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 ?>
<rss version="2.0" xmlns:dc="http://purl.org/dc/elements/1.1/">
<channel>
<title>한국의 역사, 지금나우, 1555-0001 &amp;gt; 고대사 &amp;gt; 고대사 300년대</title>
<link>http://www.koreahistory.xyz/ancient_300s</link>
<language>ko</language>
<description>고대사 300년대 (2026-07-20 17:18:42)</description>

<item>
<title>한강 유역을 차지하다</title>
<link>http://www.koreahistory.xyz/ancient_300s/20</link>
<description><![CDATA[<p>개로왕을 붙잡은 고구려군에는 재증걸루라는 백제 출신 장수가 있었어요. 재증걸루는 개로왕을 보고 말에서 내려 절을 하고, 왕의 얼굴을 향해 세 번 침을 뱉고 죄를 꾸짖은 다음 몸을 묶어 아차성 밑으로 보내 죽였어요.</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xyz/data/editor/2607/63315d6c2d73b8572f9fc2bce837ddaa_1784535173_8603.png" title="63315d6c2d73b8572f9fc2bce837ddaa_1784535173_8603.png" alt="63315d6c2d73b8572f9fc2bce837ddaa_1784535173_8603.png" /><br style="clear:both;" />개로왕과 한성 백제 최후의 날</p><p>한성백제박물관</p><p><br /></p><p>신라 구원군을 이끌고 오던 태자는 개로왕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웅진(공주)로 수도를 옮기고 말았어요. 이제 한성을 중심으로 한 한강 주변의 땅은 고구려의 것이 되었지요.</p><p><br /></p><p>한성을 차지한 고구려군은 백제가 약해진 틈을 노려 남한강을 따라 계속 세력을 넓혀갔어요. 그 결과 한반도 중부 지역까지 모두 고구려의 땅이 되었지요. 충주에 고구려비가 있는 것도 장수왕 때 이곳까지 영토를 넓혔기 때문이지요.</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xyz/data/editor/2607/63315d6c2d73b8572f9fc2bce837ddaa_1784535195_4562.png" title="63315d6c2d73b8572f9fc2bce837ddaa_1784535195_4562.png" alt="63315d6c2d73b8572f9fc2bce837ddaa_1784535195_4562.png" /><br style="clear:both;" />장수왕의 남쪽 진출</p><p>충주 고구려비전시관</p><p><br /></p><p>장수왕은 아버지 광개토 대왕의 업적을 이어 정복 전쟁을 해 나갔어요. 고구려 북쪽 지역 뿐 아니라 남쪽 지역으로도 진출해 고구려의 영토는 역사상 가장 넓어졌어요. 물론 그의 뛰어난 외교술과 전략이 없었으면 이룰 수 없는 일이었지요. 이에 장수왕은 고구려의 전성기를 이끈 왕이 되었어요.</p><p><br /></p><p>여러분은 북쪽으로 세력을 넓힌 광개토 대왕과 남쪽으로 진출한 장수왕 중 누가 더 뛰어난 활약을 하였다고 생각하나요?</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xyz/data/editor/2607/63315d6c2d73b8572f9fc2bce837ddaa_1784535223_75.png" title="63315d6c2d73b8572f9fc2bce837ddaa_1784535223_75.png" alt="63315d6c2d73b8572f9fc2bce837ddaa_1784535223_75.png" /><br style="clear:both;" />장수왕 시기 고구려의 영역</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6-07-20T17:18:42+09:00</dc:date>
</item>


<item>
<title>백제 한성을 공격하다</title>
<link>http://www.koreahistory.xyz/ancient_300s/19</link>
<description><![CDATA[<p>개로왕은 도림의 말에 무릎을 치며 기뻐하였어요. 개로왕은 도림의 말에 따라 수많은 백성들을 동원하여 큰 공사를 벌였어요. 흙을 다져 성을 고쳐쌓고, 화려한 궁궐과 누각을 지었어요. 또한 큰 돌을 가져다 아버지 비류왕의 무덤을 크게 만들고, 강을 따라 길고 커다란 둑을 쌓았어요.</p><p><br /></p><p>이로 인해 나라 곳간이 바닥나고 백성들은 가난해졌어요. 게다가 귀족들을 무시하고 왕족 중심으로 정치를 해 귀족들의 불만이 높았어요. 백제 나라 전체가 위태롭게 된 것이지요.</p><p><br /></p><p>이때 도림은 도망쳐 다시 고구려로 돌아가 장수왕에게 보고했어요. 장수왕은 매우 기뻐하며 군사 3만 명을 이끌고 백제를 공격하기 위해 출발했어요. 이 소식을 전해들은 개로왕은 도림에게 속았음을 깨닫고 태자에게 말했어요.</p><p><br /></p><p>“내가 어리석고 총명하지 못하여, 간사한 사람의 말을 믿어 나라가 이 꼴이 되었구나. 백성은 가난해지고 군대는 약해졌으니, 비록 위급한 일을 당해도 누가 기꺼이 나를 위하여 힘써 싸우려 하겠는가? 그러나 나라를 위해 죽는 것은 군주의 본분이다. 나는 끝까지 싸울 것이다.”</p><p>“아바마마! 저도 남아 함께 싸울 수 있게 허락해 주소서!”</p><p><br /></p><p>“나는 당연히 나라를 위해 죽어야 마땅하지만, 네가 여기에서 함께 죽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너는 피신하여 반드시 왕통을 잇고 백제를 보존해야 할 것이다. 알겠느냐!”</p><p><br /></p><p>태자는 어쩔 수 없이 신하들을 데리고 남쪽으로 떠났어요.</p><p><br /></p><p>고구려군은 네 방향으로 나눠 백제의 수도 한성을 포위하였어요. 개로왕은 성문을 굳게 닫고 지켰지만 고구려군의 계속된 공격에 북성(풍납토성)이 7일 만에 함락되었어요. 고구려군이 다시 남성(몽촌토성)으로 옮겨 공격하자 개로왕 역시 허둥지둥 어찌 할 바를 몰랐죠. 결국 개로왕은 성문을 빠져나가 도망쳤어요. 그러나 고구려군은 도망가는 백제군을 끈질기게 추격하였고, 결국 개로왕은 붙잡히고 말았어요.</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xyz/data/editor/2607/63315d6c2d73b8572f9fc2bce837ddaa_1784534977_5783.png" title="63315d6c2d73b8572f9fc2bce837ddaa_1784534977_5783.png" alt="63315d6c2d73b8572f9fc2bce837ddaa_1784534977_5783.png" /><br style="clear:both;" />풍납토성과 몽촌토성</p><p>한성백제박물관</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6-07-20T17:09:49+09:00</dc:date>
</item>


