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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한국사(KOREAHISTORY) &amp;gt; 고대사 &amp;gt; 김유신</title>
<link>http://www.koreahistory.xyz/kimyushin</link>
<language>ko</language>
<description>김유신 (2025-05-10 18:21:53)</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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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계백을 넘어선 김유신</title>
<link>http://www.koreahistory.xyz/kimyushin/4</link>
<description><![CDATA[<p>황산벌에 도착한 신라군의 공격이 시작되었어요. 죽음을 각오한 백제군은 있는 힘을 다해 싸웠고, 네 번 싸워 네 번 모두 승리했어요. 예상보다 강한 백제군의 저항에 신라군의 피해가 늘어났어요.</p><p><br /></p><p>신라군의 피해가 커지자 김유신은 크게 당황했어요. 계속된 패전으로 군사들의 사기도 크게 떨어졌고, 게다가 당과 만나기로 약속한 날짜도 지키기 힘들어졌어요.</p><p><br /></p><p>고심하던 김유신은 화랑을 전장에 보내 싸우게 했어요. 김유신의 동생인 김흠순의 아들 반굴이 힘껏 싸우다 죽었어요. 반굴이 죽자 이번에는 김유신의 조카 김품일이 16세의 아들 관창을 시켜 선봉에 서게 하였어요.</p><p><br /></p><p>“계백은 어디 있느냐? 비겁하게 숨어있지 말고 정정당당하게 나와서 나와 결판을 내자.”</p><p><br /></p><p>호기롭게 창을 휘두르며 백제군 진영을 휘젓던 관창은 백제군에게 사로잡혀 계백 앞으로 끌려왔지요.</p><p><br /></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xyz/data/editor/2505/3d11fdece4a3c1cd9b31a4bc9f4c8a09_1746868785_8758.JPG" title="3d11fdece4a3c1cd9b31a4bc9f4c8a09_1746868785_8758.JPG" alt="3d11fdece4a3c1cd9b31a4bc9f4c8a09_1746868785_8758.JPG" /><br style="clear:both;" />계백과 관창(백제군사박물관)</p><p><br /></p><p><br /></p><p><br /></p><p>계백이 투구를 벗게 하니 관창이 어리고 또한 용기가 있음을 아끼어 차마 죽이지 못하였어요.</p><p><br /></p><p>“신라에게 우리 백제가 대적할 수 있겠는가? 어린 소년도 이와 같거늘 하물며 장정들이랴!”</p><p><br /></p><p>계백은 속으로 탄식하며 관창을 돌려보냈어요. 신라군으로 돌아간 관창은 아버지 품일에게 간단히 인사만 한 후 말을 타고 또다시 백제군으로 쳐들어갔어요. 그리고 다시 사로잡혔지요.</p><p><br /></p><p>“내 너를 살려 보내줬거늘 어찌 다시 온 것이냐? 나의 머리를 베고 싶다면 더 커서 장수가 된 후에 다시 찾아오너라.”</p><p>“또 나를 살려 돌려보낸다면 날카로운 창과 말을 준비해 다시 올 것이다. 그대에게 패했으니 더는 욕보이지 말고 죽여라.”</p><p><br /></p><p>계백은 어쩔 수 없이 관창의 목을 베어 말에 실어 신라군 진영으로 보냈어요. 관창의 목을 본 신라군은 어린 화랑의 죽음에 눈물을 흘리며 분노하였어요. 이런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김유신이 때맞춰 신라 군사들에게 외쳤지요.</p><p><br /></p><p>“신라의 군사들이여! 어린 화랑들이 죽음으로서 나라에 충성을 다하고 있거늘 그대들은 어찌 백제군을 두려워하여 몸을 사린단 말인가. 이들의 죽음 앞에 그대들은 부끄럽지도 않단 말인가? 그대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싸워준다면 내 오늘 밤 백제를 쳐서 없앨 것이다!”</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xyz/data/editor/2505/3d11fdece4a3c1cd9b31a4bc9f4c8a09_1746868854_5632.JPG" title="3d11fdece4a3c1cd9b31a4bc9f4c8a09_1746868854_5632.JPG" alt="3d11fdece4a3c1cd9b31a4bc9f4c8a09_1746868854_5632.JPG" /><br style="clear:both;" />신라군과 백제군의 전투</p><p>백제군사박물관</p><p><br /></p><p><br /></p><p><br /></p><p>관창의 장렬한 죽음을 본 신라군의 사기는 하늘을 찔렀어요. 5만의 군사가 물밀 듯이 백제군을 공격하였어요. 