하다
로만글라스, 신라 왕릉에 묻히다
도로 공사 중 우연히 발견한 황금보검
인면 유리구슬의 바닷길 대항해
역사 속 작은 이야기: 최첨단 유리 세공 기술, 인면 유리구슬은 어떻게 만들었을까?
백제인들이 꿈꾸던 세계, 백제 금동 대향로
백제 금동 대향로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다
뛰어난 공예 기술로 만들어진 백제 금동 대향로
백제 금동 대향로를 땅 속에 묻은 이유는?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 있는 백제 금동 대향로
백제 금동 대향로 속에 새겨진 코끼리와 원숭이
역사 속 작은 이야기: 향로는 왜 만들어졌을까요?
삼국 시대 사람들의 소망을 새긴 불상
고구려‧백제‧신라, 삼국 모두 불교를 받아들이다
불상, 소망을 담아 부처님을 새기다
부처님 나라의 소망이 담긴 고구려의 불상
백제 사람들의 미소를 담은 백제 불상
신라 문화 전성기를 담은 신라의 불상
불상의 모습은 왜 이렇게 다양할까요?
무엇을 생각하는 불상의 모습일까요?
불상의 명칭과 구조
역사 속 작은 이야기: 황룡사의 커다란 불상 이야기
불교가 융성했던 삼국 시대의 탑
부처님의 무덤, 탑
미륵사지 석탑
부여 정림사지 5층 석탑
경주 분황사 모전 석탑
역사 속 작은 이야기: 미륵사를 지어달라고 무왕에게 요청한 왕비는 누구일까?
신라의 보물 창고, 경주 남산
경주 남산을 야외 박물관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신비로운 삼릉계곡 선각육존불
넉넉한 미소를 짓고 있는 배동 석조여래삼존입상
7개의 불상이 조각된 칠불암 마애불상군
경주 남산을 받침돌 삼아 서 있는 용장사곡 3층 석탑
역사 속 작은 이야기: 남산에 있는 목이 잘린 불상
신라의 생활을 알려주는 동궁과 월지
신라의 삼국 통일 무렵 만들어진 인공연못 월지
월지는 배를 타고 다닐 정도로 규모가 커요
월지에서 동물을 키웠다구요?
주령구가 뭐예요?
신라인은 사용한 생활용품은 무엇이 있을까?
신라 사람들은 어떤 건물을 지었을까?
역사 속 작은 이야기: 월지는 한때 안압지라 불렸어요
신문왕, 통일 신라의 기틀을 닦다
진골 귀족 김흠돌의 반란을 진압하다
만파식적 이야기에 담긴 바람
전국을 9주로 나누고, 5소경을 설치하다
녹읍을 폐지하고, 관료전을 지급하다
바닷속에서도 나라를 지키고자 한 문무 대왕릉
바닷속에 무덤을 만들다
동해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려고 했던 문무왕
은혜에 감사하며 절을 짓다
대왕암과 감은사는 정말 통해 있을까?
역사 속 작은 이야기: 신비한 피리, 만파식적 이야기
대조영, 동모산에서 발해를 세우다
고구려 유민들, 당에 끌려가 살다
사람들을 이끌고 당에서 탈출하다
나라를 세우고 도읍을 정하다
고구려 문화를 계승한 발해 문화
발해의 문화
발해의 온돌 유적
발해 치미
발해 기와
이불병좌상
발해 석등
정혜 공주 묘와 정효 공주 묘
역사 속 작은 이야기: 발해의 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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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추, 삼국통일의 초석을 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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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야성(경남 합천군)“춘추공! 대야성이 함락되었다고 합니다.”“대야성이! 그곳에 있던 내 딸과 사위는 어찌 되었다 하는가?”“백제군에게 목숨을 잃었다고 합니다.”“아! 내 딸 고타소야!”대야성에서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김춘추는 사람이 자기 앞을 지나가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크게 슬퍼했어요. 딸을 잃은 슬픔과 다급한 신라의 위기 앞에서 김춘추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김춘추의 결정은 어떤 결과를 가져왔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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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106
흔들리는 신라, 강해지는 백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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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흥왕이 한강을 차지한 이후 신라의 사정은 계속 나빠졌어요. 고구려와 백제는 끊임없이 신라를 공격하였고, 신라 귀족들 사이의 권력 다툼이 커져 반란을 일으키는 경우도 생겨났어요. 게다가 가뭄과 흉년이 자주 와서 백성의 생활도 이전과는 크게 달라졌어요.성왕의 죽음과 관산성 전투의 대패로 흔들렸던 백제의 국력은 무왕의 노력으로 빠르게 회복되고 있었어요. 무왕과 그의 아들 의자왕은 회복된 군사력을 바탕으로 신라를 집요하게 공격하여 40여 개의 성을 빼앗았어요. 그리고 고구려와 연합해 신라가 당으로 가는 바닷길의 관문인 당항성을 공격하였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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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105
대야성을 백제가 빼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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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왕 시기 백제의 영토642년, 의자왕은 윤충을 보내 합천에 위치한 대야성을 공격하게 하였어요. 대야성은 80년 전 진흥왕 때 멸망한 대가야의 옛 성으로, 사방이 강과 해자로 둘러싸인 천연의 요새였지요. 또한 신라의 심장부였던 대구·경주로 바로 이어지는 요충지였어요. 백제로부터 경주에 이르는 가장 짧은 길이기도 했지요. 때문에 신라로서는 꼭 지켜야하는 곳이었어요. 대야성의 성주는 김춘추의 사위 김품석이었어요.“성주님, 1만쯤 되어 보이는 백제군이 양쪽으로 나뉘어 오고 있다 하옵니다.”“뭐시라? 1만이 되는 군대가 대야성 코앞까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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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104
고구려와 당에 구원을 요청한 김춘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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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추는 대야성에서 김품석과 함께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큰 충격에 빠졌어요. 게다가 이 시기에 신라는 제대로 힘 한번 써보지 못한 채 백제에게 많은 성을 빼앗기고 있었어요. 크나큰 신라의 위기였어요.김춘추는 나라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깊은 고민에 빠졌어요. 먼저 떠오른 생각은 예전처럼 강한 백제군을 고구려군의 도움을 받아 물리치는 것이었어요. 김춘추는 죽음을 무릅쓰고 고구려로 가 구원병을 요청했어요.“포악한 백제가 군대를 몰아 우리 신라를 침범했습니다. 대왕의 군대를 얻어 백제를 몰아내고 치욕을 씻고자 합니다.”“죽령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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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103
김유신이 대야성을 되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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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8년, 김춘추가 당에 원군을 요청하러간 사이 김유신은 대야성을 공격하였어요. 잘 훈련된 군사들을 이끌고 대야성에 이르자 백제군이 미리 준비해 성을 수비하고 있었지요. 여러 차례 성을 공격하던 김유신은 이기지 못하고 도망치는 체하며 백제군을 옥문곡으로 유인하였어요. 백제군은 신라군을 가볍게 여겨 한꺼번에 많은 병사들을 거느리고 쫓아왔어요.옥문곡에 백제군이 당도하자 매복하고 있던 신라군이 앞뒤에서 일어나 돌을 굴리고 활을 쏘며 공격하였어요. 예상하지 못한 매복에 걸린 백제군은 우왕좌왕 하다 크게 패하였어요. 백제 장수 8명이 사로잡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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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102
삼국의 한강유역 쟁탈 - 한반도의 중심, 한강을 차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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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달산성(충북 단양군)“신라가 한강 이북의 우리 땅을 빼앗아 다스리니 백성들이 울분에 차 있습니다.”“신라가 기세등등하여 우리 고구려를 압박하니 이를 어찌한단 말인가?”“대왕께서 저를 어리석다 여기지 마시고 군사를 주신다면 한걸음에 나아가 우리 고구려 땅을 다시 찾아오겠습니다.”온달 장군은 죽령 서쪽 땅을 되찾지 않으면 돌아오지 않겠다고 임금께 맹세하고 남쪽으로 출전하였어요. 온달 장군이 말한 죽령 서쪽 땅은 어디일까요? 고구려는 왜 이곳을 되찾으려 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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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한강 유역을 차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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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5년, 고구려 장수왕은 백제의 수도인 한성을 공격해 차지하였어요. 당시 백제 개로왕은 고구려의 공격을 피해 달아났다가 고구려군에게 잡혀 아차산 아래로 끌려가 죽임을 당했어요. 백제의 수도를 차지한 고구려군은 남한강을 이용해 남쪽으로 계속 나아갔어요. 현재 충주 고구려비라는 비석이 남아 있는데, 이를 보면 당시 고구려가 남한강 주변 지역까지 차지했음을 알 수 있어요.백제는 한성을 빼앗기고 웅진(공주)으로 수도를 옮겼어요. 금강을 이용해 고구려군을 막았지요. 신라도 험준한 소백산맥을 방패로 삼아 강성한 고구려에 맞섰어요. 그러나 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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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신라와 연합하여 한강을 되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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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했던 고구려는 왕의 자리를 놓고 귀족들이 다툼을 벌이면서 흔들리기 시작했어요. 편을 나눠 싸우고, 이긴 편이 진 편의 무리를 없애버리곤 했어요. 고구려 국내 정치가 혼란한 틈을 타 신라는 죽령을 넘어 지금의 단양과 충주 지역을 차지했어요. 새로 차지한 단양의 적성에 비석을 세워 이 지역이 신라 땅임을 세상에 알렸어요. 그리고 남한강을 따라 북쪽으로 계속 나아갔어요.단양 적성에서 바라 본 소백산맥과 죽령백제도 그 기회를 틈타 한강 지역을 되찾기 위해 북쪽으로 군대를 보냈어요. 백제와 신라의 동맹군은 고구려군과의 싸움에서 계속 승리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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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나제동맹을 깨고 한강을 모두 차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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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는 고구려의 공격으로 수도 한성을 빼앗겼던 치욕을 당했기 때문에 옛 수도와 한강 유역 지역을 되찾는 일이 매우 중요했지요. 백제는 신라, 가야와 동맹을 맺고 꾸준히 국력을 키웠고, 고구려의 혼란은 한반도 남쪽 여러 나라에게 절호의 기회가 되었어요. 진흥왕은 한강 전체를 차지할 욕심에 동맹을 깨고 백제군을 공격하였어요. 갑작스러운 공격에 백제군은 한강 하류 지역을 모두 잃었어요.신라의 배신에 분노한 백제 성왕은 태자를 총사령관으로 삼아 신라를 공격하게 했어요. 백제군과 신라군은 지금의 충청북도 옥천에 있던 관산성에서 만났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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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을 차지한 신라, 삼국을 통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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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흥왕 이후 신라는 귀족들의 권력 다툼과 자연재해로 국력이 약해지고 있었어요. 한편, 신라의 배신으로 영토와 왕을 잃은 백제는 울분에 차 있었지요. 그래서 백제는 고구려와 손을 잡고 신라를 공격하였어요. 신라는 더욱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되었어요.관산성에서 크게 패한 후 백제의 국력은 약해졌지만, 무왕의 노력으로 빠르게 회복되었어요. 의자왕 때는 소백산맥을 넘어 대야성을 비롯한 수십 개의 성을 빼앗기도 했지요. 그리고 고구려도 군대를 정비하여 동쪽의 많은 땅을 되찾기도 했어요. 결국 백제와 고구려의 협공으로 신라는 큰 위험에 빠졌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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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작은 이야기 : 온달 장군은 어디서 전사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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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허락을 받은 온달 장군은 군대를 이끌고 죽령의 서쪽 땅을 되찾으러 떠났어요. 그리고 아단성 아래에서 용맹하게 싸우다가 날아온 화살에 맞아 전사했어요. 전사한 온달 장군을 백성들이 모셔 장사지내려 했으나 관이 바닥에 붙어 움직이지 않았어요. 이때 소식을 듣고 달려온 평강공주가 관을 어루만지면 말했어요.“삶과 죽음이 이미 결정되었으니 편히 돌아가세요.”평강공주의 말이 끝나자 관이 움직여 장사를 지낼 수 있었어요. 이로써 한강을 되찾으려던 온달 장군의 노력은 끝이 났어요.아단성을 공격하는 온달 장군고구려 온달 장군이 전사한 아단성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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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문덕, 살수에서 수를 물리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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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기념관(서울 용산구)그대의 신기한 전략은 하늘의 이치를 알았고오묘한 계획은 땅의 이치를 깨달았구려.전쟁에 이겨서 그 공이 이미 크니여기에 만족하고 전쟁을 멈추는 것이 어떠하오.