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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건국, 새로운 나라 조선이 세워지다
건원릉(경기 구리시)문화재청“내가 죽으면 무덤을 고향의 억새풀로 덮어주시오.”“예. 뜻을 받들겠습니다.”1408년(태종 8) 조선을 세운 이성계가 죽음을 맞이했어요. 그의 무덤은 건원릉이라고 부르는데요. 조선 시대 다른 왕의 봉분처럼 잔디가 아니라 동북지역의 억새풀로 덮여 있어요. 그는 고려의 변방인 동북지역(오늘날 함경도 일대)출신이었습니다. 변방의 장수 이성계는 어떻게 조선을 건국할 수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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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4
5
이성계, 고려말 장수로 이름을 떨치다
이성계는 원래 개경에 살던 귀족이 아니었어요. 그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 조상들이 전라도 전주에서 동북지역의 의주(현재의 함경도 지방)로 터전을 옮겼다고 해요. 이성계의 집안이 개경에 와서 살기 시작한 것은 공민왕 때에요. 공민왕은 원이 차지했던 쌍성총관부를 되찾으려 했어요. 이때 쌍성총관부 지역의 실력자였던 이성계의 아버지 이자춘이 원의 세력을 쫓아내는 데 큰 공을 세웠어요. 공민왕은 이자춘에게 벼슬을 내리고 개경에 와서 살 수 있도록 집을 주었다고 해요.이성계는 장수로 활약하며 점점 이름을 떨쳤어요. 1361년(고려 공민왕 10)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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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4
4
신진 사대부가 성장하다
이성계가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던 무렵 고려의 권력을 차지하고 있던 사람들은 권문세족이었어요. 권문세족은 고려가 원의 간섭을 받기 시작하면서 성장했어요. 그들 중에는 고려 전기부터 권력을 갖고 있던 가문의 사람도 있지만, 몽골어를 잘해서 관리가 되거나 원과 관련된 관청에서 일하는 사람도 있었어요.권문세족은 시험을 보지 않고 음서*를 통해 높은 벼슬을 차지하기도 했어요. 그러면서 자신의 권력으로 다른 사람의 땅과 노비를 마음대로 빼앗아 농장을 만들기도 했어요. 이 과정에서 나라에 들어가야 할 세금이 제대로 걷히지 않게 되었어요.* 음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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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4
3
명, 고려에 땅을 내놓으라 하다명, 고려에 땅을 내놓으라 하다
공민왕 시기 중국에서는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어요. 한족 출신의 주원장이 남경에서 새로운 나라 명을 세웠던 거예요. 그렇다면 몽골이 세운 원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북쪽으로 쫓겨 가 명과 대립하고 있었어요.고려는 명이 세워지자 사신을 보내 외교 관계를 맺었어요. 그런데 명은 고려가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를 했어요. 원의 땅은 모두 자기 것이라는 이유로, 공민왕 때 고려가 원으로부터 되찾은 철령 이북의 땅을 자신들이 관리하겠다는 것이었죠. 당시 고려는 우왕이 나라를 다스리던 때였어요. 그때 신하 중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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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07-24
2
위화도에서 군대를 돌리다
이성계가 이끄는 고려군은 평양을 거쳐 요동으로 진격했어요. 마지막 국경인 압록강을 건너던 중 강 가운데에 있는 위화도라는 섬에 이르렀어요. 강을 건너 요동으로 가려고 했지만, 장마에 강물이 불어나 쉽게 건너가지 못했어요. 위화도에 머물면서 군사들은 점점 지쳐갔어요.이성계는 여러 차례 고려 조정에 사람을 보내 비가 많이 와 압록강을 건널 수 없으니 군대를 철수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어요. 그러나 우왕과 최영은 이성계의 의견을 받아주지 않았어요. 고민 끝에 이성계는 군대를 돌리기로 했어요.우리는 1388년에 발생한 이 사건을 우리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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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07-24
1
새로운 나라 조선이 세워지다
1392년 이성계는 신진 사대부의 지지를 받으면서 왕위에 올랐어요. 그 과정에서 고려 왕조를 지키려는 정몽주가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이 보낸 사람에 의해 죽임을 당하기도 했어요. 왕이 된 후 이성계는 나라의 이름을 조선으로 바꾸고 한양으로 도읍을 옮겼어요.조선을 세운 이성계와 신진 사대부는 성리학을 바탕으로 나라를 다스리려 했어요. 백성을 근본으로 여기는 정책을 추진했으며, 관리의 집안보다는 개인의 능력을 더 중요시하였어요.그런데 이성계가 조선의 왕으로 나라를 다스린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아요. 1398년 이성계는 왕의 자리를 둘째 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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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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