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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한국사(KOREAHISTORY) &amp;gt; 조선사 &amp;gt; 정조</title>
<link>http://www.koreahistory.xyz/jeongjo</link>
<language>ko</language>
<description>정조 (2025-05-07 10:31:44)</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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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백성을 위한 새로운 도시 화성을 건설하다</title>
<link>http://www.koreahistory.xyz/jeongjo/6</link>
<description><![CDATA[<p>정조가 즉위한지 13년이 되는 해였어요. 그동안 백성을 위해 펼친 여러 개혁 정치로 나라 안팎은 점차 안정되었어요. 백성들도 정조를 성군이라 부를 정도였지요.</p><p>그러나 정작 정조는 늘 마음 한 구석이 무거웠어요. 바로 아버지 사도세자 때문이었어요. 정조는 효심이 매우 깊었어요.</p><p><br /></p><p>“과인이 처음으로 아버지 묘소를 보았을 때 가슴이 막히고 눈물이 쏟아져 한참을 움직이지 못하였소. 어찌 그리 작고 형편없이 만들었단 말이오.”</p><p><br /></p><p>정조는 사도세자의 묘를 풍수 명당인 수원으로 옮기기로 하였어요. 그러려면 그곳 백성들을 다른 곳으로 옮겨야 했어요. 고민 끝에 결단을 내렸어요.</p><p><br /></p><p>“나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지금 당장 수원부 관아 뒤편 화산으로 옮기도록 하라. 대신 수원부를 팔달산 동쪽 넓은 들판으로 옮겨 백성들의 불편함이 없도록 하라.”</p><p><br /></p><p>마침내 1789년 사도세자의 묘소가 옮겨졌고, 정조는 새로운 묘소의 이름을 ‘현륭원’이라 하였어요.</p><p><br /></p><p>“아바마마! 드디어 편안한 곳으로 모시게 되었습니다.”</p><p><br /></p><p>정조는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비참하게 잃은 후 평생 가슴에 품어야 했던 슬픔을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었어요.</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xyz/data/editor/2505/47c9d295d07e47f6362028b31bc47db0_1746581414_0823.JPG" title="47c9d295d07e47f6362028b31bc47db0_1746581414_0823.JPG" alt="47c9d295d07e47f6362028b31bc47db0_1746581414_0823.JPG" /><br style="clear:both;" />수원화성 팔달문(경기 수원시)</p><p><br /></p><p><br /></p><p><br /></p><p>정조는 수원을 한양 다음으로 큰 도시로 만들고 싶어 했어요. 수원으로 이주하는 백성들에게 여러 가지 혜택을 주었고, 수원의 도시 이름도 지위를 높여 화성으로 바꾸었어요.</p><p><br /></p><p>신도시 수원 화성은 정확한 설계도와 거중기 같은 편리한 기구 덕분에 빠른 속도로 건설되었어요. 일하는 사람들도 일한 만큼 돈을 받았기 때문에 열심히 일했지요. 그 결과 10년 걸릴 것을 예상했던 화성 건설은 1796년, 2년 6개월 만에 끝나게 되었지요. 공사를 하던 1795년에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회갑을 맞아 화성으로 대대적인 행차를 하기도 했어요.</p><p>정조는 완성된 화성을 보며 다시 한번 자신의 꿈을 다져보았어요.</p><p><br /></p><p><br /></p><p>화성에서 새로운 개혁 정치를 하리라.</p><p>내 꿈을 펼치리라.</p><p><br /></p><p>정조는 효심이 깊고 학식이 뛰어나고 다재다능한 임금이었어요. 무엇보다 백성을 제 몸처럼 아끼고 백성을 위한 개혁 정치를 펼쳤지요. 이러한 정조가 있었기에 조선은 다시 한번 중흥기를 누릴 수 있었어요. 만약 정조가 갑자기 죽지 않았다면 이후 조선은 어떻게 변하였을까요?