<item>
<title>백제를 혼란에 빠뜨리다</title>
<link>http://www.koreahistory.xyz/ancient_300s/18</link>
<description><![CDATA[<p>고구려가 도읍을 평양으로 옮기고 남쪽으로 진출하려는 뜻을 세우자 위협을 느낀 백제와 신라 두 나라는 서로 동맹(나제동맹)을 강화해 고구려에 맞섰어요. 백제는 고구려를 공격하였고, 요충지의 방어를 강화했어요.</p><p><br /></p><p>나아가 백제는 고구려를 견제하고자 대륙의 강국인 북위에 사신을 보내 구원병을 요청했어요. 그러나 북위는 고구려와의 좋은 외교 관계를 맺고 있어서 백제의 요청을 거절하였어요.</p><p>장수왕은 이를 알고 백제를 치기로 했어요. 그는 백제를 공격하기 전에 미리 백제를 혼란에 빠뜨리려는 계획을 세웠어요. 이때 도림이라는 승려가 장수왕을 찾아와 스스로 첩자가 되겠다고 청했어요.</p><p><br /></p><p>“제가 어리석어서 아직 깨우침을 얻지 못하였지만 나라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하옵니다. 대왕께서 저를 백제의 첩자로 보내주신다면 왕을 욕되게 하지 않겠습니다.”</p><p><br /></p><p>도림은 거짓으로 죄를 짓고 백제로 도망을 갔어요. 도림은 장기와 바둑을 매우 좋아하던 백제 개로왕을 찾아 갔어요.</p><p><br /></p><p>“제가 어려서부터 바둑을 배워 높은 실력을 갖고 있습니다. 제가 왕의 곁에서 바둑의 참 재미를  아실 수 있도록 가르쳐 드리겠습니다.”</p><p><br /></p><p>개로왕이 도림과 직접 바둑을 둬 보니 과연 바둑 실력이 뛰어난 고수였어요. 개로왕은 도림을 귀한 손님으로 대우하였고, 두 사람은 매우 친해졌어요.</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xyz/data/editor/2607/63315d6c2d73b8572f9fc2bce837ddaa_1784534848_5827.png" title="63315d6c2d73b8572f9fc2bce837ddaa_1784534848_5827.png" alt="63315d6c2d73b8572f9fc2bce837ddaa_1784534848_5827.png" /><br style="clear:both;" />백제왕이 선물한 일본 나라 쇼소인 바둑판(복제품, 한성백제박물관)</p><p><br /></p><p>그러던 어느 날 도림이 개로왕에게 조용히 말했지요.</p><p><br /></p><p>“제가 다른 나라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왕께서 많은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는 다만 바둑 두는 것 외에 아직 털끝만한 도움도 드린 적이 없습니다. 이제 한 말씀 올려 왕께 도움이 되고자 합니다.”</p><p><br /></p><p>“그래 말해보시오. 만일 나라에 이롭다면 내가 바라는 바요.”</p><p><br /></p><p>“백제는 사방이 산과 바다와 강으로 둘러싸여 있어 이웃 나라들이 쉽게 공격할 생각을 못하고 오히려 백제를 받들어 섬기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백제의 성곽과 궁궐은 수리할 데가 많고 선왕들의 무덤은 볼품없습니다. 왕께서 백제가 번성하다는 것을 사방에 보여주면 이웃나라가 모두 백제를 두려워하고 받들고자 할 것입니다.”</p><p>“좋은 생각이오! 내가 그렇게 하겠소.”</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6-07-20T17:07:44+09:00</dc:date>
</item>


<item>
<title>평양성으로 도읍을 옮기다</title>
<link>http://www.koreahistory.xyz/ancient_300s/17</link>
<description><![CDATA[<p>사방으로 영토를 넓혔던 광개토 대왕을 이어 고구려의 왕이 된 장수왕은 즉위한지 15년째 되던 해에 나라의 운명을 건 결정을 하였어요. 수도를 북쪽의 국내성(집안)에서 남쪽의 평양으로 옮긴 것이지요(427년).</p><p><br /></p><p>내륙 깊숙이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던 국내성은 방어에는 유리했지만 평야가 적고 다른 나라와 교류하기에도 불편했어요. 또 국내성에서는 귀족들의 힘에 세서 왕권을 크게 강화하기 어려웠어요. 이전보다 더욱 강성해진 고구려는 큰 강과 평야가 있고, 교류하기에 편리하고 왕권을 강화하기에 좋은 새로운 도읍지가 필요했던 거지요.</p><p><br /></p><p>여러 귀족과 신하의 반대를 물리치고 평양으로 도읍을 옮긴 장수왕은 대륙의 여러 나라와 외교 관계를 맺으며 북방을 안정시켰어요. 그리고 남쪽으로 영토를 넓히고자 계획을 세우고 있었지요.</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xyz/data/editor/2607/63315d6c2d73b8572f9fc2bce837ddaa_1784534681_7408.png" title="63315d6c2d73b8572f9fc2bce837ddaa_1784534681_7408.png" alt="63315d6c2d73b8572f9fc2bce837ddaa_1784534681_7408.png" /><br style="clear:both;" />고구려의 여러 도읍</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6-07-20T17:04:52+09:00</dc:date>
</item>