을지문덕은 고구려를 침략한 수의 장수 우중문에게 한가롭게 시를 써서 보냈어요. 전쟁이 한창일 무렵이었어요. 시에 담긴 을지문덕의 의도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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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수 113만 대군의 침략을 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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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한나라가 멸망한 이후 여러 나라로 나뉘어 있었어요. 수는 분열되었던 중국을 300여 년 만에 다시 통일하였지요. 중국을 통일한 수는 나라를 안정시켜 가면서 강한 나라를 만들어 갔어요. 나라가 안정되자 수는 주변의 여러 나라를 지배해 나갔어요. 돌궐과 멀리 베트남까지 지배할 수 있었지만 고구려만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어요. 수는 눈의 가시와 같았던 고구려를 없애기 위해 전쟁을 선택하였어요. 수나라 황제가 말했어요.“하찮은 고구려가 어리석고 불손하게도 우리 수에게 머리를 조아리지 않는다. 지금 명령을 내리니 출정하여 오만한 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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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요동에서 수나라에 맞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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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수의 군대가 요하를 건너 요동성에 도착했어요. 고구려군이 성문을 닫고 굳게 지키자 수나라 군대는 성을 겹겹이 포위하였어요. 그리고 당시 가장 발달한 공성 무기들을 사용해 요동성을 공격하였어요.수의 군대는 맹렬하게 공격했지만 요동성의 고구려군과 백성들은 효과적으로 잘 막아냈어요. 요동성이 오랫동안 함락되지 않자, 수나라 황제는 베주머니 백만여 개를 만들어 보냈어요. 그 베주머니에 흙을 채우고, 그것을 쌓아올려 성의 높이와 같게 해 공격하게 하였어요. 그러나 이 방법으로도 요동성을 함락시킬 수는 없었어요.고구려군의 항전요동성에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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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문덕, 수 별동대를 유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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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30만 별동대가 압록강에 도착했어요. 수 별동대의 빠른 이동에 당황한 고구려는 긴급 회의를 열었어요. 고구려 영양왕이 근심어린 표정으로 말문을 열자 을지문덕이 이에 답을 하였어요.“적의 선봉대가 벌써 압록강에 도착했다는 급한 소식이 왔소. 이를 어쩌면 좋겠소?”“폐하! 소장이 직접 적진에 들어가 적의 상황을 살펴보고 오겠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장군이 적진에 간다면 적장은 분명 장군을 가둘 것이요. 어찌 한 나라의 대장군을 그리 쉽게 적에게 넘겨준단 말이오?”“먼 길을 급히 달려온 적은 분명 지쳐있을 것입니다. 적의 약점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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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문덕, 살수에서 수 별동대를 물리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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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군대는 진영을 갖추고 자기 나라로 돌아가기 시작했어요. 그러나 을지문덕은 수 별동대를 가만 두지 않았지요. 기화를 놓치지 않고 군사를 보내 돌아가는 수 별동대를 사방에서 공격하게 하였어요. 수 군사들은 싸우고 행군하기를 반복하면서 더욱 지쳐갔어요.고구려군에게 쫓겨 수 군대가 살수(청천강)에 이르러 강을 반쯤 건넜을 때였어요. 을지문덕의 명령을 받은 고구려군이 수 군대의 뒤쪽을 공격하였어요. 수 군대의 앞과 뒤가 잘리고, 많은 군사가 강물을 건너는 도중에 공격을 받자 수 군대의 진영이 흐트러져 무너지기 시작했어요. 줄을 지어 질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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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 불교를 백성들에게 널리 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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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황사(경북 경주시)“여보게, 웬 괴짜 스님이 술을 먹고 저잣거리에 춤을 추고 있다더군. 구경이나 한번 가보세.”“스님이 술을 먹는다고? 이상한 스님이 아닌가?”“그런데, 그 스님의 말씀이 예사롭지가 않아서 사람들이 크게 즐거워한다네.”무덤에서 큰 깨달음을 얻었다는 원효는 자신의 깨달음을 백성들에게 전하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어요. 원효가 백성들에게 전하고자 했던 깨달음은 무엇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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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나무 밑에서 태어난 원효, 승려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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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 아버지의 성은 설씨였어요. 어머니가 별이 떨어져 품안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 원효를 가졌다고 해요. 산달이 가까워진 어느 날 어머니가 마침 마을 밤나무 밑을 지나다가 갑자기 아기를 낳게 되었어요. 너무나 급해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남편의 옷을 밤나무에 걸고 그 속에서 아기를 낳았어요. 밤나무 밑에서 태어난 이 아기가 바로 원효에요. 원효가 태어났던 밤나무의 열매는 신기하게도 보통 나무와는 달리 매우 컸다고 해요.원효는 총명하게 무럭무럭 자라났어요. 원효가 커가던 이 시기는 고구려, 백제, 신라 사이에 치열한 전쟁이 끊이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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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에서 얻은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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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삼국은 중국을 통해 불교를 받아들였어요. 불교를 깊이 배우려면 지금의 중국에 있던 당으로 유학을 가야 했어요. 더 많은 깨달음을 얻기 위해 원효는 의상과 함께 유학길에 올랐어요. 두 사람은 당항성에서 뱃길을 이용해 당으로 가고자 했어요.당항성으로 가던 원효와 의상은 늦은 밤 폭풍우를 피해 작은 굴속에서 잠을 자게 되었어요. 번개가 치고, 비바람이 몰아치던 험한 밤이었지만 굴속에서 편하게 잠을 잘 수 있었어요. 아침에 눈을 뜬 원효는 깜짝 놀라고 말았어요.“아니, 우리가 잔 곳이 무덤 속이라니?”“스님,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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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들, 원효와 함께 나무아미타불을 외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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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로 돌아온 원효는 분황사 등에 머물다가 저잣거리를 누비며 백성들을 만났어요. 심지어 주막의 술꾼이나 거지들과도 어울리며 자신의 깨달음을 전하고자 했어요. 물론 다른 승려들은 원효가 난폭하고, 예의가 없으며, 상식의 선을 넘었다고 비난했어요. 하지만 자신들과 가까운 곳에서 쉬운 말로 불교의 깨달음을 전하는 원효에게 백성들은 열광하고 환호했어요.거리에서 깨달음을 전하는 원효“대사님! 저희와 같은 천한 사람도 극락세계에 갈 수 있을까요?”“천한 것과 귀한 것은 정해져 있지 않아요. 그 구분은 오직 사람의 마음속에만 있는 것이에요. 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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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 아시아의 큰 스님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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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효’는 우리말로 ‘새벽’이라는 뜻)라는 이름은 ‘불교를 새로 빛나게 하다’라는 뜻을 갖고 있어요. 원효의 깨달음은 신라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도 전해져 많은 스님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어요.원효가 쓴 책은 그가 죽은 후에도 다시 만들어지곤 했는데, 이중에 하나는 멀리 떨어진 중국의 돈황에서 발견되기도 하였어요. 무덤에서 깨달음을 얻은 원효가 아시아의 큰 스님이 된 것이지요.지금의 서울에 있는 원효로나 원효대교, 경산시의 원효로도 바로 원효의 큰 업적을 기리기 위해 그의 이름에서 따왔어요.수많은 책과 많은 가르침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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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문화와 과학 기술의 결정체, 경주 첨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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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첨성대(경북 경주시)문화재청“360여 개의 돌을 다듬어 쌓아 올리도록 할 것이오.”“몸통에 작은 창을 내도록 하시오.”“되도록 평지에 세우면 좋겠소.”360여 개의 돌을 다듬어 쌓아 만든 이것은 바로 경주 첨성대에요. 신라 제27대 왕인 선덕여왕(재위 632~647) 때 만들어진 것으로 보여요. 그렇다면 경주 첨성대는 무엇을 하던 곳일까요? 왜 넓은 벌판에 세워졌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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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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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과학과 건축 기술을 보여주는 경주 첨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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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첨성대는 국보 제31호로 신라 천년의 도읍지 경주에 있는 문화유산이에요. ‘별을 관측하는 천문대’라는 뜻이지요. 신라 궁궐이 있던 월성과 왕릉급 무덤들이 모여 있는 대릉원 사이 벌판에 자리하고 있지요. 동양에 남아 있는 것 중 가장 오래된 천문대라고 하죠.동궁과 월지와 함께 야경이 아름다운 곳으로 꼽혀요. 사진으로만 보던 경주 첨성대를 직접 본 사람들은 실망한 표정을 짓고, 의구심을 갖기도 하지요.“생각보다 규모가 작네요. 엄청 클 줄 알았는데…”“천문대가 산에 있어야지, 왜 이렇게 낮고 평평한 곳에 있어요?”그런데 경주 첨성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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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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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첨성대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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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첨성대는 과연 무엇일까요? 『삼국유사』에는 경주 첨성대가 천문대라고 기록되어 있어요. 하지만 경주 첨성대를 어떻게 이용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이 없어, 정말 천문대가 맞나?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해요.경주 첨성대를 천문대로 보기 어렵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어요. ‘사람이 드나들며 천문 관측하기에 너무 비좁다. 천문대는 보통 높은 지역에 있는데, 신라의 첨성대는 평지에 있어 천문대로 보기 어렵다. 기록에 나온 첨성대가 현재의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해요.현재 경주 첨성대를 무엇으로 볼 것인가에 대한 의견은 세 가지 정도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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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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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 관측을 중요하게 여긴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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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랜 옛날부터 천문 관측은 무척 중요하게 여겨졌어요. 농업이 국가 경제의 근본이었던 시대에 하늘의 움직임을 살펴 계절의 변화와 날씨를 예측하는 일은 무척이나 중요했거든요. 농사짓는 백성들에게 언제 씨를 뿌리고 수확을 해야 하는지 그 시기를 정확히 알려주는 것이 왕의 임무라고 생각했지요.계절의 변화와 농사 시기를 예측하려면 역법서(달력)가 필요했어요. 그러기 위해 해와 달, 별들의 움직임을 관측해야 했지요. 중국이나 우리나라 등 동아시아 국가들은 천문학을 왕이 나라를 다스리기 위해 꼭 필요한 학문으로 여겼어요. 