황산벌은 성난 신라군과 나라의 최후를 막으려는 백제군의 함성과 비명으로 가득 찼어요. 그러나 적은 수의 백제군은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어요. 하루 동안 벌어졌던 황산벌 전투는 결국 백제군의 패전으로 끝났어요. 계백도 부하들과 함께 황산벌에서 전사하고 말았지요.</p><p><br /></p><p>마지막 희망이었던 계백의 5천 결사대가 패하자 나당 연합군을 막을 백제의 군대는 더 이상 없었어요. 이윽고 백제의 수도 사비성이 나당 연합군에게 포위되었고, 얼마 저항도 못하고 함락되었지요. 사비성에서 웅진성으로 도망갔던 의자왕도 곧 항복하고 말았어요. 700여 년 동안 유지되어온 백제의 역사는 결국 황산벌 전투 이후 허무하게 막을 내리고 말았어요.</p><p><br /></p><p>김유신의 지략으로 신라군은 계백을 넘어 오랜 백제와의 승부를 낼 수 있었어요. 만약 신라군이 계백의 백제군에게 큰 피해를 입었다면 전쟁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되었을까요?</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xyz/data/editor/2505/3d11fdece4a3c1cd9b31a4bc9f4c8a09_1746868903_3752.JPG" title="3d11fdece4a3c1cd9b31a4bc9f4c8a09_1746868903_3752.JPG" alt="3d11fdece4a3c1cd9b31a4bc9f4c8a09_1746868903_3752.JPG" /><br style="clear:both;" />황산벌의 모습</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5-05-10T18:21:53+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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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계백에게 의지하는 의자왕</title>
<link>http://www.koreahistory.xyz/kimyushin/3</link>
<description><![CDATA[<p>고심하던 의자왕과 귀족들은 결국 흥수의 말을 믿지 않았어요. 백제 조정에서 시간을 낭비하며 옥신각신 하는 사이에 당군은 해안을 수비하던 백제군을 물리치고 기벌포에 상륙하였고, 신라군은 탄현을 넘어 사비성으로 진격하고 있었어요.</p><p><br /></p><p>두 나라 군대의 빠른 움직임에 다급해진 의자왕은 어찌할 바를 몰라 허둥거렸어요. 의자왕은 어쩔 수 없이 계백을 불러 5천 결사대로 김유신의 신라군을 막으라는 명령을 내렸어요. 적은 군사로 5만의 신라군을 막아야 하는 계백은 비장한 각오를 하였지요.</p><p>“나라의 미래를 알 수 없다. 내 처와 자식들이 외적에게 잡혀 노비가 될까 염려가 된다. 살아서 치욕을 당하는 것보다 죽어서 혼이라도 편한 것이 나을 것이다.”</p><p><br /></p><p>계백은 처와 자식을 모두 죽이고 5천 결사대와 함께 황산벌로 출전하였어요.</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xyz/data/editor/2505/3d11fdece4a3c1cd9b31a4bc9f4c8a09_1746868469_4377.JPG" title="3d11fdece4a3c1cd9b31a4bc9f4c8a09_1746868469_4377.JPG" alt="3d11fdece4a3c1cd9b31a4bc9f4c8a09_1746868469_4377.JPG" /><br style="clear:both;" />백제군과 목책(백제군사박물관)</p><p><br /></p><p><br /></p><p><br /></p><p>계백은 신라군이 황산벌에 도착해 먼저 수비하기에 좋은 세 곳을 골라 목책을 세웠어요. 계백은 결사대에게 큰 소리로 비장하게 외쳤어요.</p><p><br /></p><p>“지난 날 구천은 5천 명으로 오나라 70만의 무리를 격파하였다. 오늘 마땅히 힘써 싸워 승리함으로써 나라의 은혜에 보답하자.”</p><div><br /></div>]]></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5-05-10T18:14:46+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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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의자왕의 독재와 백제의 혼란</title>
<link>http://www.koreahistory.xyz/kimyushin/2</link>