<item>
<title>장수왕, 아리수를 건너다</title>
<link>http://www.koreahistory.xyz/ancient_300s/16</link>
<description><![CDATA[<p><img src="http://www.koreahistory.xyz/data/editor/2607/63315d6c2d73b8572f9fc2bce837ddaa_1784534568_722.png" title="63315d6c2d73b8572f9fc2bce837ddaa_1784534568_722.png" alt="63315d6c2d73b8572f9fc2bce837ddaa_1784534568_722.png" /><br style="clear:both;" />풍납토성(서울 송파구)</p><p><br /></p><p>“국내성은 너무 좁소. 도읍을 평양성으로 옮겼으면 하는데, 경들의 생각은 어떠하오?”</p><p><br /></p><p>“폐하! 도읍을 옮기는 것은 많은 국력이 낭비되고, 백성들에게 큰 부담을 주는 일이 옵니다. 불가합니다.”</p><p><br /></p><p>“고구려가 강성해진 이때 도읍을 옮겨 더욱 강성한 고구려를 만들 것이오.”</p><p><br /></p><p>많은 신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고구려는 왜 도읍을 평양성으로 옮겼을까요? 평양성으로 도읍을 옮긴 왕은 누구일까요?</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6-07-20T17:03:00+09:00</dc:date>
</item>


<item>
<title>광개토 대왕릉비에 기억되다</title>
<link>http://www.koreahistory.xyz/ancient_300s/15</link>
<description><![CDATA[<p>412년, 광개토 대왕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어요. 광개토 대왕 비문에는 그의 죽음을 애석해 하는 내용이 새겨져 있어요.</p><p>“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이 18세에 왕위에 올라 칭호를 영락대왕이라 하였다. (왕의) 은혜로움이 하늘에까지 미쳤고 위엄이 사방에 떨쳤다. (나쁜 무리를) 쓸어 없애니, 백성이 각기 그 생업에 힘쓰고 편안히 살게 되었다. 나라는 부강하고 백성은 유족해졌으며, 오곡이 풍성하게 익었다. (그런데) 하늘이 (이 백성을) 어여삐 여기지 아니하여 39세에 세상을 버리고 떠나시니 갑인년(414) 9월 29일 을유에 산릉으로 모시었다.”</p><p><br /></p><p>우리나라 역사에서 고구려는 잊어서는 안 될 나라가 되었어요. 특히 광개토 대왕 때의 고구려는 더 이상 맞설 나라가 없는 동북아시아의 강대국이 되었다는 점에서 말이지요. 어때요? 광개토 대왕을 생각하면 우리나라의 강인함이 느껴지지 않나요? 그러나 이 점도 잊지 말아야 해요. 전쟁을 치르면서 수많은 사람이 희생되었다는 사실을요.</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xyz/data/editor/2607/63315d6c2d73b8572f9fc2bce837ddaa_1784534384_905.png" title="63315d6c2d73b8572f9fc2bce837ddaa_1784534384_905.png" alt="63315d6c2d73b8572f9fc2bce837ddaa_1784534384_905.png" /><br style="clear:both;" />광개토 대왕릉비(중국 지린성)</p><p>국립중앙박물관</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6-07-20T16:59:59+09:00</dc:date>
</item>


<item>
<title>북쪽으로 영토를 넓히다</title>
<link>http://www.koreahistory.xyz/ancient_300s/14</link>
<description><![CDATA[<p>고구려가 신라를 도와 백제·가야·왜 연합군을 물리치고 있을 무렵 후연이 요동을 공격해 왔어요. 후연은 고국원왕 때 국내성까지 쳐들어왔던 전연에서 나온 나라였어요. 남쪽의 걱정거리를 없앤 광개토 대왕은 할아버지의 원한을 갚고 요동 땅을 고구려 땅으로 확실하게 만들기 위해 후연을 공격하지요.</p><p><br /></p><p>402년, 광개토 대왕은 후연의 숙군성을 공격했어요. 숙군성은 후연의 수도 용성과 매우 가까운 곳에 있는 성이지요. 고구려군의 공격에 후연군은 숙군성을 버리고 달아났어요. 이에 맞서 이어서 후연의 연군도 공격하였어요.</p><p>고구려군의 공격에 후연도 고구려 요동성을 다시 공격하지만 고구려군의 강한 저항에 부딪혀 실패하고 되돌아갔어요. 당시 후연왕은 사치가 심하고 궁궐을 곳곳에 만들어서 백성들의 원성을 샀어요. 결국 풍발이라는 사람이 반란을 일으켰어요. 풍발은 고구려 출신 고운을 황제로 추대했고, 고운은 북연을 세웠어요.</p><p><br /></p><p>광개토 대왕은 북연왕 고운을 같은 고구려왕실 사람으로 대우하였고, 두 나라는 친한 관계를 맺었어요. 이제 고구려는 맞설 나라가 없는 동북아시아의 강대국이 되었지요.</p><p><br /></p><p>고구려는 사방으로 뻗어나갔어요. 서쪽의 후연을 격파하여 요동 지역을 땅을 차지하였어요. 그리고 동북쪽의 동부여와 숙신을 굴복시켰지요. 광개토 대왕은 남북으로 가는 곳마다 승리를 거두어 남쪽으로 한강 이북 지역을, 서쪽으로 요동 지역을, 북쪽으로는 쑹화강까지, 동북쪽으로는 오늘날의 연해주 지역까지 영토를 넓혀 큰 나라를 건설하였답니다.</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xyz/data/editor/2607/63315d6c2d73b8572f9fc2bce837ddaa_1784534199_8643.png" title="63315d6c2d73b8572f9fc2bce837ddaa_1784534199_8643.png" alt="63315d6c2d73b8572f9fc2bce837ddaa_1784534199_8643.png" /><br style="clear:both;" />광개토 대왕 시설 고구려의 영토</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6-07-20T16:56:50+09:00</dc:date>
</item>