천문 관측을 담당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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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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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첨성대에 담겨 있는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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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첨성대는 작은 규모의 건축물이지만, 여러 가지 상징적인 의미가 담겨 있어요. 이를 통해 경주 첨성대의 기능도 추측할 수 있지요.경주 첨성대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요. 네모난 받침대와 둥근 몸체, 꼭대기 우물 정(井)자 모양의 정자석으로 구분할 수 있어요. 네모난 받침대는 땅을, 둥근 몸체는 하늘을 의미하지요. 정자석은 남북을 가로지르는 자오선의 표준이 된다고 해요. 정자 모양의 돌의 각 면이 동서남북의 방위를 가리키고 있어요.첨성대의 구조경주 첨성대를 만드는 데 사용된 돌의 개수는 총 365여 개라고 해요. 이는 음력 1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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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지에 세워져 있는데 천문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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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대는 모두 높은 곳에 있어야 할까요? 물론 현대에 천문대는 대부분 높은 산에 있어요. 전문가의 이야기에 따르면 도시의 평지에서는 높은 빌딩에 시야가 가려 하늘을 관측하기 쉽지 않다고 해요. 또 반짝이는 네온사인 불빛도 천문 관측을 방해한대요.하지만 옛날에는 평지에서도 천문 관측이 가능했어요. 높은 빌딩도 반짝이는 불빛도 없었으니까요. 경주 첨성대가 있는 곳을 잘 살펴보세요. 주위에 높은 산도, 큰 나무도 없어 하늘을 관측하기 안성맞춤이지요. 약 10m 높이의 경주 첨성대 위에 올라가면 사방을 둘러보며 하늘의 행성과 별자리를 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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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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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에도 무너지지 않은 경주 첨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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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첨성대는 놀랍게도 1,300여 년이 지났는데도 원래 모습 그대로 보존되고 있어요. 더 놀라운 것은 지진과 같은 강한 충격에도 무너지지 않았다는 점이에요.2016년 경주에서 진도 5.8의 강진이 발생했어요. 땅이 갈라지고 한옥 기와가 무너져 내리기도 했어요. 천년의 도읍지 경주에 있는 문화유산들도 일부 훼손되었어요. 경주 첨성대도 2cm 정도 기울었고, 돌 틈이 벌어지기도 했어요.하지만 진도 5.8이라는 강진의 규모에 비해 피해가 크지 않은 편이었어요. 전문가들은 어떻게 강한 지진에도 큰 피해 없이 온전할 수 있었는지 다시 한번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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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작은 이야기: 고려의 개성 첨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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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수도였던 개성에도 첨성대가 남아 있어요. 북한의 국보 제131호로 2013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된 문화유산이지요. 고려 궁궐이었던 만월대 궁궐터 서쪽에 남아 있어요. 고려 태조 때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측되는데 지금은 천문 관측기구를 올려놓았던 축대만 남아 있어요.축대는 화강암을 다듬어 만든 네모난 돌마루를 5개의 기둥이 받치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어요. 돌마루까지의 높이는 3미터가량이 되요. 4개의 기둥이 서 있는 곳이 바로 동서남북을 가리키지요.기둥 아래에는 주춧돌이 놓여 있는데, 주춧돌에는 크고 작은 구멍들이 뚫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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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개소문, 당에 맞서 싸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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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개소문“폐하! 당이 화친한다고 하나 이는 믿어서는 아니 되옵니다.”“막리지! 당신은 칼을 믿지만, 나는 그렇지 않소.”“힘이 없다면 고구려가 아직 남아있겠습니까? 일찍이 수의 침략을 물리친 고구려의 힘을 믿으소서!”고구려 영류왕은 당과 화해하여 친하게 지내 전쟁을 피하고자 했어요. 그러나 연개소문은 당을 믿을 수 없다며 영류왕의 뜻에 반대했어요. 왕과 의견이 상당히 다른 연개소문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그리고 자기의 생각을 펼치기 위해 어떤 일을 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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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당과 화해정책을 펼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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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수가 고구려 침략에 실패한 이후 멸망하고, 당이 다시 중국을 통일했어요. 당을 세운 고조는 수가 멸망한 까닭을 생각하며 고구려와 화해 정책을 펼쳤어요. 고구려에서는 수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영양왕이 죽고 영류왕이 왕이 되었어요.영류왕도 당과 화해 정책을 펼쳤어요. 비록 수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지만, 고구려의 피해도 상당했기 때문에 외교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어요. 수와의 전쟁에서 붙잡은 포로들을 당에 돌려보내 주기도 했고, 고구려 지도를 보내면서 전쟁을 할 뜻이 없음을 밝히기도 했어요.그러나 당 태종이 황제가 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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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변을 일으켜 권력을 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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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개소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고구려의 고위 관리인 대대로였어요. 고구려는 여러 귀족들이 모여 나라의 중요한 일을 협의하고 결정했어요. 이때 대대로는 귀족 회의의 대표로서 왕을 보좌하고, 나랏일을 총괄하는 자리였지요.대대로 집안 출신으로 연개소문은 아버지가 죽고 그 자리를 물려받으려 했어요. 그러나 다른 귀족들은 연개소문이 너무 잔인하고 포악하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나섰어요. 연개소문 집안이 계속해서 대대로 자리를 맡게 할 수 없다는 이유도 들었지요.“당은 점점 힘이 커가고 있고, 평화가 오래갈 수 없다는 것을 나도 알고 있소.”“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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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의 운명을 걸고 당과 전쟁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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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의 공격과 고구려의 반격644년,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당 태종은 왕을 시해한 연개소문을 벌한다는 명분으로 50만 명의 군대를 이끌고 고구려를 침략해 왔어요. 수의 침략 때와는 달리 병사의 수는 적었으나 훈련이 잘된 병사들로 이루어진 군대였어요. 당군의 공격에 고구려의 국경선을 지키던 요동성과 백암성 등이 차례로 무너졌어요. 당군은 이어 안시성을 향했어요.안시성은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공격이 쉽지 않은 요새였어요. 연개소문도 15만 명의 군사를 보내 안시성의 고구려군을 돕게 했어요. 그러나 안시성을 향하던 고구려군이 당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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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개소문이 죽고 고구려가 멸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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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0년, 신라와 당이 연합하여 백제를 공격하였어요. 안시성에서 고구려에 크게 패한 당은 작전을 바꿔 신라를 이용하기로 한 것이지요. 당군은 바다로, 신라군은 육지에서 백제를 공격하였어요. 두 나라의 갑작스러운 공격에 백제는 크게 저항도 못하고 멸망하고 말았어요.백제가 멸망하고 얼마 되지 않아 고구려에도 큰일이 벌어졌어요. 당과 끝날 것 같지 않은 전쟁 속에서 고구려를 굳건히 이끌던 연개소문이 세상을 떠난 것이에요(666년). 연개소문은 세 아들에게 물에서 사는 고기처럼 서로 도우며 살 것을 유언으로 남겼어요.그러나 연개소문이 죽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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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왕, 삼국 통일을 완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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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사지(경북 경주시)“내가 왕이 된 후 지금까지 돌이켜보면 대부분의 나날이 전쟁의 연속이었던 같소.”“덕분에 우리 신라가 고구려를 멸망시켰고, 또 당을 몰아내고 통일을 이룬 것 같습니다.”“경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니 다행이오. 이제 내가 죽으면 화장을 해서 동해에 장사를 지내주시오. 죽어서 바다의 용이 되어 신라를 지키겠소.”681년 신라의 한 왕이 바다의 용이 되겠다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어요. 이와 같은 유언을 남긴 신라의 왕은 누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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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태종무열왕과 함께 삼국 통일에 나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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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와 당은 군사 동맹을 맺고 백제와 고구려를 함께 공격하였어요. 두 나라는 전쟁 이후에 백제 땅과 대동강 남쪽의 고구려 땅은 신라가 차지하고, 대동강 북쪽의 고구려 땅은 당이 차지하기로 약속했어요. 그러나 백제를 멸망시킨 후 당은 약속과 달리 백제 땅에 자신들의 관청을 설치하고 직접 통치하려 했어요.661년 문무왕은 아버지 태종 무열왕에 이어 신라의 왕이 되었어요. 이 무렵 당은 한걸음 더 나아가, 문무왕을 계림주 대도독에 임명하였어요. 이는 신라를 독립된 나라의 왕이 아닌 당이 임명한 관리가 다스리는 나라로 만들겠다는 속셈이었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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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당과 맞서 싸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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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2년 평양에서 황해도 배천까지 남쪽으로 내려온 당군은 신라군의 공격으로 다시 석문으로 올라갔어요. 석문은 황해도에 있는 넓은 들판으로 임진강을 건너 평양으로 가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이었어요.신라 장창 보병의 모습신라군은 석문 들판의 남쪽에서 북쪽의 당군을 바라보며 진을 쳤어요. 신라군은 이곳에서 당의 기병을 방어하기 위해 장창 보병을 이용하였어요. 당 기병들이 신라군 진영으로 돌격해오자 신라 장창 보병들 앞에 서있던 궁수들이 화살을 한꺼번에 쏘았어요. 쓰러진 기병들을 넘어 다른 기병들이 가까이 접근하자 궁수들이 뒤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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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소성과 기벌포에서 당에 크게 이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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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문 전투 이후 신라와 당은 서로 눈치를 보며 임진강을 중심으로 서로 대치하고 있었어요. 당군은 칠중성과 매소성을 점령한 후 지금의 의정부 방면으로 남하하는 전진 기지로 삼았어요. 신라군은 3차례에 걸쳐 매소성을 공격했으나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어요. 신라군이 매소성을 정면으로 공격한다는 것은 승산이 없는 일로 보였어요.그러나 신라군에게 당군을 꺾을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 남았어요. 이때 당군은 멀리 당으로부터 식량과 무기를 보급 받고 있었는데, 이 보급을 효과적으로 차단한다면 매소성의 당군을 고립시킬 수 있었어요. 신라는 임진강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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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도 신라를 지키기를 바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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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왕은 당의 군대를 한반도에서 몰아내고 삼국 통일을 완성했어요. 