<description><![CDATA[<p>백제 의자왕은 즉위 초기 고구려와 연합하여 신라 북쪽의 30개 성을 빼앗고, 대야성을 점령하면서 백제 중흥을 이루는 듯 하였어요. 그러나 의자왕은 귀족들을 정치에서 제외시키고 자신의 아들 41명을 최고 관직에 임명하는 등 가까운 사람 중심으로 나라를 운영하고자 했지요.</p><p><br /></p><p>의자왕이 권력을 독점하려하자 귀족 세력이 거세게 반발하였어요. 나라의 지도층은 분열되고 의자왕이 점차 사치에 빠지자 백제의 국력이 크게 약해졌어요.</p><p><br /></p><p>성충이나 흥수 같은 충신들이 의자왕의 잘못된 정치를 말리자 이들을 옥에 가두었어요. 이를 본 백성들의 마음도 점차 멀어져 갔지요.</p><p><br /></p><p>혼자서 백제를 공격할 만한 힘이 없었던 신라는 오래 전 당에 지원군을 요청하였어요. 김춘추가 지원군을 요청한지 16년 만에 당이 군대를 보내면서 나당 연합군이 만들어졌어요. 백제가 흔들리는 틈을 노린 것이었어요.</p><p><br /></p><p>당의 13만 대군을 태운 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백제를 향했어요. 목적지는 백제의 수도 사비를 끼고 흐르는 백강(지금의 금강) 하구의 기벌포였어요. 이에 발맞춰 김유신이 이끄는 5만의 신라 군사들도 탄현을 향해 출정하였어요.</p><p>나당 연합군이 백제로 오고 있다는 소식이 백제 의자왕에게 전해졌어요. 의자왕은 감옥에 갇혀있던 흥수에게 사람을 보내 어떻게 방어해야할지를 물었어요.</p><p><br /></p><p>“기벌포와 탄현은 우리나라 요충지로 한 명의 군사와 한 자루의 창을 가지고도 1만 명을 막을 수 있는 곳입니다. 군사를 보내 두 곳을 철통같이 지키소서.”</p><p><br /></p><p>기벌포는 바닷물이 빠지면 넓은 갯벌이 생겨나 군사들이 상륙하기가 어렵고 수비하기에 좋은 곳이었어요. 탄현도 높고 좁은 골짜기로 이어져 있었는데, 이곳으로 신라군을 유인하여 공격한다면 적은 수의 군사로 손쉽게 큰 피해를 줄 수 있는 곳이었지요. 하지만 몇몇 신하들은 반대하였어요.</p><p><br /></p><p>“많지 않은 군사를 둘로 나누는 것은 스스로 패전을 부르는 방법입니다. 흥수는 죄인입니다. 임금과 나라를 원망하는 자의 말을 믿을 수 없습니다.”</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xyz/data/editor/2505/3d11fdece4a3c1cd9b31a4bc9f4c8a09_1746868300_4886.JPG" title="3d11fdece4a3c1cd9b31a4bc9f4c8a09_1746868300_4886.JPG" alt="3d11fdece4a3c1cd9b31a4bc9f4c8a09_1746868300_4886.JPG" /><br style="clear:both;" />기벌포, 탄현, 황산벌의 위치</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5-05-10T18:11:51+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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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em>
<title>김유신, 황산벌의 5천 결사대를 넘어서다</title>
<link>http://www.koreahistory.xyz/kimyushin/1</link>
<description><![CDATA[<p><img src="http://www.koreahistory.xyz/data/editor/2505/3d11fdece4a3c1cd9b31a4bc9f4c8a09_1746867667_2197.JPG" title="3d11fdece4a3c1cd9b31a4bc9f4c8a09_1746867667_2197.JPG" alt="3d11fdece4a3c1cd9b31a4bc9f4c8a09_1746867667_2197.JPG" /><br style="clear:both;" />김유신 묘(경북 경주시)</p><p><br /></p><p><br /></p><p><br /></p><p>“장군! 5만 군사를 한꺼번에 보낸다면 5천의 백제 군사야 쉽게 물리칠 수 있을 터인데 어찌 이리 시간만 보내고 계신지요?”</p><p><br /></p><p>“죽음을 각오한 백제군을 가볍게 보면 우리 군의 피해가 클 것이오. 우리 군대의 피해를 줄이면서 이길 방법은 없겠소?”</p><p><br /></p><p>황산벌에서 적은 수의 백제의 결사대에 맞선 김유신은 어떤 고민을 했을까요? 자신의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어떤 방법을 사용했을까요?</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5-05-10T18:01:54+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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