</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xyz/data/editor/2505/47c9d295d07e47f6362028b31bc47db0_1746581481_1986.JPG" title="47c9d295d07e47f6362028b31bc47db0_1746581481_1986.JPG" alt="47c9d295d07e47f6362028b31bc47db0_1746581481_1986.JPG" /><br style="clear:both;" />환어행렬도</p><p><br /></p><p><br /></p><p><br /></p><p>정조가 화성으로 행차하는 능행은 조상들에게 예를 갖추는 동시에 사람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하나의 국가적 큰 행사였다.</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5-05-07T10:31:44+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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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백성들이 자유롭게 장사를 할 수 있게 하다</title>
<link>http://www.koreahistory.xyz/jeongjo/5</link>
<description><![CDATA[<p>한양의 중심부인 종로 한복판에서 장사를 하려는 백성들과 이를 막으려는 관리 사이에 작은 소동이 벌어졌어요. 무슨 일 때문에 그런 걸까요? 왜 여기에서 장사를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일까요? 조선에는 나라에 물품을 대는 상인들인 시전 상인이 있었어요. 시전 상인 중 비단, 명주, 무명, 모시, 종이, 어물 등 여섯 종류의 중요한 물품을 파는 상인을 특별히 육의전이라 하였어요.</p><p><br /></p><p>당시 나라에서는 육의전을 비롯한 시전 상인 외에는 서울 도성 안에서 아무나 장사를 하지 못하게 하였어요. 그리고 시전 상인들에게 허가를 받지 않은 다른 사람들이 서울 도성 안에서 장사를 하지 못하게 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지요. 이러한 권한을 금난전권이라고 해요.</p><p><br /></p><p>“나리! 한 번만 봐 주세요. 여기서 장사를 하지 못하면 오늘 우리 가족은 굶어 죽습니다.”</p><p>“글쎄, 안된다니까! 이곳에는 나라에서 허가 받은 사람만 장사할 수 있다니까. 썩 꺼지지 못할까!”</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xyz/data/editor/2505/47c9d295d07e47f6362028b31bc47db0_1746581099_404.JPG" title="47c9d295d07e47f6362028b31bc47db0_1746581099_404.JPG" alt="47c9d295d07e47f6362028b31bc47db0_1746581099_404.JPG" /><br style="clear:both;" /> </p><p><br /></p><p><br /></p><p>금난전권 때문에 시전 상인들은 특정 상품을 독점 판매하여 막대한 이익을 남겼어요. 그들끼리 담합해서 물건을 팔지 않을 때면, 백성들은 높은 물가와 부족한 생필품으로 큰 고통을 받았지요.</p><p><br /></p><p>“아무리 법으로 난전을 금한다고 하지만 이는 잘못된 법이다. 백성들 모두가 자유롭게 장사를 해야지 몇몇 사람만 장사를 해서 되겠는가? 자세한 사정을 알아봐야겠다.”</p><p>정조는 신하들을 몰래 시장으로 보냈어요. 시장 곳곳에서 백성들은 시전 상인들의 횡포에 불만을 터뜨리고 있었지요.</p><p><br /></p><p>“아니 한 냥짜리 물건을 닷 냥에 팔고, 가짜 물건을 진짜라 속이고, 나쁜 시전 상인들 같으니.”</p><p><br /></p><p>시전 상인들의 횡포를 보고 받은 정조는 결단을 내렸어요.</p><p><br /></p><p>“백성들이 장사를 하지 못한다면 이들은 더욱 가난해질 것이다. 육의전을 제외한 시전 상인의 금난전권을 없애고.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자유롭게 장사할 수 있도록 하라.”</p><p><br /></p><p>이러한 정책이 발표되자 시전 상인들은 더 이상 장사하는 백성들을 괴롭힐 수 없었어요. 장사하는 사람들은 많아졌고 시장은 더욱 활성화되었지요. 백성들은 보다 싼 가격으로 물건을 살 수 있었고, 상업은 더욱 발달하게 되었어요.</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5-05-07T10:25:18+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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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친위 부대 장용영을 만들다</title>
<link>http://www.koreahistory.xyz/jeongjo/4</link>