삼국 통일 후 문무왕은 바다를 통해 침입해 올 왜구를 걱정했어요. 그래서 부처님의 힘으로 왜구의 침입을 막고자 동해 바다 가까운 곳에 절을 세우고자 했어요. 아버지의 뜻을 이어 받은 신문왕은 절을 모두 지은 후에 문무왕의 은혜에 감사한다는 뜻으로 이름을 감은사라 지었어요.문무왕은 죽은 후에도 바다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고자 했어요. 그래서 화장을 하여 동해 바다에 장사를 지내달라고 유언을 남겼어요. 신문왕이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서 장사를 지낸 곳이 바로 감은사와 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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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속 세계 찾기, 서역의 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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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성왕릉(괘릉), 경북 경주시경주시청“정지! 정지!”“작업을 마무리해야 하는데 왜 그러십니까?”“날아가는 흙더미 속에서 뭔가를 본 것 같아요.”계림로 고분을 발굴하다 말고 소동이 벌어졌어요. 흙더미 속에서 수레 모양을 한 토기가 나온 것이었어요. 신라 시대 수레 모습을 짐작할 수 있는 국보급 토기였어요. 수레형 토기가 나오고 주변의 다른 고분에서는 뜻하지 않게 황금보검(경주 계림로 보검)도 출토되었어요.그런데 황금보검은 신라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었어요. 그럼 황금보검은 누가 만들었을까요? 황금보검은 왜 신라 고분에 묻힌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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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서역과 교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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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삼국의 역사를 기록한 책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는 고대 삼국 중 가장 먼저 나라를 세웠어요. 하지만 신라는 고구려, 백제에 둘러싸여 있었고, 지형적으로도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에 가로막혀 있었어요. 이렇게 한반도 동남부에 갇힌 신라는 나라의 발전 속도가 빠르지 않았어요.400년, 가야와 왜의 연합군이 신라에 쳐들어왔을 때는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도움을 받아 위기를 모면하기도 했고, 5세기에 고구려가 남쪽으로 진출할 때에는 백제와 동맹을 맺고 소백산맥에 의지해 간신히 나라를 지켜냈어요.백제와 고구려에 시달리며 나라를 유지하던 약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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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만글라스, 신라 왕릉에 묻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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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는 5천 년 전 지중해 동쪽 연안에서 생활하던 상인들이 우연히 처음 발견했어요. 그리고 기원전 1세기쯤 이 지역의 유리 장인들이 ‘대롱불기’라는 기술을 개발하면서 본격적으로 유리그릇이 만들어졌어요.대롱불기로 유리그릇 만들기대롱불기 기술은 당시 지중해 지역을 장악하고 있던 로마에 전해졌고, 유리그릇은 로마가 점령한 세계 여러 지역으로 수출되면서 로만글라스란 이름이 붙게 되었어요. 유리라는 재료도 특별했지만 이를 이용해 만든 로만글라스는 매우 비싸고 귀중한 무역품이었어요.봉수형 유리병(황남대총 남분)과 4세기 지중해 지역의 로만글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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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공사 중 우연히 발견한 황금보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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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경주 대릉원을 정비하면서 주변의 계림로 도로 공사를 하고 있었어요. 이때 배수로 하수관을 묻기 위해 땅을 파던 중 작은 신라 고분 여러 개가 발견되었어요. 공사는 중지되고 박물관 직원들과 고고학자들이 나가 계림로 주변을 샅샅이 조사했어요. 그리고 수많은 유물을 발굴할 수 있었어요.계림로 고분에서 발굴된 여러 유물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14호분에서 나온 황금보검이었어요. 지금까지 발굴된 신라의 유물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한 유물이었어요. 황금보검은 빨간색의 석류석과 유리로 상감한 태극문양으로 장식되었어요. 왕릉에서 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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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면 유리구슬의 바닷길 대항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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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추왕릉지구 4호분에서 출토된 경주 황남동 상감 유리구슬문화재청1973년 실시된 미추왕릉지구의 4호분 발굴조사에서 매우 특이한 유리구슬이 출토되었어요. 유리구슬에는 사람 얼굴과 새, 나무, 구름 등이 새겨져 있었어요. 학자들은 이 특이한 사람의 얼굴을 닮은 유리구슬(인면 유리구슬)에 대해 연구를 시작했어요.연구의 결과 ‘인면 유리구슬’을 처음 만든 곳이 고대 로마였음을 알아냈어요. 로마인들은 눈을 크게 부릅뜬 신화 속 메두사의 얼굴을 닮은 유리구슬을 목에 걸고 다녔다고 해요. 이 유리구슬을 부적처럼 걸고 다니면 질병이나 불행으로부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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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작은 이야기: 최첨단 유리 세공 기술, 인면 유리구슬은 어떻게 만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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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추왕릉지구의 4호분에서 나온 ‘인면 유리구슬’의 크기는 1.8cm 정도에요. 놀라운 것은 빨간 입술에 푸른 눈썹과 눈을 가진 4명의 사람과 노란색 발을 가진 흰 새 6마리, 꽃이 핀 나무 4그루, 거기에 구름까지 담았어요. 작은 크기의 유리구슬에 이 많은 것들을 모두 상감 기법으로 담은 최고의 예술품이죠.최첨단 유리 세공 기술을 사용한 이 인면 유리구슬은 어떻게 만들었을까요? 인도네시아 자바섬에 전해져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는 유리 세공 기술을 알아보도록 해요. 로마는 얼굴 조각을 하나의 구슬에 녹여 붙이는 방법을 사용했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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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인들이 꿈꾸던 세계, 백제 금동 대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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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금동 대향로국립부여박물관“진흙 속에 무언가 묻혀 있습니다. 인부들을 모두 돌려보내시오.”“네. 알겠습니다.”“외부에 알려지면 오히려 발굴에 어려움이 있습니다.”충남 부여군 부여읍 외곽에 있는 능산리 고분군에 주차장을 만들기 전 먼저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어요. 발굴 조사를 벌이던 사람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어요. 절터 물웅덩이에서 국보급 유물이 모습을 드러냈거든요. 이 문화유산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왜 땅속에 묻히게 된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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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금동 대향로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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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화유산이 바로 국보 제287호인 백제 금동 대향로예요. 백제 금동 대향로는 부여 능산리 고분군 주차장 공사를 하던 중 발굴되었어요. 부여 능산리 고분군은 백제의 세 번째 수도였던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에서 3km가량 떨어진 곳에 있는 고분군이지요. 사비 시대(538~660) 백제 왕릉으로 총 8기의 무덤들이 있어요.부여 능산리 고분군이 정비되면서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기 시작했어요. 부여군청은 관람객들을 위해 넓은 주차장을 만들기로 했어요. 1993년 12월, 공사를 진행하기에 앞서 발굴 조사를 벌였어요. 하지만 기대와 달리 특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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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공예 기술로 만들어진 백제 금동 대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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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유역에서 건국된 백제는 4세기 근초고왕 때 전성기를 누리며 발전했어요. 하지만 백제는 5세기에 고구려 장수왕의 공격을 받아 수도인 한성을 빼앗기고, 문주왕 때 웅진(지금의 공주)으로 수도를 옮겼어요. 무령왕 때에는 지방에 왕족을 보내 지방 세력을 통제하는 등 왕권을 강화하며 백제를 안정시켰지요.무령왕에 이어 성왕이 왕위에 올랐어요. 그는 다시 백제의 수도를 옮겼어요. 좁은 웅진에서 벗어나 넓은 벌판이 펼쳐진 사비(지금의 부여)로 수도를 옮기고 부흥을 꿈꾸었어요.백제는 사비로 수도를 옮긴 후 국가 체제를 정비하고 더욱 발전해 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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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금동 대향로를 땅 속에 묻은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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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금동 대향로는 1,500여 년 전에 만들어졌다고 해요. 그렇게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도 어떻게 녹슬지도 않고, 원래 모습 그대로 있었을까요?그것은 바로 진흙 속에 묻혀 있었기 때문이지요. 진흙 때문에 공기가 잘 통하지 않아 형태가 변하지 않았던 거예요. 백제 금동 대향로 주변에서는 나무 곽과 천 조각이 발견되었는데, 아마도 천으로 향로를 싸서 나무 곽 속에 넣어 땅속에 묻었던 것 같아요.그런데 누가, 왜 이곳 능산리 절터에 백제 금동 대향로를 묻었던 것일까요? 혹시 백제의 멸망과 관련 있는 것은 아닐까요?사비에서 부흥을 꾀한 성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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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이야기가 담겨 있는 백제 금동 대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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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금동 대향로는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받침, 몸체, 뚜껑, 그리고 맨 위 봉황으로 이어졌어요.받침은 용이 몸체를 받치고 있어요. 앞발을 치켜들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듯한 모습이죠. 마치 용이 살아 꿈틀거리는 듯한 모습은 생동감을 느끼게 해주지요. 용의 세 발은 삼각형 모양으로 바닥을 딛고 있어요. 앞발은 치켜세워 향로가 균형감을 갖추도록 표현했어요. 용의 꼬리는 물결이 일렁이는 것처럼 표현되어 있어 물을 상징하는 용을 강조하고 있어요.몸체는 연꽃 봉우리가 막 피어난 모습이에요. 진흙 속에서 피어나는 연꽃은 불교를 상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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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금동 대향로 속에 새겨진 코끼리와 원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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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금동 대향로에 등장하는 동물 중 당시 한반도에서는 볼 수 없었던 동물이 있어요. 바로 원숭이, 악어, 코끼리지요. 백제 사람들은 본 적이 없었던 동물들을 어떻게 백제 금동 대향로에 조각해 놓을 수 있었을까요?백제는 바다를 통해 중국, 일본과 활발한 교류를 하며 해상왕국으로 불렸던 나라에요. 기록에 나와 있지는 않지만, 중국을 넘어 코끼리와 원숭이가 사는 인도나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와 교류를 했던 것으로 보여요.백제 금동 대향로에 새겨진 꼬끼리, 악어, 원숭이국립부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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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작은 이야기: 향로는 왜 만들어졌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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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로는 향을 피울 때 사용하는 물건을 말해요. 절에서 의식을 거행하거나, 제사를 지낼 때 향을 피우지요. 인도에서 좋지 않은 냄새를 없애고, 실내의 습기를 없애기 위해 향을 피우기 시작했다고 해요. 불교가 탄생하면서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물 중 하나가 되었지요.