<item>
<title>백제를 공격하고 신라를 돕다</title>
<link>http://www.koreahistory.xyz/ancient_300s/13</link>
<description><![CDATA[<p>광개토 대왕은 18세에 왕이 되었어요. 왕이 되고 얼마 되지 않아 광개토 대왕은 남쪽으로 백제를 공격해서 10여 개의 성들을 함락하고 임진강 일대를 차지했어요. 백제의 진사왕은 광개토 대왕이 군사 작전을 잘 펼친다는 소문을 듣고는 감히 나가서 싸우지 못했다고 해요.</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xyz/data/editor/2607/63315d6c2d73b8572f9fc2bce837ddaa_1784534062_136.png" title="63315d6c2d73b8572f9fc2bce837ddaa_1784534062_136.png" alt="63315d6c2d73b8572f9fc2bce837ddaa_1784534062_136.png" /><br style="clear:both;" />고구려군의 모습</p><p><br /></p><p>진사왕을 이어 아신왕이 백제의 왕이 되었어요. 아신왕은 왕이 되자마자 빼앗긴 성을 되찾기 위해 계속해서 고구려를 공격했지만 번번이 패하였어요.</p><p>거듭된 백제의 공격에 광개토 대왕은 직접 군사를 거느리고 백제를 공격하였어요. 한강 이북의 여러 성을 점령하고 마침내 한성(위례성)을 포위하였지요. 광개토 대왕은 백제의 아신왕에게 '영원히 노객(신하)이 되겠다'는 항복의 맹세를 받았어요. 그리고 왕의 동생과 대신들을 인질로 잡아왔어요. 이 때 고구려는 북한강, 남한강 주변의 영토를 차지하였어요.</p><p><br /></p><p>백제는 고구려에 항복을 했지만 가만히 있지는 않았어요. 아신왕은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왜, 가야와 연합하여 당시 고구려와 친했던 신라를 공격했어요. 평양에 머물고 있던 광개토 대왕에게 신라 사신이 다급히 와서 구원을 청했어요.</p><p><br /></p><p>“왜가 우리 신라 성들을 함락시키고 신라인들을 백성으로 삼으려고 합니다. 왕께 구원을 청합니다.”</p><p><br /></p><p>400년, 광개토 대왕은 보병과 기병 5만을 신라에 보내어 백제·가야·왜 연합군을 낙동강 유역까지 추격하여 물리쳤어요.</p><p>호우명 그릇</p><p>경주 호우총에서 발굴된 것으로 이 그릇 밑바닥에 ‘을묘년국강상 광개토지호태왕’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어 당시 고구려와 신라의 관계를 엿볼 수 있다.</p><p>국립중앙박물관</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6-07-20T16:54:39+09:00</dc:date>
</item>


<item>
<title>고구려, 사방으로 어려움을 겪다</title>
<link>http://www.koreahistory.xyz/ancient_300s/12</link>
<description><![CDATA[<p>주몽이 부여에서 나와 졸본에 고구려를 세운 이후 차츰 고구려는 나라의 기틀이 잡혔어요. 유리왕 때에는 도읍을 국내성으로 옮겼어요.</p><p><br /></p><p>고구려의 힘이 점점 커지면서 이웃 나라들과 외교관계도 맺고 때로는 전쟁도 벌였어요. 북서쪽으로는 중국 대륙에 있던 여러 나라들과 충돌하였고, 남쪽으로는 백제와 경쟁하게 되었지요. 점차 고구려는 강력한 세력으로 성장했어요.</p><p><br /></p><p>그러나 그런 고구려도 시련을 겪을 때가 있었어요. 342년 요동 지방을 차지하고 있던 전연이란 나라가 고구려를 기습 공격하였어요. 전연의 군대는 고구려의 수도 국내성의 궁궐을 불태우고 왕의 어머니와 왕비, 그리고 5만 명의 백성들을 포로로 잡아갔어요.</p><p><br /></p><p>371년에는 백제의 근초고왕이 평양까지 밀고 올라와서 광개토 대왕의 할아버지인 고국원왕이 전투 중에 죽기도 했어요. 그래서 광개토 대왕에게 전연과 백제는 원수의 나라가 되었어요. 그래서 그는 요동과 한반도 남쪽으로 진출하는 것을 최대의 과제로 삼았어요.</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6-07-20T16:52:15+09:00</dc:date>
</item>


<item>
<title>광개토 대왕, 요동의 주인이 되다</title>
<link>http://www.koreahistory.xyz/ancient_300s/11</link>
<description><![CDATA[<p><img src="http://www.koreahistory.xyz/data/editor/2607/63315d6c2d73b8572f9fc2bce837ddaa_1784533851_7855.png" title="63315d6c2d73b8572f9fc2bce837ddaa_1784533851_7855.png" alt="63315d6c2d73b8572f9fc2bce837ddaa_1784533851_7855.png" /><br style="clear:both;" />광개토 대왕비(중국 지린성)</p><p><br /></p><p>“폐하! 왜가 우리 신라를 쳐들어왔습니다. 난폭한 왜의 기세에 나라의 운명이 위태롭습니다. 급히 구원병을 보내주십시오.”</p><p><br /></p><p>“바다 건너 왜라? 고구려 정예병 5만을 보내 줄 터이니 어서 가서 신라를 구하라!”</p><p><br /></p><p>신라는 왜 고구려에 구원을 요청하였을까요? 신라를 도와 신라에 침입한 왜를 물리친 고구려 왕은 누구일까요?</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6-07-20T16:51:05+09:00</dc:date>
</item>