<description><![CDATA[<p>정조는 늘 자신을 지켜 줄 부대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였어요. 정조를 위협하는 무리들이 그만큼 많았기 때문이에요. 당시 정조에 반대하는 세력이 각 군영의 부대를 장악하고 있었어요. 그래서인지 정조를 암살하려는 시도가 무려 7번이나 있었어요. 조선의 임금 중에서 유난히 많았지요.</p><p><br /></p><p>이런 일이 계속 되자 정조는 강력한 호위 부대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였어요. 이참에 군대도 다시 정비하고자 했어요.</p><p>“중앙과 지방의 군영을 축소하고 무예에 출중한 군인들만 모아 하나의 새로운 군대를 만들도록 하여라.”</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xyz/data/editor/2505/47c9d295d07e47f6362028b31bc47db0_1746580863_2052.JPG" title="47c9d295d07e47f6362028b31bc47db0_1746580863_2052.JPG" alt="47c9d295d07e47f6362028b31bc47db0_1746580863_2052.JPG" /><br style="clear:both;" />정조와 장용영</p><p><br /></p><p><br /></p><p><br /></p><p>1793년 정조는 ‘장용영’이라는 강력한 친위 부대를 만들었어요. 장용영 덕분에 정조는 안심하고 나랏일을 살필 수 있었지요.</p><p><br /></p><p>장용영의 군인들은 조총과 검술, 활쏘기를 매일같이 연습했어요. 정조는 군사들을 거느리고 직접 훈련을 지휘하기도 하였지요. 실제 정조도 활솜씨가 뛰어난 무예의 고수였어요.</p><p><br /></p><p>“오늘도 과녁에 백발백중이구나. 검술 실력도 많이 늘었어!”</p><p>정조는 장용영 군사들과 함께 훈련하며 그들의 뛰어난 능력을 보고 매우 기뻐했어요.</p><p><br /></p><p>정조는 장용영을 통해 군권을 잡고 안정된 왕권으로 개혁에 더욱 힘을 낼 수 있었지요.</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5-05-07T10:21:39+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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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규장각을 통해 새로운 인재를 뽑다</title>
<link>http://www.koreahistory.xyz/jeongjo/3</link>
<description><![CDATA[<p>나라가 발전시키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총명한 인재를 뽑는 일이었어요. 정조는 어떻게 하면 훌륭한 인재를 찾아내어 나라 운영에 도움이 되게 할까 고민하였어요.</p><p><br /></p><p>“그래! 예전 세종대왕이 궁궐 안에 집현전을 만들어 학자들을 키워내셨지. 집현전에서 공부한 학자들이 다양한 책도 펴내고 백성들을 위해 훈민정음도 만들었어.”</p><p><br /></p><p>정조는 새로운 기구를 만들어 학문을 발전시키고 자신을 힘것 도와줄 신하들을 육성하고자 하였어요. 정조는 창덕궁 후원에 커다란 건물을 지었어요. 1층이 ‘규장각’이고, 2층 누각이 주합루에요. 본래 규장각은 왕실도서관의 기능을 하는 곳이었어요.</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xyz/data/editor/2505/47c9d295d07e47f6362028b31bc47db0_1746580406_8282.JPG" title="47c9d295d07e47f6362028b31bc47db0_1746580406_8282.JPG" alt="47c9d295d07e47f6362028b31bc47db0_1746580406_8282.JPG" /><br style="clear:both;" />창덕궁의 규장각(서울 종로구)</p><p><br /></p><p><br /></p><p><br /></p><p>“이곳을 새로운 정치의 중심 역할을 하는 곳으로 만들겠다.”</p><p><br /></p><p>정조는 차츰 규장각을 학문을 연구하고 나랏일을 의논하는 기관으로 변화시켜 나갔어요.</p><p><br /></p><p>정조는 당파나 신분에 상관없이 재주 있는 젊은 인재들을 선발하여 규장각에서 양성하였어요. 이들 중에는 훗날 대학자로 성장한 정약용 같은 사람도 있었고, 박제가, 유득공, 이덕무 같은 중인 출신도 있었어요.</p><p>정조는 젊은 관리들이 규장각에서 재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였어요. 이를 초계문신 제도라고 해요. 여기에 뽑힌 사람들은 본래의 일을 면제 받고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었어요. 