그러면서 향을 피우는 의식이 단순히 냄새와 습기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깨끗이 하고, 자신을 태워 다른 사람을 구하는 의미로 쓰이기도 했어요. 유교에서도 제사를 지낼 때 죽은 사람의 혼을 불러드리기 위해 향을 피웠지요.중국에서는 불교가 전해지기 전부터 향로를 사용했어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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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시대 사람들의 소망을 새긴 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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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충남 서산시)문화재청“자네 아침 일찍 어딜 다녀오나?”“응. 절에 다녀오네. 신통하다고 소문난 관세음보살상께 온 마음을 다해 우리 자식을 지켜달라고 기도하고 왔다네.”고구려‧백제‧신라는 모두 불교를 믿었어요. 삼국 사람들은 일상생활 속에서 절에 가고 불상 앞에서 기도하였지요. 삼국 시대 불상의 모습은 어떠했을까요? 서로 달랐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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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백제‧신라, 삼국 모두 불교를 받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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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백제‧신라 삼국은 모두 불교를 받아들여 나라의 종교로 삼았어요. 불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종교에요. 인도에서 일어난 불교는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와 일본으로 전해졌지요. 삼국은 불교의 어떤 점이 좋아서 불교를 받아들였을까요?당시 고구려‧백제‧신라 세 나라는 서로 세력을 다투고 있었어요. 잦은 전쟁 속에 삼국 시대 사람들은 삶의 불안을 많이 느꼈지요. 이때 인간사의 고통을 초월하게 해준다는 불교의 가르침은 많은 사람에게 위안을 주었어요.또 한편으로 불교는 고대 아시아 세계에서 단순한 종교가 아니라 보편적이고 수준 높은 문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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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상, 소망을 담아 부처님을 새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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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상은 ‘부처의 상’을 뜻해요. 그런데 불교가 처음 일어났을 때는 불상을 만들지 않았어요. 부처님과 같이 뛰어난 존재를 인간의 손으로 표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부처님의 유골을 담은 탑에 예배를 드렸어요. 그러나 무엇보다 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신앙의 대상은 부처님이었어요. 결국 인도에서는 불상을 만들었어요. 삼국 시대 사람들도 점차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 부처님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조각상으로 만들어 표현하였어요. 이렇게 불상은 탑과 함께 불교 신앙의 중심이 되었어요.불교 전래의 초기에는 대체로 중국식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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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나라의 소망이 담긴 고구려의 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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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대표적 불상으로 국보 제119호인 ‘금동 연가 7년명 여래 입상’이 있어요. 높이가 16.2cm로 매우 작은 불상이에요. ‘금동’은 청동에 얇게 금을 입혀 만든 것을 말해요.그런데 왜 불상에 금을 입혔을까요? 금은 매우 귀한 금속이에요. 부처를 보통 사람과 다른 귀한 모습으로 표현한 것이에요. 이 불상 뒷면에는 ‘연가 7년’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어요.여기서 ‘연가’는 고구려가 쓰던 연호에요. 그래서 이 불상의 이름에 ‘연가 7년명(銘)’이 붙었어요. ‘연가 7년명’은 ‘연가 7년이 새겨진’이라는 의미에요. 여래는 부처님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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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사람들의 미소를 담은 백제 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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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는 불교를 받아들인 후 많은 불상을 만들었어요. 그 가운데 백제를 대표하는 불상으로 국보 제84호인 서산 용현리 마애 여래 삼존상이 있어요. 서산 용현리 마애 여래 삼존상은 백제가 중국과 왕래하던 교통로 상에 있는 충청남도 서산의 한 골짜기 바위 면에 새겨진 불상이에요. 이와 같이 깎아지른 절벽을 그대로 재료로 삼아 불상을 조각했기에 ‘마애’라 이름 붙였어요. ‘여래’란 부처님을 높이는 말이에요.불상은 혼자 있기도 하지만 서산 용현리 마애 여래 삼존상처럼 양쪽 옆에 불상을 하나씩 끼고 있을 때가 많아요. 엄밀하게 따지면 부처님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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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문화 전성기를 담은 신라의 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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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국력은 불교의 발전과 더불어 상승하였어요. 신라의 국격이 높아지면서 불상을 만드는 솜씨 역시 더욱 발전하였어요. 신라의 대표적 불상으로 보물 제63호인 경주 배동 석조 여래 삼존 입상이 있어요.경주 배동 석조 여래 삼존 입상(경북 경주시)문화재청경주 배동 석조 여래 삼존 입상은 원래는 경주 남산 기슭에 흩어져 있었는데 1923년 지금의 자리(경북 경주시 내남면 용장리)에 모아 세웠어요. 이 불상도 돌로 만든 세 분의 부처님이 서 있는 모습이라는 뜻에서 석조 여래 삼존 입상이라 이름 붙였어요.이 불상 가운데 본존불은 머리에 상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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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상의 모습은 왜 이렇게 다양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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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는 깨달은 사람을 말해요. 석가모니뿐 아니라 그 이전과 이후에도 깨달은 이들을 모두 부처라 하지요. 그래서 부처 중에는 석가모니불만 있는 것이 아니에요. 미륵불, 아미타불, 약사불, 비로자나불 등 많은 부처가 있어요. 삼국에 들어온 대승 불교 때문이지요.또 불교에서는 부처님 말고도 보살이나 여러 수호신을 믿고 받들었어요. 보살은 부처가 될 수 있는 충분한 자격을 갖추면서도 중생(깨달음에 이르지 못한 생물들)을 깨우치기 위해 부처가 되기를 미룬 존재예요. 보살은 자신의 깨달음보다 중생 구제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존재들이었지요.경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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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생각하는 불상의 모습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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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시대의 불상 중에는 특히 금동으로 만든 반가사유 보살상이 많이 만들어졌어요. ‘반가’는 반만 책상다리를 한 모습으로 걸터앉아서 한쪽 다리를 다른 쪽 다리 위에 올린 자세를 가리켜 말해요. ‘사유상’은 생각하는 모습을 새긴 조각상이라는 뜻이에요. 즉 반가사유상이란 반가좌 형태로 앉아 오른손을 뺨에 살짝 대고 사색하는 자세의 보살상을 말해요.금동 미륵 보살 반가사유상(국보 제78호와 국보 제83호)문화재청삼국 시대에 만들어진 금동 미륵보살 반가 사유상은 우리 조상들의 뛰어난 조각 솜씨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유명하지요. 국보 제78호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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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상의 명칭과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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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상에는 부처의 초인간적인 속성을 나타내기 위한 장치가 몇 가지 있어요. 불상 뒤에는 부처의 진리와 지혜의 무한한 빛을 상징하는 ‘광배’를 두고 있어요. 머리 위에는 신비로운 혹인 ‘육계’를 두고, 머리카락은 소라처럼 말려진 ‘나발’ 모양이며, 귀는 길고 두 눈썹 사이에는 지혜의 빛을 내보내 온 누리를 밝혔다는 ‘백호(하얀 털)’가 나 있지요.불상은 보살상‧천왕상 등과 달리 부속물이나 장식이 없는 단순한 수행자 복장을 함으로써 세속을 초월한 지고함을 보여주지요.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에는 우주를 상징하는 연꽃을 새겨요. 연꽃 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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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작은 이야기: 황룡사의 커다란 불상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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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는 삼국 가운데 가장 늦게 불교를 받아들였지만, 일단 불교를 받아들인 다음에는 발 빠르게 움직였어요. 흥륜사, 황룡사, 영흥사 등 대규모 사찰을 세우고 불교에 심취한 나머지 자기 나라를 ‘불국토’, 즉 부처가 사는 나라라고 생각했어요.신라의 자부심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설화가 있어요. 신라 제24대 진흥왕(재위 540~576) 때의 일이었어요. 이 무렵, 나라에서 용궁 남쪽에 궁전을 지으려고 하였어요. 그런데 그 터에서 갑자기 황룡이 나타났어요. 그 일로 궁궐 대신 절을 짓게 되었고 절의 이름을 ‘황룡사’로 지었지요.황룡사를 모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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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가 융성했던 삼국 시대의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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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사지 석탑(전북 익산시)“폐하! 이곳 연못가에 큰 절을 세워주십시오. 제 소원입니다.”“왕비의 소원을 내가 들어주리다. 여봐라! 이 연못을 흙으로 메운 뒤 큰 절을 짓도록 하여라.”전라북도 익산에 있는 미륵사는 백제 무왕이 왕비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세웠다고 전해요. 미륵사는 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없지만, 동쪽과 서쪽에서 큰 석탑을 볼 수 있습니다. 두 탑은 언제 만들어졌을까요? 미륵사에 남아 있는 석탑을 비롯해 삼국 시대에 세워진 여러 탑을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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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무덤,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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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사찰)에 가면 부처님을 모신 건물 앞마당에 탑이 세워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어요. 절에는 왜 탑이 세워져 있을까요? 탑은 불교에서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탑이라는 말은 원래 우리말이 아니라 인도에서 무덤을 의미하는 ‘스투파’에서 나왔어요. 석가모니에 의해 창시된 불교가 전파되는 과정에서 ‘스투파’가 ‘타파’라는 말이 되고, 그 말이 줄어서 ‘탑’이 된 거예요불교에서 탑은 석가모니, 즉 부처님의 몸속에서 나온 구슬 모양의 사리를 모신 불교식 무덤이에요. 인도에서는 석가모니가 태어난 곳, 진리를 깨달은 곳, 진리를 가르친 곳, 돌아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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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사지 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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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무왕 때 세워졌다고 전하는 미륵사는 현재 건물은 없고 그 터에 탑이 남아 있어요. 그래서 미륵사 터에 있는 탑이라는 뜻으로 미륵사지 탑이라고 이름이 붙여졌어요. 미륵사는 3개의 금당(불상을 모셔 놓은 건물)이 나란히 늘어서고 금당마다 탑이 하나씩 있도록 설계되었어요. 3개의 절이 모여 하나의 큰 절을 이루는 형식처럼 지어진 대규모 사찰이었지요.또 3개의 금당(동원, 중원, 서원)은 각기 긴 회랑(건물에서 지붕이 딸린 복도)으로 구획되어 독립된 공간을 이루고 있으며, 북쪽으로는 1동의 큰 강당 터로 연결됩니다. 강당 북쪽에는 인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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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정림사지 5층 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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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정림사지 5층 석탑(충남 부여군)문화재청백제를 멸망시킨 당나라 군대는 사비성 한가운데에 있는 절을 점령한 뒤, 그곳에 있는 빼어난 모양의 석탑에 자신들이 백제를 멸망시켰다고 자랑하는 글을 새겼어요. 