<item>
<title>왜에 칠지도를 보내다</title>
<link>http://www.koreahistory.xyz/ancient_300s/10</link>
<description><![CDATA[<p>이와 더불어 나라를 더욱 튼튼하게 하려고 대외 교류에도 큰 힘을 쏟았어요. 중국 남쪽에 있는 동진과 교류하여 중국의 선진 문물을 받아들였어요. 또한 바다 건너 남쪽의 왜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백제의 앞선 문물을 전해주었지요. 근초고왕이 왜에 보낸 칠지도는 당시 백제가 왜와 가까웠다는 걸 잘 보여주고 있어요.</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xyz/data/editor/2607/63315d6c2d73b8572f9fc2bce837ddaa_1784533697_2596.png" title="63315d6c2d73b8572f9fc2bce837ddaa_1784533697_2596.png" alt="63315d6c2d73b8572f9fc2bce837ddaa_1784533697_2596.png" /><br style="clear:both;" />칠지도</p><p><br /></p><p>‘일곱 갈래의 가지로 된 칼’로 일본 나라현의 이소노카미신궁에 있다. 전체 길이는 74.9㎝로 앞면에 34자, 뒷면에 27자가 금으로 상감되어 있다. 백제 근초고왕이 만들어 왜왕에게 보낸 것으로 보고 있다.</p><p>대가야박물관</p><p>이와 같이 근초고왕은 활발한 정복 활동과 외교 활동으로 백제의 전성기를 이끌었어요. 다른 백제 왕들에 견주어 근초고왕은 어떤 점이 뛰었났을까요? 근초고왕 이후 백제 역사는 어떻게 전개되었을까요?</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6-07-20T16:48:34+09:00</dc:date>
</item>


<item>
<title>평양성을 공격하여 고구려 왕의 목숨을 빼앗다</title>
<link>http://www.koreahistory.xyz/ancient_300s/9</link>
<description><![CDATA[<p>371년, 고구려 고국원왕은 치양 전투의 패배를 되갚기 위해 군사를 다시 일으켜 백제로 향했어요. 이 소식을 전해들은 근초고왕은 강가 수풀 속에 군사를 매복시켜 강을 건너는 고구려군을 기습 공격하였어요. 고구려군은 다시 한 번 쓰라린 패배를 맛보아야 했지요.</p><p><br /></p><p>근초고왕은 승리의 기세를 몰아 정예 군사 3만 명을 거느리고 고구려로 쳐들어가서 평양성을 포위하였어요. 성에 갇힌 고국원왕은 성의 이곳저곳을 돌며 고구려 병사들을 격려했어요.</p><p><br /></p><p>“국내성에서 곧 우리를 구원해줄 군사들을 보낼 것이다. 백제 무리가 성을 넘지 못하도록 굳건히 지키도록 하라!”</p><p><br /></p><p>성을 넘으려는 백제군과 성을 지키려는 고구려군과 사이에 치열한 전투가 밤낮으로 계속 되었어요. 백제군의 격렬한 공격에 성벽이 함락될 위기에 처하면서 고국원왕이 직접 군사들을 독려하면서 평양성을 방어하였어요.</p><p><br /></p><p>밤이 되자 백제군의 공격이 다시 시작되었어요. 수많은 사다리와 밧줄이 성벽에 걸리고 병사들이 성벽 위로 기어올랐어요. 고국원왕은 위급해진 성벽으로 구원군을 데리고 가 백제군을 막았지요.</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xyz/data/editor/2607/63315d6c2d73b8572f9fc2bce837ddaa_1784533491_825.png" title="63315d6c2d73b8572f9fc2bce837ddaa_1784533491_825.png" alt="63315d6c2d73b8572f9fc2bce837ddaa_1784533491_825.png" /><br style="clear:both;" />근초고왕과 북으로 진격하는 백제군한성백제박물관)</p><p><br /></p><p>구원군의 활약에 힘입어 고구려 병사들은 힘을 모아 백제 병사들을 밀어내기 시작했어요. 넘어지는 사다리와 끊어지는 밧줄에 매달린 채 성벽 밖으로 떨어지는 백제 병사들의 비명 소리가 끊이지 않았어요. 성벽 위에 올랐던 백제 병사들도 하나둘 고구려군의 칼과 창에 목숨을 잃었어요.</p><p><br /></p><p>그런데 성벽 위의 백제 병사들을 거의 몰아낼 무렵 어둠 속에서 새까맣게 화살비가 덮쳤어요. 호위무사들이 저마다 방패로 급하게 왕을 가렸지만 수많은 화살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어요. 여러 개의 화살이 고국원왕의 몸에 꽂혔어요. 고국원왕은 끝내 목숨을 잃고 말았지요.</p><p>백제의 근초고왕은 대외적으로 고구려의 어수선한 상황을 틈타 고구려를 공격하여 고국원왕을 죽이고 북쪽으로도 영토를 넓혔지요. 또한 남쪽 마한의 여러 세력을 통합해 전라도 지역 전부를 장악했어요. 백제는 근초고왕 때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하게 되었어요.</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xyz/data/editor/2607/63315d6c2d73b8572f9fc2bce837ddaa_1784533521_9928.png" title="63315d6c2d73b8572f9fc2bce837ddaa_1784533521_9928.png" alt="63315d6c2d73b8572f9fc2bce837ddaa_1784533521_9928.png" /><br style="clear:both;" />근초고왕 시기 백제의 영역</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6-07-20T16:45:43+09:00</dc:date>
</item>