정조는 이들을 상대로 수시로 직접 강의를 하거나, 심지어 시험을 주관하여 채점하기도 하였어요.</p><p><br /></p><p>실제 정조는 학식이 뛰어나 이름난 신하라 해도 주눅이 들 정도였다고 해요.</p><p><br /></p><p>정조의 지극한 관심 속에 성장한 규장각 출신의 관리들은 정조를 도와 새로운 개혁 정치에 앞장섰어요. 또한 정조는 자신을 지지해 주는 이들과 함께 조선의 문예 부흥을 이끌 수 있었어요.</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5-05-07T10:13:46+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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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title>
<link>http://www.koreahistory.xyz/jeongjo/2</link>
<description><![CDATA[<p>“할바마마! 제발 아바마마를 살려 주세요.”</p><p><br /></p><p>행차의 주인공 정조는 어린 시절 생긴 슬픈 상처가 있어요. 11살 때 아버지 사도세자가 할아버지인 영조의 명령으로 뒤주에 갇혀 죽은 사건 때문이에요. 그만 아버지의 그 비참한 죽음을 눈앞에서 보았던 것이지요. 생각만 해도 끔찍한 장면이 아닐 수 없어요. 아버지가 한없이 불쌍했고, 그만큼 할아버지가 원망스럽고 무서웠지요.</p><p><br /></p><p>정조는 이 끔찍한 과거를 가슴 깊이 간직한 채 학문에 관심을 갖고 열심히 공부하였어요. 할아버지 영조의 남다른 사랑을 듬뿍 받는 한편, 혹독한 가르침 역시 묵묵히 견뎌 냈지요.</p><p><br /></p><p>1776년 정조는 24세 나이에 조선의 22번째 임금이 되었어요. 왕위에 오르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라 눈물이 앞을 가렸어요.</p><p><br /></p><p>정조는 다시 마음을 굳게 잡고 다짐했어요. 그리고 신하들에게 선포하였어요.</p><p><br /></p><p>“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하지만 할아버지께서 나로 하여금 자신의 맏아들이자 나에게 큰아버지인 효장세자의 뒤를 잇도록 하셨다.”</p><p>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를 생각하는 마음에도 불구하고 할아버지 영조의 뜻에 따라 왕위 계승의 정통을 지키겠다고 하였어요. 그리고 영조의 탕평책을 이어 특정 당파에 치우치지 않고 인재를 고루 등용하겠다는 뜻도 함께 밝혔어요.</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5-05-07T10:00:08+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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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em>
<title>정조, 조선의 부흥을 이끌다</title>
<link>http://www.koreahistory.xyz/jeongjo/1</link>
<description><![CDATA[<p><img src="http://www.koreahistory.xyz/data/editor/2505/47c9d295d07e47f6362028b31bc47db0_1746579409_6781.JPG" title="47c9d295d07e47f6362028b31bc47db0_1746579409_6781.JPG" alt="47c9d295d07e47f6362028b31bc47db0_1746579409_6781.JPG" /><br style="clear:both;" />청계천(서울 종로구)</p><p><br /></p><p><br /></p><p><br /></p><p>“헐레벌떡~ 자네들, 뭐하고 있나. 임금님이 수원까지 행차하신다네. 벌써 많은 사람들이 구경하러 가고 있네. 빨리들 가세.”</p><p><br /></p><p>“그래 이번에는 혜경궁 마마를 모시고 간다는구먼. 예전과는 전혀 다른 행차가 될 것 같네. 기대되는구먼.”</p><p><br /></p><p>1795년 한양에서 수원으로 이르는 길이 난리가 났어요. 많은 백성들이 임금님 행차를 구경하기 위해 몰려들었지요.</p><p><br /></p><p>행차에 나선 임금님은 어떤 분일까요? 한양에서 수원까지 행차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5-05-07T09:57:10+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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