나라를 잃은 백제 사람들은 이것을 보고 얼마나 큰 슬픔과 모욕감을 느꼈을까요?당시 아시아에서 으뜸가는 문화 대국을 자부하던 당나라는, 자기네가 정복한 나라의 귀중한 문화재를 훼손하는 야만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았던 것이에요.이 탑은 소정방이 새긴 글로 인해 한때 ‘백제를 평정하고 세운 탑’이라는 뜻의 ‘평제탑’이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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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분황사 모전 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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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시대에 불교가 전래되었던 초기에는 나무로 탑을 만들었어요. 그런데 나무로 만든 목탑은 불에 타 버리기 쉬워서 점차 불에 강한 돌로 탑을 만들게 되었지요.7세기 신라 선덕 여왕 때 만들어진 경주 분황사 모전 석탑은 당시 중국에서 유행하던 벽돌탑을 모방해서 만들었어요. 진짜 벽돌은 아니고 돌을 벽돌처럼 깎아서 쌓아 올린 탑이지요. 그래서 모방한다는 뜻의 ‘모(模)’, 벽돌이라는 뜻의 ‘전(塼)’자를 넣어 탑의 이름이 붙여졌어요.경주 분황사 모전석탑은 일제강점기인 1915년에 일본인들이 해체 수리를 한 적이 있어요. 현재의 모습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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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작은 이야기: 미륵사를 지어달라고 무왕에게 요청한 왕비는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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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사지 석탑의 서탑을 해체·수리하던 2009년 1월, 역사학계를 크게 흥분시킨 일이 일어났어요. 미륵사지 석탑 1층 심초석(탑의 중앙 기둥을 받치는 돌) 내부에서 석탑 건립 당시 묻었던 금동제 사리외호와 금제 사리내호, 유리제 사리병, 금제 사리봉안기, 칼, 유리판 등 사리장엄구가 발견되었던 것이에요.사리장엄구는 불탑에 사리를 넣을 때 함께 넣은 용기나 공예품 등을 총칭해서 나타내는 말이에요. 그중에서도 금으로 제작된 사리봉안기에는 미륵사를 창건해 달라고 요청한 사람의 이름이 쓰여 있어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답니다.복원 공사 중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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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보물 창고, 경주 남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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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남산 칠불암 마애불상군(경북 경주시)문화재청“산 서쪽 기슭에 있는 우물인 나정에서 빛이 비치고 있소.”“말이 절하고 있는 것 같은데, 얼른 가봅시다.”어느 날 진한 땅의 여섯 마을 촌장들이 이 광경을 목격하고 서둘러 나정으로 가 보았어요. 그곳에는 커다란 자줏빛 알이 하나 있었어요. 말은 울음소리를 내며 하늘로 올라갔어요. 얼마 후 알에서 어린아이가 나왔는데, 그 아이가 바로 신라의 시조인 박혁거세예요.박혁거세가 태어난 이곳은 어디일까요? 바로 경주 남산의 서북쪽 자락이에요. 신라의 첫 임금이 태어난 남산은 신라 사람들에게 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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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남산을 야외 박물관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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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남산은 경주시 남쪽에 있는 산이에요. 높이 500m 정도 되는 높지 않은 산으로 토함산과 함께 경주의 대표적인 산이에요. 신라 사람들은 이곳을 특별하게 여겼어요. 신라를 세운 박혁거세가 태어난 곳도, 신라 왕실의 별궁이 있던 포석정지도 경주 남산 자락에 있어요.포석정지는 신라왕들이 제사를 지내던 곳이었는데, 후삼국 시대에 신라 경애왕이 후백제의 공격으로 견훤에게 죽음을 맞게 되는 곳으로 알려져 있어요. 국력이 약했던 신라 말의 상황을 보여주는 곳이에요. 남산에는 신라 건국에서부터 신라가 역사 속에서 사라지던 순간의 유적들, 그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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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로운 삼릉계곡 선각육존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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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남산을 오르다 땀이 송골송골 맺힐 정도가 되면 만나는 불상이 있어요. 바로 커다란 바위에 새겨진 선각육존불이에요. ‘선각’이란 선으로 새겼다는 뜻이에요. 선으로 새겨진 여섯 불상을 보는 순간 저절로 ‘와!’하는 감탄사가 나오지요.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도 바위 선들이 비교적 또렷해 신비로움까지 더해줘요. 조각이 섬세하고 뛰어나 바위에 선으로 새긴 불상 중 으뜸으로 꼽히는 문화유산이에요.앞쪽 바위에는 중앙에 석가여래불이 서 있어요. 그 불상 오른쪽과 왼쪽에는 두 보살이 불상을 향해 무릎을 꿇고 있어요. 안쪽 바위에는 중앙에 석가여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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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넉한 미소를 짓고 있는 배동 석조여래삼존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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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남산에는 햇빛 각도에 따라 인상이 바뀌는, 천진한 미소로 유명한 불상이 있어요. 바로 배동 석조여래삼존입상이지요. 아기 같은 작은 키와 얼굴로도 유명해요. 지금은 세 개의 불상이 한자리에 서 있지만 원래는 남산 기슭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고 해요.중앙에 있는 본존불이 가장 눈에 띄는데, 통통하게 살이 오른 얼굴이 푸근하고 넉넉한 느낌을 주지요. 오른손은 하늘을 향해 치켜들고 있고, 왼손은 아래로 내린 채 손바닥을 쫙 펴 내려뜨리고 있어요. 이런 손의 모습은 부처님이 중생들의 공포와 걱정을 없애주는 것을 의미한답니다.왼쪽 보살상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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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개의 불상이 조각된 칠불암 마애불상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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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남산에 있는 대표적인 불상 중 하나는 바로 7개의 불상이 조각되어있는 칠불암 마애불상군이에요. 남산에는 바위에 새긴 ‘마애불’이 많은데, 하늘신과 땅의 신이 바위에 머물며 사람들을 지켜줄 거라는 믿음으로 불상을 바위 곳곳에 새겼어요. 지배층이나 왕이 나라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면, 남산 곳곳에 숨어 있는 신들이 나타나 그들을 혼내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칠불암은 통일 신라 시대(8세기 중엽으로 추정)에 만들어진 암자(큰절에 딸린 작은 절)로 암자 옆에 있는 바위에 새겨진 7개의 불상이 유명해요. 바위 면에 새겨놓은 세 불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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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남산을 받침돌 삼아 서 있는 용장사곡 3층 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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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남산 서쪽의 용장사가 있었던 골짜기 정상에 단정한 모습으로 서서 산 아래를 내려다보는 탑이 있어요. 바로 용장사곡 3층 석탑이지요. 통일 신라 시대 만들어진 탑으로 남산 바위 위에 세웠어요. 탑머리 장식은 모두 없어져 온전한 모습을 볼 수는 없지만, 탑의 모습은 어느 정도 추측할 수 있어요. 통일 신라 시대에 흔히 볼 수 있었던 3층 탑 구조예요. 자연적인 기단인 바위에 2층 기단을 세우고, 그 위에 탑의 몸체를 세웠어요.아래에서 보면 남산 정상에 꼿꼿하게 서 있어 마치 남산 전체를 받침돌로 삼고 있는 것 같아요. 탑의 머리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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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작은 이야기: 남산에 있는 목이 잘린 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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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남산에는 80여 기가 넘는 불상이 남아 있어요. 그 불상 중에는 이상하게도 머리가 잘려 나간 불상이 많아요. 남산 삼릉계 석조여래좌상도 그런 불상 중 하나지요. 사람들은 목 잘린 불상을 보고 깜짝 놀라곤 했어요. 이 불상은 발견될 당시 머리는 골짜기에 떨어져 있었고, 불상 몸체와 광배(부처의 몸 주위에서 나는 빛을 부처님 몸 뒷면에 표현한 것)도 여기 저기 나뒹굴고 있었어요.이 불상 외에도 남산 여기저기에서 목 잘린 불상들이 많이 발견되었어요. 분황사 우물에서도 목이 잘린 불상이 많이 묻혀 있었어요.도대체 왜 불상들의 목이 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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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생활을 알려주는 동궁과 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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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궁과 월지(경북 경주시)“월지는 매우 아름다운 연못이군요.”“고려에서 이곳까지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 신라는 후백제의 공격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고려의 도움이 꼭 필요합니다.”931년 신라의 경순왕이 왕건을 초대하여 잔치를 베풀었어요. 잔치가 벌어진 곳은 월지가 보이는 한 건물이었어요. 월지는 어떤 곳일까요? 또 이곳에서 발굴된 유물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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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삼국 통일 무렵 만들어진 인공연못 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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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드디어 동궁 옆에 커다란 연못을 완성했습니다.”“수고하였소. 앞으로 연못 주변에 화초를 심고 진기한 새와 동물을 키우는 것이 좋겠소.”674년 문무왕 때 신라 왕궁에 연못이 만들어졌어요. 이 연못을 월지라고 해요. 월지를 만든 2년 후 신라는 한반도에서 당나라를 완전히 몰아냈지요. 문무왕은 아버지인 태종 무열왕(김춘추)의 뜻을 이어받아 삼국 통일을 완성했어요.월지는 아주 커다란 인공연못이에요. 전체적인 모습을 살펴보면 서쪽과 남쪽은 직선으로 이어지게 만들고, 북쪽과 동쪽은 바닷가의 해안선처럼 복잡하게 만들었어요.동궁과 월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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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지는 배를 타고 다닐 정도로 규모가 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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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월지의 유물을 발굴할 때 연못 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나무배가 거의 완전한 모습으로 발견되었어요. 이를 통해 신라 사람들이 월지에서 뱃놀이를 즐겼던 것을 알 수 있어요.그런데 월지에서 배를 타려면 물이 충분히 있어야겠죠. 월지의 물은 어디에서 공급될까요? 월지의 동남쪽에는 물이 흘러 들어가는 입수구가 있어요. 이곳에서 흘러들어온 물은 월지 곳곳을 지나 동북쪽에 있는 곳으로 흘러나가도록 만들었어요. 그런데 물이 그냥 흘러가는 것이 아니에요. 나무로 된 마개로 나가는 물의 양을 조절했다고 하니 연못을 관리하는 신라인의 세심함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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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지에서 동물을 키웠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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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왕 때 월지가 만들어진 후 연못 가운데에 있는 섬과 주변에 나무와 꽃을 심었다고 해요. 또 그곳에 진귀한 새와 기이한 동물도 길렀어요. 궁의 정원에서 신기한 동물을 키우는 것은 당시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유행했던 것이래요.그렇다면 월지에서 어떤 동물을 키웠을까요?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역사책에는 정확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요. 하지만 실망하지 마세요. 월지에서 발견된 동물 뼈와 신라가 일본에 동물을 선물로 보냈다는 기록에서 어떤 동물을 키웠는지 짐작할 수 있어요.