<item>
<title>백제, 고구려를 공격하다</title>
<link>http://www.koreahistory.xyz/ancient_300s/8</link>
<description><![CDATA[<p><img src="http://www.koreahistory.xyz/data/editor/2607/63315d6c2d73b8572f9fc2bce837ddaa_1784533088_5354.png" title="63315d6c2d73b8572f9fc2bce837ddaa_1784533088_5354.png" alt="63315d6c2d73b8572f9fc2bce837ddaa_1784533088_5354.png" /><br style="clear:both;" />고구려군의 모습(충주 고구려비 전시관)</p><p><br /></p><p>313년과 314년 고구려는 낙랑군과 대방군을 차례로 멸망시켰어요. 고구려와 백제는 그들이 장악하고 있던 교역로를 놓고 경쟁을 시작했어요. 백제는 아직 상대적으로 고구려의 지배력이 약한 이 지역을 차지하기 위해 북진을 도모하였어요.</p><p>이에 맞서 고구려도 4세기 중반 이후 남쪽으로 진출하려고 굉장히 노력했어요. 369년 고구려 고국원왕은 2만 명의 병력으로 백제를 공격하였어요. 고구려군의 공격에 맞서 근초고왕은 태자와 백제군을 지름길을 통해 치양(황해도 연백지역)에 보내었어요. 이때 고구려군을 기습 공격하려던 백제 태자에게 한 사람이 급히 찾아왔어요.</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xyz/data/editor/2607/63315d6c2d73b8572f9fc2bce837ddaa_1784533118_7311.png" title="63315d6c2d73b8572f9fc2bce837ddaa_1784533118_7311.png" alt="63315d6c2d73b8572f9fc2bce837ddaa_1784533118_7311.png" /><br style="clear:both;" />여러 역할의 병사로 구성된 고구려군</p><p>한성백제박물관</p><p><br /></p><p>“저는 고구려에서 온 사기입니다. 태자마마! 저는 원래 백제 사람입니다. 저의 말을 들으신다면 이번 전쟁에서 분명히 승리하실 겁니다.”</p><p><br /></p><p>“백제 사람이 어찌 고구려 사람이 되었더냐?”</p><p>“저는 궁에서 대왕의 말을 보살피는 일을 했습니다. 어찌하다 대왕께서 아끼시는 귀한 말의 발굽에 상처를 냈는데, 대왕께 죽임을 당할까 두려워 고구려로 도망을 갔습니다.”</p><p><br /></p><p>“이런 불충한 자를 보았나. 바로 목을 베어야겠으나 먼저 너의 말을 들어보겠다.”</p><p><br /></p><p>“저쪽의 군사가 비록 많기는 하나 모두 숫자만을 채운 가짜 군사일 뿐입니다. 날래고 용감한 자들은 오직 붉은 깃발을 한 부대뿐입니다. 만일 먼저 이를 깨트리면 나머지는 치지 않아도 저절로 무너질 것입니다.”</p><p><br /></p><p>고구려군의 상황을 들은 태자는 사기의 말을 쫓아 붉은 깃발을 한 부대를 집중적으로 공격했어요. 주력 부대를 잃은 고구려군은 우왕좌왕 하다 흩어져 도망을 갔어요. 적을 미리 알고 준비한 전투는 승리할 수밖에 없었죠.</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xyz/data/editor/2607/63315d6c2d73b8572f9fc2bce837ddaa_1784533199_3975.png" title="63315d6c2d73b8572f9fc2bce837ddaa_1784533199_3975.png" alt="63315d6c2d73b8572f9fc2bce837ddaa_1784533199_3975.png" /><br style="clear:both;" />몽촌토성에서 발견된 백제의 뼈 갑옷(복원품, 한성백제박물관)</p><p>갑옷의 아랫부분을 185개 뼈 조각으로 만들었고, 뼈 갑옷 위의 가슴, 배 부분은 쇠 찰갑에 천을 두르고 옻칠을 하여 만들었다.</p><p><br /></p><p><br /></p><p><br /></p><p>백제군은 도망쳐 달아나는 고구려군을 추격하여 수곡성에 이르렀어요. 이때 장군 막고해가 태자를 막으며 말했어요.</p><p><br /></p><p>“만족할 줄 알면 욕되지 않고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고 했습니다. 지금 얻은 바가 많으니 어찌 구할 것이 따로 있겠습니까?”</p><p><br /></p><p>태자는 이 말을 옳게 여겨 추격을 중지하고 돌을 높이 쌓아 백제군의 승리를 알리는 표지를 만들었어요. 백제군은 고구려군 5천여 명을 죽이거나 사로잡았는데, 포로들은 장수와 군사들에게 나누어 주었어요.</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6-07-20T16:40:44+09:00</dc:date>
</item>


<item>
<title>근초고왕, 평양성을 포위하다</title>
<link>http://www.koreahistory.xyz/ancient_300s/7</link>
<description><![CDATA[<p><img src="http://www.koreahistory.xyz/data/editor/2607/63315d6c2d73b8572f9fc2bce837ddaa_1784532839_0426.png" title="63315d6c2d73b8572f9fc2bce837ddaa_1784532839_0426.png" alt="63315d6c2d73b8572f9fc2bce837ddaa_1784532839_0426.png" /><br style="clear:both;" />석촌동고분(서울 송파구)</p><p><br /></p><p>“백제군이 성벽을 넘지 못하게 화살을 쏘아라! 돌을 굴려라!”</p><p><br /></p><p>“폐하! 적이 코앞에 있는데, 어찌 직접 군사들을 지휘하십니까? 위험하오니 뒤로…”</p><p><br /></p><p>“으윽!”</p><p><br /></p><p>“폐하! 폐하! 폐하께서 화살에 맞으셨다. 의원을 불러라! 의원을!”</p><p><br /></p><p>평양성에서 고구려의 왕을 죽이고 북쪽으로 영토를 넓힌 백제의 왕은 누구일까요? 강한 백제를 만든 비결은 무엇이었을까요?</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6-07-20T16:34:15+09:00</dc:date>
</item>