월지에서 발견된 동물 뼈는 기러기, 꿩, 오리, 산양, 노루, 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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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령구가 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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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잔 비우고 크게 웃기스스로 노래 부르고 마시기소리 없이 춤추기얼굴을 간지럽혀도 참기이게 무엇일까요? 월지에서 발견된 주령구에 쓰여 있는 글이에요. 주령구는 14개의 면으로 이루어진 주사위에요. 그중 사각형은 6개 면, 육각형은 8개 면으로 되어 있어요. 또 각각의 면에는 다른 내용의 글귀가 새겨져 있지요.주령구국립민속박물관주령구는 신라의 왕과 귀족들이 모여서 잔치를 벌일 때 굴리며 놀던 놀이도구이지요. 나머지는 어떤 글이 새겨져 있는지 살펴볼까요? 몇 가지는 여러분도 할 수 있는 놀이랍니다.주령구의 단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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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인은 사용한 생활용품은 무엇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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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지에서 발굴된 유물들은 다른 유물과 다른 점이 한 가지 있어요. 바로 신라인들이 직접 사용했다는 것이죠. 우리가 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유물 대부분은 신라의 여러 고분에서 발굴된 것들이에요. 이 유물들은 실제로 사용한 것이라기보다는 죽은 사람을 위해 무덤에 함께 넣어주었던 부장품일 가능성이 더 높아요.월지에서 발굴된 생활용품은 무엇이 있을까요? 가장 대표적인 것이 청동으로 만든 가위에요. 청동 가위는 생긴 모습도 무척 아름다워요. 신라인들은 이 가위로 초의 심지를 잘랐을 것으로 생각되어요.그런데 월지에서 발견된 금동초심지 가위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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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사람들은 어떤 건물을 지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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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지에서 발굴된 유물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세요?바로 기와 조각이랍니다. 발굴된 유물 약 3만 점 중 80% 정도의 비율이에요. 기와 중에는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연꽃무늬 수막새와 암막새 이외에도 도깨비 얼굴의 기와도 볼 수 있어요. 그래서 신라 사람들이 건물을 지을 때 지붕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잘 알 수 있어요.월지에서 발견된 곱새기와(한국학중앙연구원)와 짐승 얼굴 무늬 기와(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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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작은 이야기: 월지는 한때 안압지라 불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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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부모님께 월지에 대해 질문을 하면 ‘월지’가 어디냐고 물으시는 분도 계실지도 몰라요. 그럴 때 옛날에 ‘안압지’라고 부르던 연못이라고 하면 “아! 경주에 있는 신라시대 연못 말이구나.” 하실 거예요. ‘월지’가 얼마 전까지도 ‘안압지’라고 불렸거든요.‘월지’를 ‘안압지’라고 부른 까닭은 무엇일까요? 조선 시대 사람들이 이 연못을 ‘안압지’라고 불렀기 때문이지요. ‘안압지’라는 용어는 『동국여지승람』이라는 책에 처음 등장해요. 『동국여지승람』은 조선 성종 때 완성된 것으로 각 도의 산과 하천 등 지리와 관련된 정보와 인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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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왕, 통일 신라의 기틀을 닦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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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사지(경북 경주시)“문무대왕께서 완성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는데, 드디어 다 지어졌구나. 아버님의 은혜에 감사한다는 뜻에서 ‘감은사’라 하리라.”“기백이 넘치는 두 탑이 훌륭해 보입니다.”“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신라의 발전을 위해 더욱 힘쓸 것이오.”감은사는 신라를 통일한 문무왕이 짓기 시작했어요. 동해로 쳐들어오는 왜구를 부처의 힘에 의지해 막기 위해서지요. 하지만 그는 감은사의 완성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고, 그의 아들이 왕이 된 후에야 다 지어졌어요.감은사를 완성한 신라의 왕은 누구일까요? 그는 신라의 발전을 위해 어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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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골 귀족 김흠돌의 반란을 진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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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사를 완성한 왕은 신문왕이에요. 삼국 통일을 이룬 문무왕의 첫째 아들이지요. 그는 681년 왕위에 오른 후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신라를 더욱 튼튼한 나라로 만들기 위해 여러 가지 개혁을 했어요.하지만 왕이 된 첫해 큰 어려움이 닥쳤지요. 그의 장인인 진골 귀족 김흠돌이 반란을 일으켰거든요. 왜 반란을 일으켰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어요. 신문왕의 왕비가 김흠돌의 딸이었는데, 왕의 후계를 이을 아들을 못 낳았대요.게다가 왕은 가장 높은 관직인 상대등 자리에 김흠돌이 아닌 다른 사람을 앉혔지요. 이런 상황에서 김흠돌이 권력에서 밀려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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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파식적 이야기에 담긴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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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왕은 통일을 이룬 후 걱정이 많았어요. 특히 동해로 왜구가 쳐들어올까 늘 고민이었지요. 그래서 죽으면서 유언까지 남겼어요. 자신을 동해 앞바다에 묻어주면 동해의 용이 되어 신라를 지키겠다고요. 그 유언에 따라 경주에서 가까운 감포 앞바다 큰 바위 부근에 그의 유골을 뿌렸다고 해요. 그 무덤이 바로 대왕암이지요. 대왕암 가까운 곳에는 감은사라는 절을 세웠어요. 그리고 만파식적이라는 신비한 대나무 피리를 얻었죠.대왕암문화재청『삼국유사』에는 이런 만파식적 이야기가 전해요. 어느 날 동해에 있는 작은 산이 감은사 쪽으로 다가왔대요. 작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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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을 9주로 나누고, 5소경을 설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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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제대로 이끌어가려면 훌륭한 인재들이 필요해요. 인재를 길러내려면 교육기관을 잘 갖추어져야 하고요. 신문왕은 유학의 질서에 따라 나라를 다스리기 위해 국학이라는 교육기관을 설치했어요. 국학에서는 유학을 가르쳐 인재를 양성했지요.정부 기구와 지방제도도 잘 갖추어져야 하지요. 특히 삼국 통일 이후 넓어진 땅을 효율적으로 다스리는 것이 중요했어요. 신라, 옛 고구려, 옛 백제 지역을 3개 주씩 나누었지요. 그러면 전국에는 모두 9개 주가 되는 거예요. 주 밑에는 군과 현을 두었고, 일부 중요한 지역에는 지방관을 보내 다스렸어요.도읍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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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읍을 폐지하고, 관료전을 지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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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진골 귀족들은 녹읍을 소유하고 떵떵거리며 살고 있었지요. 녹읍은 귀족 관리들이 국가로부터 받은 토지에요. 그 땅에 사는 주민들로부터 토지에 대한 세금을 걷어가고 노동력도 마음대로 동원할 수 있었지요. 실제 그 땅은 진골 귀족이 직접 다스린다고 봐도 될 정도였어요.신문왕은 진골 귀족들의 힘이 강력해지는 점을 경계했어요. 귀족들은 녹읍을 기반으로 엄청나게 부유해졌어요. 게다가 녹읍으로 받은 땅의 백성들을 군사로 양성할 수도 있으니, 왕은 무척 신경이 쓰였어요. 그래서 신문왕은 토지 제도 개혁을 강력하게 추진하였어요.“문무 관료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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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속에서도 나라를 지키고자 한 문무 대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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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문무 대왕릉(경북 경주시)문화재청“바닷속에 무덤을 만들다니 대단하군.”“용이 되어 우리 신라를 지켜주겠다고 하니 고마울 뿐이네.”신라 문무왕(재위 661~681)은 아버지인 태종 무열왕(재위 654~661)의 업적을 이어받아 고구려와 백제 땅을 모두 차지하려는 당의 침략을 물리치고 삼국 통일을 완성한 인물이에요. 이제 그가 죽어서 바다에 묻혔어요. 신라는 왜 그의 무덤을 바닷속에 만들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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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속에 무덤을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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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토함산 동쪽 바다에는 조그만 바위섬이 하나 있어요. 바닷가에서 약 200미터쯤 떨어져 있는 이 바위섬이 바로 삼국 통일을 완성한 문무왕의 무덤인 문무 대왕릉으로 ‘대왕암’이라고도 불려요.경주 문무 대왕릉은 우리 역사에 등장하는 많은 왕의 무덤 중에 가장 독특한 무덤일 거예요. 어떻게 왕의 무덤이 바다에 만들어졌을까요? 직접 보면 무덤이라기보다도 바다 한가운데 솟아난 평범한 바위로 보이죠. 하지만 이곳에 살던 사람들은 바다 위에 있는 이 바위섬을 신라 문무왕의 무덤이라고 믿었어요.게다가 어부들은 이곳을 신성하게 여겨 바위 근처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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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려고 했던 문무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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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 또 왜구가 쳐들어왔어? 왜구들 때문에 편한 날이 없군.”신라인들은 동해로 쳐들어와 사람들을 죽이고 재물을 빼앗아 가는 왜구들 때문에 하루도 편한 날이 없었어요. 당시 동해와 남해 바닷가에는 왜구들의 노략질이 아주 심했으니까요. 그들은 순식간에 나타나 마을을 불사르고 많은 재물을 빼앗아 갔어요. 왜구 때문에 늘 걱정하던 문무왕은 죽기 전에 유언을 남겼어요.내가 죽으면 동해 바다에 묻어다오. 나는 죽은 뒤 용이 되어 부처님을 받들고 나라의 평화를 위해 왜구를 막을 것이다. 나의 유해를 동해에 장사지내도록 하라.문무왕은 죽어서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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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에 감사하며 절을 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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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왕은 동해가 내려다보이는 야트막한 산에 절을 짓게 했어요. 지금은 탑만 남아 있는 이 절은 신문왕이 아버지 문무왕의 은혜에 감사한다는 뜻으로 감은사라 이름 지었어요. 감은사는 부처의 힘을 빌려 왜구를 물리치고자 문무왕 때부터 짓기 시작하여 그의 아들인 신문왕 때 완성되었어요.경주 감은사지 동·서 삼층 석탑문화재청감은사터에는 동쪽과 서쪽에 두 개의 탑이 나란히 서 있어요. 이 두 탑은 삼국을 통일한 신라의 힘을 보여주는 듯 다른 절의 탑보다 크고 엄숙한 모양을 하고 있지요. 이러한 감은사는 이후 통일신라 시대 절을 지을 때 좋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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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암과 감은사는 정말 통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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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사와 대왕암은 부처님의 힘으로 왜구를 막으려는 바람이 담긴 곳이에요. 감은사의 중심 건물인 금당 아래에는 용이 된 문무왕이 드나드는 통로를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어요.감은사의 금당은 나란히 서 있는 두 탑의 북쪽에 있어요. 지금은 금당의 터만 남아 있는데 잘 살펴보면 금당 아래에 구멍의 흔적을 찾을 수 있지요.그리고 감은사 터 앞을 흐르는 대종천은 곧바로 문무 대왕릉이 있는 동해로 흘러 들어가요. 