<item>
<title>역사 속 작은 이야기: 신라에서 활약한 가야 사람은 누가 있을까요?</title>
<link>http://www.koreahistory.xyz/ancient_300s/6</link>
<description><![CDATA[<p>가야 연맹체를 이끌던 금관가야와 대가야는 모두 신라의 지배를 받게 되어요. 두 가야의 대표적 인물들은 훗날 신라에서 크게 활약을 해요.</p><p><br /></p><p>먼저 금관가야 왕족의 후손으로 김유신이 있어요. 김유신의 할아버지 김무력은 금관가야 마지막 왕의 아들이었어요. 금관가야가 신라에 항복한 후 김무력은 신라의 귀족이 되었어요. 그리고 김유신은 여러분이 잘 아는 것처럼 신라의 삼국 통일 전쟁에서 크게 활약해요. 이외에도 신라 음악을 크게 발전시킨 우륵이 있어요. 우륵은 대가야가 멸망할 무렵 신라에 망명했어요. 이때 우륵은 가야의 가실왕이 중국 악기를 본 떠 만든 가야금을 가지고 와 신라 사람들에게 가르쳤어요.</p><p><br /></p><p>가야 연맹은 562년 대가야가 신라 진흥왕에게 멸망당할 때까지 고구려, 백제, 신라와 함께 경쟁하며 발전했어요. 그러나 삼국처럼 왕권이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로 발전하지 못하고 연맹 국가 단계에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어요.</p><p><br /></p><p>‘철의 나라’ 가야에 대해 좀 더 알고 싶다면 국립김해박물관이나 함안박물관, 대성동고분박물관, 대가야박물관 등을 둘러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6-07-20T16:31:06+09:00</dc:date>
</item>


<item>
<title>순장이 뭐예요?</title>
<link>http://www.koreahistory.xyz/ancient_300s/5</link>
<description><![CDATA[<p>“이번에 15호분에서 순장된 사람 4명의 뼈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나요?”</p><p>“예, 순장된 인골 중에는 16세 소녀의 것도 있다고 하던데요.”</p><p><br /></p><p>2007년 가야 무덤으로 알려진 창녕 송현동 15호분에서 순장된 사람의 뼈(인골)가 발견되었어요. 순장은 왕이나 귀족 등 지배자가 죽으면 그를 따르던 신하나 노비들을 함께 묻었던 제도에요. 우리나라의 초기 국가인 부여도 순장을 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어요. 부여는 많으면 수백 명까지 순장했다고 해요.</p><p><br /></p><p>창녕 송현동 15호분에서 중심이 되는 인물은 60세 정도의 남자라고 해요. 그의 발이 있는 쪽에 4명의 사람을 순장했어요. 순장된 사람들은 동쪽에 머리를 두고 있는 것이 특징이에요.</p><p><br /></p><p>이외에도 경북 고령의 지산동 44호분에서도 순장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어요. 이곳에서는 무려 40여 명의 사람을 순장했어요.</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xyz/data/editor/2607/63315d6c2d73b8572f9fc2bce837ddaa_1784532581_6238.png" title="63315d6c2d73b8572f9fc2bce837ddaa_1784532581_6238.png" alt="63315d6c2d73b8572f9fc2bce837ddaa_1784532581_6238.png" /><br style="clear:both;" />송현동 고분에서 발견된 소녀(송현이) 복원 모습</p><p>창녕박물관</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6-07-20T16:29:56+09:00</dc:date>
</item>


<item>
<title>독특한 모양의 가야토기</title>
<link>http://www.koreahistory.xyz/ancient_300s/4</link>
<description><![CDATA[<p><img src="http://www.koreahistory.xyz/data/editor/2607/63315d6c2d73b8572f9fc2bce837ddaa_1784532340_5314.png" title="63315d6c2d73b8572f9fc2bce837ddaa_1784532340_5314.png" alt="63315d6c2d73b8572f9fc2bce837ddaa_1784532340_5314.png" /><br style="clear:both;" />집모양 토기와 수레바퀴모양 토기(국립중앙박물관)</p><p><br /></p><p>가야는 철의 나라일 뿐만 아니라 토기의 나라이기도 해요. 가야의 각 나라마다 개성있는 토기를 만들었고 또 이웃한 신라나 백제보다 토기의 모양이 다양했어요. 사진을 보면 집 모양, 수레바퀴 모양 토기 등이 보여요.</p><p><br /></p><p>가야토기는 주로 회청색과 적갈색이 있어요. 그중에서 회청색 토기는 이전 시기에 만들어지던 토기보다 높은 온도인 1,000~1,200℃에 구워서 만들어요. 토기를 구운 뒤에는 입구를 틀어막아서 산소가 공급되지 않게 한다고 해요. 그래서 토기의 색이 회청색을 띠게 된다고 해요.</p><p>그리고 도자기처럼 단단하여 경질토기라고 불려요. 회청색 경질의 가야의 토기는 금관가야에서 먼저 만들어져 대가야를 비롯한 다른 지역으로 퍼져나갔어요. 이외에도 가야토기는 일본에 전해져 스에키 토기에 영향을 주었어요. 스에키 토기는 일본 고대의 대표적인 토기랍니다.</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xyz/data/editor/2607/63315d6c2d73b8572f9fc2bce837ddaa_1784532377_5568.png" title="63315d6c2d73b8572f9fc2bce837ddaa_1784532377_5568.png" alt="63315d6c2d73b8572f9fc2bce837ddaa_1784532377_5568.png" /><br style="clear:both;" />가야 토기(대가야박물관)</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6-07-20T16:26:31+09:00</dc:date>
</item>