이런 흔적으로 보아 대왕암과 감은사의 금당은 연결되었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동해의 용이 된 문무왕이 바다에서 하천을 거슬러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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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작은 이야기: 신비한 피리, 만파식적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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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왕을 장사지낸 뒤 대왕암 주위에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말을 들은 신문왕은 깜짝 놀랐어요.“언제부턴가 동해에 작은 바위산이 하나 나타나더니 감은사 쪽으로 와서는 바다 위에 둥실둥실 떠 있다고 합니다.”“정말 이상한 일이구나. 도대체 그 바위산이 무엇이란 말이냐?”신문왕은 신하들을 이끌고 바닷가로 가 보았어요. 바다에는 정말로 거북이 모양의 바위산이 떠 있고 그 위에 대나무 두 그루가 서 있었어요.“낮에는 저렇게 대나무가 두 그루로 떨어져 있지만, 밤이 되면 하나로 합쳐진다고 합니다.”“정말로 이상한 일이로다. 내 직접 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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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조영, 동모산에서 발해를 세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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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모산(중국 지린성)“고구려 유민과 말갈인 여러분, 드디어 끈질긴 당의 추격을 따돌렸습니다.”“이 모든 게 다 장군 덕분입니다.”“아닙니다. 여러분이 저를 믿고 따라 주셨기 때문이지요. 이제 우리는 이곳 동모산에 새로운 터전을 마련해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를 세울 것입니다.”698년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들이 동모산에서 나라를 세웠어요. 이들을 이끌고 새로운 나라를 세운 사람은 누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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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유민들, 당에 끌려가 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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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8년, 나당 연합군에게 의해 고구려가 멸망하였어요. 그러나 고구려 땅 곳곳에서는 고구려 부흥을 위한 노력이 계속되었지요. 눈에 가시 같던 고구려를 점령한 당은 고구려 유민들이 다시 나라를 일으킬까 두려워했어요.그래서 20만 명이 넘는 고구려 백성을 당으로 끌고 갔지요. 그 중에는 당에 저항하는 핵심 세력들이 대부분 포함되었어요. 이렇게 끌려간 고구려 유민은 가까이는 요서 지역인 영주로, 멀리는 양쯔강 남쪽의 황무지까지 끌려가 가난하고 비참하게 살았어요.대조영도 고구려가 멸망하자 많은 고구려 유민과 함께 영주로 끌려왔어요. 당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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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을 이끌고 당에서 탈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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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틈을 노려 대조영의 아버지 걸걸중상은 당으로부터 벗어나고자 고구려 유민을 이끌고 말갈 추장 걸사비우와 함께 옛 고구려 땅으로 돌아가려 영주 땅을 탈출했어요(696년).걸걸중상과 고구려 유민, 그리고 걸사비우와 말갈 유민들은 요하를 건너 요동 땅에 도착했어요. 당 조정은 처음에는 걸걸중상과 걸사비우에게 관직을 주고 다시 돌아오도록 설득했으나 걸걸중상 등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그러자 당 조정은 입장을 바꿔 거란출신 장군 이해고에게 군사를 주어 요동으로 이들을 쫓아 공격하도록 명령하였어요.당에 맞선 대조영과 고구려 유민당군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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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세우고 도읍을 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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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 수도의 건설천문령에서 큰 승리를 거둔 대조영은 고구려와 말갈 유민들을 이끌고 계속 동쪽으로 이동해 마침내 동모산에 도착하였어요. 동모산 동북쪽으로는 송화강의 지류인 목단강이 흐르고, 주변의 땅은 넓고 비옥했어요.그리고 큰 산들이 넓은 평야를 병풍처럼 둘러싸 막아주고 있어 외적을 막기에도 좋은 곳이었어요. 그래서 대조영은 동모산에 성을 쌓고 도읍으로 정하였어요. 이곳에 정착하게 된 대조영은 나라 이름을 ‘진’이라 하였는데, 나중에 나라의 이름을 ‘발해’로 바꾸었지요.대조영은 고구려가 멸망한 지 불과 30년 만에 고구려를 계승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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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문화를 계승한 발해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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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내부(서울 용산구)“먼 곳까지 오느라 수고 많았소. 발해는 나라가 세워진 뒤 이번에 처음 우리 일본에 사신을 보내왔소. 발해는 어떤 나라입니까?”“우리나라는 고구려의 영토를 회복하고 풍속을 이어 받았습니다. 우리 국왕께서는 이웃 나라 일본과 친하게 지내길 희망하십니다.”발해는 일본에 사신을 보내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임을 밝혔어요. 이처럼 주변 나라에 고구려를 계승했다고 당당히 밝힌 발해는 어떤 문화를 발전시켰을까요? 그들이 남긴 문화유산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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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의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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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유민 출신인 대조영은 698년에 고구려 유민과 말갈인을 이끌고 발해를 세웠어요. 발해가 세워지면서 우리 역사는 남쪽의 신라와 북쪽의 발해가 함께 발전해가는 남북국의 형세를 이루었지요.발해는 고구려 유민들이 중심이 되어 세워진 나라였어요. 그래서 발해 사람들은 자신들이 고구려를 계승했다는 의식을 지니고 있었어요. 발해의 무왕이 일본에 보낸 편지에도 고구려를 계승하고 풍속을 이어받았다는 내용이 들어 있지요.이처럼 발해는 고구려의 전통을 이어받으면서도 중국의 당나라 문화도 받아들였어요. 또한 나라를 세우는 데 함께 힘을 보탠 말갈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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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의 온돌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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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중국의 헤이룽장성의 닝안은 발해의 수도 상경성이 있던 곳이에요. 이곳에서 발해의 온돌 터가 발견되어서 발해가 고구려의 생활 문화를 계승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어요.온돌이란 아궁이에 불을 때서 그 열기로 방바닥인 구들을 데우는 우리나라 고유의 난방 방식이에요. 김치의 영문 표기 방식인 ‘kimchi’와 함께 세계 유명 사전에 ‘ondol’이라는 명칭이 그대로 올라가 있을 정도로 우리 문화의 독창성을 자랑하지요.온돌은 일찍부터 우리 민족이 한반도 북부와 만주 지역의 매서운 추위를 이겨 내기 위해 개발한 것이에요. 온돌은 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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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 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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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개의 꼬리 모양을 딴 치미는 지붕 꼭대기에 올려놓은 장식물로, 망새라고도 해요. 발해 상경성터에서 발견된 치미는 높이가 87센티미터이고 표면에 연한 초록빛이 나는 유약이 칠해져 있어요. 고구려 치미가 발해 치미보다 두 배 남짓 크고 형태도 차이가 있지만, 기본적인 구조와 선의 흐름 등을 볼 때, 발해 치미는 고구려 치미의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어요.발해 치미(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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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 기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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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 수막새와 고구려 수막새국립중앙박물관왼쪽은 발해 기와(수막새)이고, 오른쪽은 고구려 기와(수막새)인데, 이 두 기와는 원 주위에 꽃잎이 둘러싼 형태가 닮아 있어요. 이처럼 발해의 기와는 무늬가 뚜렷하고 힘 있는 고구려 양식을 계승했다고 할 수 있어요.한편 발해 기와의 무늬가 고구려 양식을 따랐다는 사실은, 건축물을 세운 장인(기술자)들이 고구려 출신이거나 고구려 후손들일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말해주지요. 또한 발해 지배층이나 불교 사찰의 승려 가운데 고구려 계통의 사람들이 꽤 많았다는 것도 짐작할 수 있게 해줘요.발해 상경성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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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병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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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병좌상(중국 지린성 훈춘 팔련성 출토)국립중앙박물관발해의 불교에 관한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아서 발해의 불교가 얼마나 발달했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어요. 다만 수도였던 상경성 터에서 10여 곳의 절터가 발굴되었고, 발해의 주요 도시에 절터가 집중적으로 발견되고 있어서 당시 불교가 크게 유행했음을 짐작할 수 있어요. 신라나 당나라 등 당시 가까이 있던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발해의 주된 종교는 불교였다고 할 수 있어요.지금까지 발견된 발해의 절터는 모두 40여 곳인데, 발해 절터 대부분이 통치의 중심지인 5경, 즉 수도였던 다섯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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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 석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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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 상경성 유적에서는 많은 절터가 확인되고 있어요. 특히 이곳에서는 유례가 드물 정도로 거대한 석등이 남아 있어 발해 시기 융성하였던 사찰의 모습을 짐작하게 해주지요.발해 석등(중국 헤이룽장성 닝안)동북아역사재단발해 석등은 현재는 없어진 윗부분까지 포함하면 원래 높이는 6.3m나 되었을 것이라고 해요. 이는 광개토대왕릉비의 높이 6.39m와 거의 비슷해요. 정말 어마어마하게 크죠? 석등의 높이를 통해 웅장한 발해 문화의 특징을 짐작할 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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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 공주 묘와 정효 공주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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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 공주 묘(중국 지린성 돈화현 육정산)동북아역사재단발해의 제3대 국왕인 문왕(재위 737~793)에게는 원래 4명의 딸이 있었다. 그 중 첫째 딸과 셋째 딸은 일찍 죽고, 둘째 딸인 정혜 공주(738~777)와 넷째 딸인 정효 공주(757~792)의 묘가 발견되었다. 문왕 때 만들어진 두 공주의 무덤은 발해 문화의 특징을 알려주는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받고 있어요.정효 공주 묘의 내부 모습 상상도묘지석과 함께 돌사자상이 출토된 정혜 공주 묘(둔화 류딩산 고분군)는 모줄임 천장 구조를 가진 고구려 양식의 굴식 돌방무덤으로 축조되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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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작은 이야기: 발해의 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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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는 불교뿐만 아니라 유학도 발달하였어요. 나라를 다스릴 때 유학 사상을 반영하였고, 주자감이라는 유학 교육 기관을 세워 인재를 길러냈지요. 당에 파견된 유학생 중에는 외국인을 위한 과거 시험인 빈공과에 합격한 사람들도 있었는데, 1등 자리를 놓고 신라 유학생과 경쟁을 벌인 일은 유명한 일화예요.또 정혜 공주와 정효 공주의 묘지석에 유학 경전의 내용이 인용될 정도였어요. 이뿐만이 아니라 일본 한시집에 남아 있는 발해 사신 양태사와 왕효렴의 시를 보면 발해의 한문학 수준을 짐작할 수 있어요.밤에 다듬이 소리를 듣다서리가 차가운 하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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