<item>
<title>철을 화폐처럼 사용했어요</title>
<link>http://www.koreahistory.xyz/ancient_300s/3</link>
<description><![CDATA[<p><img src="http://www.koreahistory.xyz/data/editor/2607/63315d6c2d73b8572f9fc2bce837ddaa_1784527681_7465.png" title="63315d6c2d73b8572f9fc2bce837ddaa_1784527681_7465.png" alt="63315d6c2d73b8572f9fc2bce837ddaa_1784527681_7465.png" /><br style="clear:both;" />덩이쇠</p><p>국립김해박물관</p><p><br /></p><p><br /></p><p><br /></p><p>사진 속의 유물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나요? 가야의 고분에서 출토된 덩이쇠에요. 덩이쇠는 가운데 부분이 살짝 들어간 직사각형 모양의 판이에요. 덩이쇠의 가운데 부분을 잘록하게 만든 것은 여러 개를 하나로 묶기 위해서예요.</p><p><br /></p><p>덩이쇠는 불순물이 제거된 철 덩어리로 언제든지 녹여서 필요한 철제 도구를 만들 수 있도록 한 것이에요. 그래서 화폐처럼 사용되었어요.</p><p><br /></p><p>덩이쇠는 가야 고분 곳곳에서 발견되어요.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부산 복천동 53호 고분이에요. 금관가야 지배층의 고분이지요. 또 최근에는 아라가야의 고분이 있는 창원 현동 유적에서도 출토되었답니다.</p><p>덩이쇠 이외에도 가야 고분에서는 철로 된 다양한 유물이 발굴되었어요. 그중에서는 부산 복천동 고분에서 발견된 말 얼굴 가리개도 있어요. 가야인들은 말의 머리에 철로 만든 투구도 씌워서 전투에 나섰던 것이죠.</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xyz/data/editor/2607/63315d6c2d73b8572f9fc2bce837ddaa_1784527711_5973.png" title="63315d6c2d73b8572f9fc2bce837ddaa_1784527711_5973.png" alt="63315d6c2d73b8572f9fc2bce837ddaa_1784527711_5973.png" /><br style="clear:both;" />가야기병의 모습</p><p>국립김해박물관</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6-07-20T15:08:42+09:00</dc:date>
</item>


<item>
<title>철의 나라 가야</title>
<link>http://www.koreahistory.xyz/ancient_300s/2</link>
<description><![CDATA[<p>학생이 발견한 것은 철로 만든 갑옷의 조각이었어요. 그런데 이 철 갑옷은 사람들이 사용하기 위한 것이 아니에요. 알고 보니 철 조각을 물고기 비늘처럼 만들어 이어 붙힌 말의 갑옷이었어요. 고구려의 무덤벽화 속에서 보던 말의 갑옷이 거의 완벽한 모습으로 발견되자 사람들은 깜짝 놀라고 말았어요. 이 갑옷이 발견된 곳은 마갑총으로 말의 갑옷이 나온 무덤이란 뜻이에요. 마갑총은 경남 함안 말이산 고분군에 있는데 대표적인 가야의 고분이에요.</p><p><br /></p><p>가야는 낙동강 하류의 변한에서 발전했어요. 변한은 삼한 중에서도 철이 많이 생산되는 곳이었죠. 변한을 이어받은 가야에서도 철제 유물이 많이 출토되어 가야는 ‘철의 나라’라는 별명이 붙었어요.</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xyz/data/editor/2607/63315d6c2d73b8572f9fc2bce837ddaa_1784527365_6637.png" title="63315d6c2d73b8572f9fc2bce837ddaa_1784527365_6637.png" alt="63315d6c2d73b8572f9fc2bce837ddaa_1784527365_6637.png" /><br style="clear:both;" />함안에서 발견된 말 갑옷</p><p>국립김해박물관</p><p><br /></p><p><br /></p><p><br /></p><p>가야는 철이 풍부했지만 고구려, 백제, 신라처럼 고대 국가로 발전하진 못해요. 여러 소국의 독립성이 상당히 강했기 때문이지요. 초기 가야 연맹은 금관가야가 이끌었어요. 금관가야는 지금의 김해 지방을 중심으로 김수로왕이 세운 나라에요. 금관가야는 낙동강 동쪽으로 세력을 넓히는 과정에서 왜와 함께 신라를 침략했어요.</p><p><br /></p><p>위기를 맞이한 신라의 내물왕은 고구려 광개토대왕에게 도움을 요청했어요. 그러자 광개토대왕은 신라를 돕기 위해 군대를 보냈어요. 고구려의 공격을 받은 금관가야는 힘이 약해져 가야 연맹체를 이끌 수 없게 되었어요.</p><p><br /></p><p>금관가야가 연맹체 주도권을 잃어갈 무렵 그것을 이어받은 나라는 대가야에요. 대가야는 바닷가와 가까웠던 금관가야와는 달리 소백산맥 깊숙한 곳인 지금의 고령 지방을 중심으로 발전했어요.</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xyz/data/editor/2607/63315d6c2d73b8572f9fc2bce837ddaa_1784527418_0049.png" title="63315d6c2d73b8572f9fc2bce837ddaa_1784527418_0049.png" alt="63315d6c2d73b8572f9fc2bce837ddaa_1784527418_0049.png" /><br style="clear:both;" />가야 연맹의 주도권을 차지했던 금관 가야와 대가야</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xyz/data/editor/2607/63315d6c2d73b8572f9fc2bce837ddaa_1784527452_7436.png" title="63315d6c2d73b8572f9fc2bce837ddaa_1784527452_7436.png" alt="63315d6c2d73b8572f9fc2bce837ddaa_1784527452_7436.png" /><br style="clear:both;" /> </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6-07-20T15:04:19+09:00</dc:date>
</item>


<item>
<title>가야 역사의 비밀 열쇠, 가야 고분군</title>
<link>http://www.koreahistory.xyz/ancient_300s/1</link>
<description><![CDATA[<p><img src="http://www.koreahistory.xyz/data/editor/2607/63315d6c2d73b8572f9fc2bce837ddaa_1784527084_6328.png" title="63315d6c2d73b8572f9fc2bce837ddaa_1784527084_6328.png" alt="63315d6c2d73b8572f9fc2bce837ddaa_1784527084_6328.png" /><br style="clear:both;" />가야 역사의 비밀 열쇠, 가야 고분군</p><p>가야 고분(경남 합천군)</p><p><br /></p><p><br /></p><p><br /></p><p>“생선 비늘처럼 보이는 이 철 조각이 뭘까요?”</p><p><br /></p><p>“글쎄, 그냥 철 조각은 아닌 것 같구나. 아는 사람에게 물어보아야겠다.”</p><p><br /></p><p>1992년 신문을 배달하던 한 고등학생이 아파트를 새로 짓고 있는 곳에서 철 조각을 발견했어요. 이 학생이 발견한 철 조각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곳에서는 어떤 문화유산들이 나왔을까요?</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6-07-20T14:58:30+09:00</dc:date>
</item>

</channel>
</rss>
